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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7)

제97편 : 마종하 시인의 '마중물'

@. 오늘은 마종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마중물
                         마종하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펌프는 샘솟아 오른다.
  그렇다, 그대를 기다리는
  나의 조금의 눈물도 그렇다.
  건드리지 말라고
  몸부림치는 지하수들은
  아예 눈물지어 깊이 흐른다.
  고작 한 방울의 식염수로
  울컥이는 펌프처럼
  나의 갈망을 전언하면
  넘치는 샘의 시린 줄기는
  쇠 가슴 가득
  아린 눈물 쏟는다.
  - [날카로운 첫 키스](2022년)

  #. 마종하 시인(1943년 ~ 2009년) : 1968년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두 군데 동시에 당선되는 바람에 신춘문예 중복투고 금지를 낳게 한 장본인.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36년간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했고, 모든 문학상을 거부했으며, 특히 「딸을 위한 시」가 유명함.



 <함께 나누기>

  예전에 마중물과 꾸중물('구정물'의 사투리)이란 제목의 수필을 써 배달한 적 있습니다.
  마중물은 '펌프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물'을 가리키는데, 이때 처음 끌어올린 물은 꾸중물 상태이나 잠시 후 깨끗한 물로 바뀝니다.

  그때 깨끗한 물이 되기 위해선 먼저 더러운 물(꾸중물)이 나와야 된다는 식의 논리로 전개했습니다.
  오늘 시는 제 글과 전혀 다른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대에 대한 그리움이 마중물로 하여 샘솟아 오른다고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 펌프는 샘솟아 오른다 / 그렇다, 그대를 기다리는 / 나의 조금의 눈물도 그렇다"

  그대 향한 그리움의 눈물이 뿜어져 나오려면 그냥 두어선 안 되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한 줄기 마중물에 끌려나오는 그대 향한 그리움의 눈물. 나의 마중물이 부족하다면 끌어올릴 수 없어도 그대 향한 마음 마중물 되어 변함 없으리.

  "건드리지 말라고 / 몸부림치는 지하수들은 / 아예 눈물지어 깊이 흐른다"

  땅속 깊이 박혀 있는 눈물의 강을 끌어올리려 하나 건드리지 말라는 노한 그대 소리가 나를 더 눈물 짓게 합니다.
  그대 향한 그리움이 언젠가 썰물 빠지듯이 흘러 빠지면 끌어올릴 힘도  빠지고 그대 또한 내 곁에서 영원히 멀어질 터.

  "넘치는 샘의 시린 줄기는 / 쇠 가슴 가득 / 아린 눈물 쏟는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원하리라 믿었던 그리움의 샘도 마르고 나의 눈물도 말라갑니다.
  허나, 그대여! 어디선가 내미는 마중물 한 사발만 있으면 내 그리움, 내 사랑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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