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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1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14)

114편 : 조정권 시인의 '포도 식구들'

@. 오늘은 조정권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포도 식구들
                          조정권

  포도 한 송이에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고 있다
  가난한 시절 좁은 방에서 열 식구가 산 적이 있었다
  가족이란 저렇게 모여 사는 것이다
  포도알같이 저렇게 다닥다닥 살을 붙이고
  웃고 또 울고 또 웃는 것처럼
  - [시인시각](2010년 가을호)

  #. 조정권(1949년 ~ 2017년) : 서울 출신으로 197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산정묘지]로 ‘소월시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 시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음




  <함께 나누기>


  조정권 시인의 대표작은 대부분 긴 편인데 좀 어렵습니다. 그에 비하면 짧은 시는 읽는 즉시 쏙 들어옵니다. 그래서 긴 시를 올릴까 짧은 시를 올릴까 망설이다가 해설 달기 쉬워 후자를 택했습니다.

  제 어릴 때 살던 부산시 연지동 럭키회사 뒤 ‘팔칸집(한 가구당 부엌 하나 방 하나 딸린 요즘의 연립주택 닮음)’으로 시계태엽을 감아봅니다. 우리 남매가 5남 5녀였다고 하는데 제가 태어나기 전에 다섯 명이 정리되고(?) 2남 3녀만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방 하나에 모두 7명이 생활했는데 저는 하도 어려 그리 빽빽하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 다 살았더라면 열두 명이 되었을 텐데 그 좁은 방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기억 수첩에 담긴 영상 하나, 아버지만 개다리소반 밥상을 받고 나머지 여섯 명은 방바닥에 돌가루 포대(시멘트 포대) 깐 자리였습니다. 소반엔 반찬도 돌가루 포대 깐 자리완 차원이 달았는데, 나중에 저도 장남이라 하여 아버지와 겸상하게 되면서 신분의 승격(?)을 이뤘습니다.

  오늘 시는 포도알처럼 다닥다닥 붙어살던 옛 시절로 들어갑니다.

  “포도 한 송이에 /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고 있다”
  저처럼 생활글만 끄적이는 사람은 시인들이 쓰는 표현을 보면 늘 놀랍니다. ‘포도 한 송이에 식구들이 모여 산다’ 물론 포도 한 송이만큼 작은 방에 열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산다는 뜻으로 새길 수야 있습니다만.

  “가족이란 저렇게 모여 사는 것이다 / 포도알같이 저렇게 다닥다닥 살을 붙이고 / 웃고 또 울고 또 웃는 것처럼”
  오늘 시에선 ‘가족’과 ‘식구’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전에 따르면 둘은 차이가 납니다.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식구는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즉 한 집에 살며 한솥밥을 먹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으며(예 : 유학, 직장 일로 다른 곳에 삶), 혈육은 아니더라도 한 집에 살면서 한솥밥을 먹으면 식구가 됩니다. 그래서 조폭들은 저희들끼리 식구라 하는지도.

  그러나 오늘 시에서는 그런 세세한 구분은 하지 않고 가족과 식구를 함께 뭉뚱그려 사용합니다. 가족이라면 모름지기 포도알처럼 다닥다닥 붙어살아야 한다는 말. 그렇지요, 그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하나의 좁은 방에 모든 식구가 함께 산다는 뜻이 아니라 두 개 세 개 되는 방에 나눠 자도 함께 밥을 먹고살 수 있다면 가족이 됩니다. 허나 현실은 그리 살기 어렵습니다. 자식이 공부하러 다른 도시로 거거나 가장이 직장 관계로 멀리 떠날 때가 종종이니까요.
  요즘 우리 부부는 방이 세 개나 되는 넓고 넓은(?) 집에 단 둘이 삽니다. 설날 추석 같은 명절 아니면 텅텅 빈 채로. 아 가끔 고라니ㆍ 길고양이도 찾아오고, 꿩ㆍ 박새ㆍ 까마귀ㆍ 까치도 들릅니다만, 녀석들은 우리 몰래 왔다가 우리 보면 달아나니까요.

  오늘 시처럼 생활에 깊이 들어온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대를 불러일으킵니다. 가끔은 기쁜 빛으로 어떤 땐 슬픈 빛으로. 또 기쁨 곁에 슬픔이 묻어나는 시가 있고 슬픔을 다독이는 기쁜 노래도 보입니다. 그런 시에 시선이 머무는 걸 보니 저도 늙었는가 합니다.
  아직 비싼 포도지만 오늘 마트에 들러 포도 한 송이라도 사서 먹어봐야 하겠습니다. 혹 다닥다닥 붙어살던 묵은 情의 방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 붙임 사진은 서예가 박원제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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