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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0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8)

제108편 : 문혜진 시인의 '탕진'

@. 오늘은 문혜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탕진
                    문혜진

  가끔씩 난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곤 해.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러면 어떤지 알아?
  *하드보일드하게 지루하지 뭐.
  전인권의 <행진>을 탕진으로 바꿔 부르는데
  그것도 지루하면 펭귄으로 불러
  그럼 정말 썰렁해지지.
  전인권은 왜 행진에서 한 발짝 더 나가지 못했을까?
  그러면 탕진이 됐을 텐데
  스카이라이프 광고에서 선글라스를 벗은 전인권은
  애송이 개그맨의 폭탄 맞은 개그 같아.
  펑크스타일로 뇌쇄적이야.
  제대로 서글프다는 이야기지.
  그 폭탄머리를 만드는데
  노련한 코디네이터가 몇 시간을 주물러댄다지?
  그의 선글라스를 벗길 수 있는 건
  태양도, 비도 섹시한 허벅지도 아니야.
  스타일리스트로 사는 것도
  돈 앞에선 귀찮아진 거겠지.
  하지만 누가 그를 비난하겠어?
  탕진을 흥얼거리며 스니커즈가 닳도록 걷다가 문득,
  지금 내가 부르는 이 노래는
  원유를 잔뜩 부은 베트남식 커피 같아.
  하드보일드하게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지.
  그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두 써버리겠어
  아무것도 아끼지 않겠어.
  우리 동네 미대사관 앞 전경 아저씨들도 탕진!
  우리 삼촌을 닮은 과일가게 총각도 탕진!
  붕어빵 파는 뚱뚱한 아줌마도 탕진!
  피스!로 인사를 대신하던 시대는 갔어
  아무리 외쳐도 평화 따윈 오지 않잖아?
  탕진!
  - [질 나쁜 연애] (2004년)

  *. 하드보일드 :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함

  #. 문혜진 시인(1976년생) : 경북 김천 출신으로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28살 때 펴낸 시집 [질 나쁜 연애]로 하여 ‘한국시의 락 스피릿(Rock spirit)’, ‘반항과 불온의 아이콘’이란 별명을 얻음




  <함께 나누기>

  오늘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에 덧붙인 전인권(들국화)의 「행진」을 먼저 듣고 난 뒤 시를 읽어보십시오. 이 시 이해 조건의 하나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가끔씩 난 /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곤 해 /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우린 가끔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술 한잔 마시고 골목길 오를 때 부르던 노래는 늘 부르던 그 노래입니다. 이 시에서 '노래를 반복해 부름'은 일상생활과 연결됩니다. 별다른 변화 없이 단조롭게 돌아가는 반복되는 그 생활 말입니다. 시의 표현대로 하자면 ‘하드보일드’, 그래서 그런 단조로움 없애고 변화를  주고자 합니다.

  “전인권의 <행진>을 탕진으로 바꿔 부르는데 / 그것도 지루하면 펭귄으로 불러”
  단조로움을 없애려 변화를 주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훨씬 신선함을 가져다줍니다.  즉 어느 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 여행 떠난다든지, 갑작스럽게 머리를 깎고 속세를 등진다든지 하는 등의 파격적 일탈에 이르진 않더라도 우리 삶엔 변화가 필요합니다.

  “전인권은 왜 행진에서 한 발짝 더 나가지 못했을까?”
  이 시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시행입니다. 전인권이란 가수 한 사람을 뜻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다 전진하지 못하고 정지하고 있음을 에둘러 표현했기에. 90년대 그의 콘서트에 가서 그의 터지는 듯한 선창에 이끌려 떼창을 불렀을 땐 우리 모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시에서처럼 돈맛을 알아선지 뒤로 갈수록 소리에 힘이 적어지고 파격도 없어져 갔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요. 이 시가 나온 2000년도 초반, 뭔가 엄청난 변화가 생기리라 여겼건만 그대로입니다. 그게 어쩜 시인에게 못마땅했을지도...

  “탕진을 흥얼거리며 스니커즈가 닳도록 걷다가 문득”
  이제 '탕진'의 의미를 파헤쳐 봅시다. 보통 탕진이라 하면 ‘재물, 시간, 힘, 정열 따위를 헛되이 다 써 버림’의 뜻으로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허나 이 시에선 외려 긍정적입니다. 나태하고, 도전 정신이 빠지고, 현실 안주적인 그 마음을 탕진해(다 없애)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니까요.

  “~~ 전경 아저씨들도 탕진! / ~~ 과일가게 총각도 탕진! / ~~ 뚱뚱한 아줌마도 탕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무기력한 행진 대열에서 빠져나와 탕진 대열로 들어서야 합니다.  말로만 '평화!'니 ‘자유!’니 아무리 외쳐도 오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평화도 자유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찾으려는 강렬한 의지 하에 밀어붙이는 행동, 즉 ‘탕진’이 따라야 변화가 주어집니다.

  우리 이제 행진 대열에서 벗어나 탕진 대열로 나아가자고 시인은 우릴 이끕니다. 지루한 일상과 판에 박힌 사고방식을 벗어나야만 변화가 생깁니다. 안정보다는 도전으로, 단조로움보단 복잡함으로, 나태와 안일보다는 저돌과 혁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사안일, 나태, 답습, 추종, 베끼기, 제자리걸음’ 등을 모두 다 탕진해 없애버려야 합니다. 전인권이 ‘부활’을 시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인권도 본래의 야성을 찾게 될지 모르지요.

  *. 전인권의 [행진] 한 번 들어보십시오.
https://youtu.be/U3VIhS2yUqA?si=rDWCejNOMyTogNBN


전인권 - '행진' [콘서트7080, 2004] |Jeon In-kwon - 'March'

KBS 1TV 콘서트7080 6회 - 2004년 12월 11일 방송전인권 - '행진' [콘서트7080, 2004] |Jeon In-kwon - 'March'#Again가요톱10 #콘서트7080 #전인권 #들국화-가사-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그러나 나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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