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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6)

제96편 : 정끝별 시인의 '사막거북'

@. 오늘은 정끝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막거북
                           정끝별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가물에 콩 나듯 사막에서 만나는 풀이나 선인장에게 병아리 눈물만큼의 물을 얻어 몸속에 모았다가 위험에 빠지면 그마저도 다 버린다

  살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나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낸다 쏟아내고서야 살아남았던 진화의 습관이다
  어떤 것은 버렸을 때만 가질 수 있고
  어떤 것은 비워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쏟아내고서야 단단해지는 것들의 다른 이름은?

  돌처럼 단단해진 두 발을 본 적이 있다
  피딱지가 엉겨 있었다.

  어느 거리였을까
  어느 전쟁터였을까
  - [모래는 뭐래](2023년)

  #. 정끝별 시인(1964년생) :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
  현재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2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함께 나누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를 잘 쓰는 여성시인이 누구냐 하면 선뜻 이름 대기가 망설여지나 가장 이쁜 이름을 지닌 시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시인입니다.

   시인의 아버지가 ‘끝내는 별이 되어라’란 뜻으로 지어주셨다 하는데 참 이름이 이쁩니다.


   이름 덕일까요? 유명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최고 권위의 소월시문학상도 받았으니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사막에서는 물이 없으면 동물도 식물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특히 동물은 물이 없으면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식물에 비해 훨씬 짧습니다.

  사막거북은 다른 동물에 비해 사막에서 오래 살아남은 종에 속합니다. 극한 상황에 대비해 언제나 몸속에 물을 저장하기 때문에.


  “가물에 콩 나듯 사막에서 만나는 풀이나 선인장에게 병아리 눈물만큼의 물을 얻어 몸속에 모았다가 위험에 빠지면 그마저도 다 버린다”


  하지만 사막거북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빠지면 몸속에 간직한 아주 조금의 물마저도 다 버립니다.

  아니 당장 의문이 치솟을 겁니다. 그거라도 마셔야 얼마라도 더 견딜 텐데. 헌데 그게 바로 녀석의 생존전략입니다.


  “어떤 것은 버렸을 때만 가질 수 있고 / 어떤 것은 비워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사막거북을 예로 들었을 뿐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사막은 ‘삶의 전쟁터’을 비유한 표현이며, 사막거북은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바로 우리 인간을 비유한 시어입니다.


  “나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낸다 쏟아내고서야 살아남았던 진화의 습관이다”


  밥벌이 위한 전쟁터,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어선 안 됩니다. 가능한 빨리 생존을 위해 몸속에 모았던 눈물을 다 비워내야 합니다.

  사막거북이 마지막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처럼 비워내야 산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슬픔에 잠겨있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돌처럼 단단해진 두 발을 본 적이 있다 / 피딱지가 엉겨 있었다”


  극한 상황을 버텨낸 사막거북의 두 발은 돌처럼 단단합니다. 어떤 때는 피딱지도 엉겨붙습니다.

  우리도 그리해야 합니다. 그게 어느 거리든, 어느 삶의 전쟁터든 관계 없이 버텨야 합니다. 비록 내 몸의 일부분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도 사막거북은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황량한 모래길을 건너갑니다. 우리도 삶의 사막을 걸어가야 합니다.

  사막거북이 처한 상황보다야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견뎌내기가 듸 쉽겠지만 그거야 상대적이겠지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사막 같은 삶의 현장에 나가는 모든 일꾼들에게 바치는 헌시(獻詩)로 손색없는 작품이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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