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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2.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68)

제68편 : 남도, 언제나 그리운 곳

  * 남도, 언제나 그리운 곳 *



  내가 태어난 곳은 서부경남인 하동, 그리고 교직 37년을 모두 경상도에서 보냈다. 동부경남, 부산, 울산. 현재 사는 곳이 경북 경주니 경상도 전역에 다 걸쳐 산 셈이다. (경북 북부는 제외)

  그런데 경상도 붙박이로 살아가다 전라남도에 가 살 뻔한 기회가 한 번 찾아왔다. 경남 OO여고에서 부산으로 옮기기 직전 신문에 뜬 교사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다. 바로 여수중앙여고.


  면접까지 통과되고 3월 2일부터 출근하기로 결정한 뒤 부모님께 말 안 하고 떠날 수 없어 꺼냈다. 순간 "아이고 마!" 하는 울엄마의 구들장 꺼지는 탄식에 이어, "니가 미칬나!" 하는 아버지의 노한 음성. 대충 예상한 반응이었으니.

  하기야 당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가서 살겠다는 자식에 선뜻 동의해 줄 어버이가 얼마나 되었으랴. 험지 중의 험지로 찾아가는 미친 짓이었을 테니. 아버지가 대로해 고함고함 질렀지만 그즈음 그분의 그늘을 벗어났던지라 무시하면 그만.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가면 한 달에 한 번 오가기 어렵던 시절, 방학 때나 볼 수 있다는 말에 울며불며 붙잡는 울엄마를 뿌리치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미리 보험 삼아 면접 봐 둔 부산 모 여중으로 옮겼다. (그 당시엔 사립학교라도 이동하기가 쉬웠음)

  그랬으리라, 전남에서도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그날부터.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곳에 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당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여행할 때면 진주 지나 줄어들던 차량이 하동 지나 전라도 들어서면 보기 힘들고, 마을 불빛도 가로등도 불빛도 없고.


  총각 때라 미련 없이 여행 다니던 1978~80년 당시 전남에 제대로 된 공장은 없고 여수공업단지가 갓 조성되던 시점이었으니 도로가 텅텅.. 또한 연일 조간신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핍박받는 기사와, 전라도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 등. 허나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지나며 경주 산골에 집을 짓고 살다 문득 다음 살 곳으로 바닷가를 생각했다. 허나 400평 가까운 땅과 집 팔아도 동해 주변엔 50평도 불가능. 그러던 중 전남 고흥으로 여행을 했고. '지붕 없는 미술관'에서 내려다 본 섬과 섬.

  그때부터 병이 생겼다. 그리고 퇴직 후 거기로 옮기고 싶었다. 이젠 막을 부모님도, 신경 써야 할 딸아들도 없다. 단지 아내만. 허나 아내는 앞의 네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벽. 더불어 생겨난 또 다른 벽과 벽이 줄을 이었고...


  옮길 수 없으니 차선은 여행. 짬나면 뻔질나게 남도(南道)를 드나들었다. 그것도 바닷가 근처로. 

  (참고로 원래 남도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합친 용어이나, 이젠 전통적 지리 공간에서 벗어나 ‘광주 · 전남’ 지역이란 제한된 의미를 지님)


  글을 쓰는 지금, 완도 숙소에 들어와 있다. 이번 여행은 우리나라 지도 왼쪽 끝 진도로 간 뒤 해남 완도 강진 장흥 고흥 여수 순천을 거쳐 집에 갈 예정. 본격 여행기는 다음에 언급하고 어제 울돌목(한자로 '명량[鳴梁]')에 서 물살이 돌면서 내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잠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한다. 장차 올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려고 장군은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았을까. 언제 가장 회오리를 이루며 언제 가장 배가 뒤집어지기 쉬운가를 직접 보고 작전을 짰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여느 뱃사람 못지않게 관찰했으리라. 절로 존경의 마음이 인다.


  남도에 가면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김대중 대통령, 소설가로 조정래 이청준 한승원(한강 아버지).. 시인으로 곽재구 김지하 박노해... 남도에 가면 끌어당기는 자연이 있다. 팔영산 두륜산 월출산 천관산 같은 산들. 바다가 토해낸 아름다운 섬들. 청산도 외달도 연홍도...

  남도에 가면 인정이 또 끌어당긴다. 맛과 양의 인정. 어느 식당에 가도 최소한 먹을 만하다는 말과 동시에 푸짐하다. 황톳빛 흙이 끌어당긴다. 연붉은 빛깔의 밭. 파도파도 자갈 하나 보기 힘들 것 같은데, 발 디디면 폭신폭신 빠질 것만 같은데...


  40년 전 여수로 옮겼더라면 내 삶은 어찌 되었을까. 그래서 아직도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읽히는 걸까.


  *. 첫째 사진은 순천 와온해변 일몰 - 입장료 없이 언제든 볼 수 있고

  둘째는 해남 대흥사 경내 자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

  째는 내비게이션에 '지붕없는미술관' 치면 나오는 곳에서 내려다 본 고흥 앞바다 섬들

  째는 짧지만 울돌목 소용돌이를 담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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