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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1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15)

제115편 : 임영조 시인의 '파리 - 곤충 채집 2'

@. 오늘은 임영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원시는 1연인데 해설하기 편하도록 연 가름함에 양해를 구합니다.)

    파리 – 곤충 채집 2
                                임영조

  제법 멋진 날개옷에
  빤질빤질 윤나는 상판때기로
  예고 없이 날아드는 건달놈
  온갖 증오와 저주를 한몸에 받지만
  언제 어디서나 목숨을 걸고
  신출귀몰하는 유물론자다

  희롱인지 재롱인지
  아무나 붙들고 참견하기 잘하는
  오, 성가신 친구여,
  나는 가끔 네가 부럽다

  도무지 어디에 허리 꺾고
  손비비고 사는 재주도 없어
  이 둔한 손으로 허공이나 저을 뿐
  너의 아연한 활약에 속수무책인
  나는 다만 어디론가 숨고 싶단다

  손이 발이 되게 비노니
  부디 용서하시압, 그리하여
  핥고 빨고 씹고 뱉다 물리면
  손 털고 날아가면 그만인
  그 잽싼 처세가 나는 부럽다

  쉼표 혹은 마침표 같은
  탐욕의 덩어리여,
  식욕이 왕성할 때까지만
  살맛 나는 시절이므로
  두루두루 포식하다 가거라

  탁!
  생전에 가장 날렵하고 근면했던
  그러나 역시 파리목숨인
  한 걸신(乞神)의 비명횡사에
  나는 오늘 기꺼이 헌사(獻詞)를 쓴다.
  - [귀로 웃는 집](1997년)

  #. 임영조 시인(1943~2003년) : 충남 보령 출신으로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제9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으며, 시 쓰기 위해 직장을 버리고 전업시인으로 활동하다 세상을 떠남




  <함께 나누기>

  시인이 펴낸 [귀로 웃는 집]이란 시집엔 '곤충 채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10여 편의 곤충 시편이 담겼습니다. 이들 시편에는 자벌레, 파리, 매미, 지네, 거미 같은 곤충들이 화자에게 죽음 당하거나, 혹 소중한 가르침을 주거나, 원망 또는 찬탄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하찮은 곤충을 글감으로 시를 쓰는 능력은 결국 남보다 특출한 관찰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자세하고도 심도 깊은 관찰에서 얻은 정보로 상상의 날개를 달아 마음껏 붓을 놀리는 능력, 그래서 "소월시문학상"을 받았을지도.

  오늘 시는 파리를 의인화해 인격을 부여해 때로는 비웃고, 때로는 비틀고 때로는 웃음을 주기도 하는데, 여기서 파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미운 해충의 범주에서 벗어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1연(임의로 쪼갠)으로 들어갑니다.
  파리를 제법 멋진 날개옷을 입고, 빤질빤질 윤나는 상판때기를 지닌 '건달'에 비유합니다. 그렇지요, 위 사진 보다시피 파리를 제대로 보면 입성 좋은 멋쟁이입니다.  다만 예고 없이 쳐들어와 온갖 증오와 저주를 한 몸에 받지만...

  2연으로 갑니다.
  파리는 사람을 가려가며 달라붙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아니 동물도 마찬가지로) 아무에게나 아는 체하며 가까이하려 합니다. 제 딴에 희롱인지 재롱인지 분간 못하지만 참 성가신 녀석입니다. 헌데 화자는 그런 파리가 부럽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음에 나옵니다.

  3연으로 갑니다.
  파리는 어느 때든 허리 꺾고(굽히고) 손비비기를 잘하는데 그에 비하면 화자는 도통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이 시행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할 겁니다. 시인이 정말 파리를 부러워하는지 비꼬는지.
  해석은 각자 하시길. 윗사람에게 손 잘 비벼 성공한 사람을 보고 경멸할지 부러워할지는 읽는 이의 몫이니까요.

  4연으로 갑니다.
  화자는 이 연에 이르면 파리의 잽싼 처세가 부럽다고 합니다. 비록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윗사람이 화내면 무조건 손이 발이 되게 비는 자세. 한 번 자존심 굽히면 다음이 편한데 그리 못하는 사람들도 꽤 되지요.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비꼬는 투가 될 터.

  5연으로 갑니다.
  "쉼표 혹은 마침표 같은 / 탐욕의 덩어리여"
  이 시행이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파리의 형태를 묘사한 표현인지 다른 속뜻을 지니고 있는지. 맘대로 풀이한다면 파리를 끝없는 '탐욕의 화신'이라 했으니, 잠시 쉴 때는 물론 끝날 때까지 욕심을 버리지 않는 존재란 뜻으로 읽어봅니다.

  6연으로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날렵하고 부지런하고 욕심이 많아도 결국은 파리목숨. 즉 한방에 가버린다는 말씀. 다만 비명횡사한 파리를 위해 찬양하는 헌사를 쓴다고 했으니 이도 비꼼인지 부러움인지는 각자에게 맡깁니다.

  시인이 묘파한 파리 같은 인간(잘 비비며, 욕심 많으며, 처세에 능한)을 보면서 아래 넷 가운데 우린 어디에 속할까요?
  1. 아주 당당하게 파리처럼 산다.
  2. 죽어도 파리처럼 살지 않는다.
  3. 파리처럼 살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4. 파리처럼 살지 않으나 가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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