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22)

제122편 : 손택수 시인의 '있는 그대로,라는 말'

@. 오늘은 손택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
손택수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있는 그대로더라
나이테를 보면서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턴테이블을, 높은음자리표와 자전거 바퀴를
연상하는 것도 좋으나
그도 결국은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지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나의 공부는 모두 외면을 위한 것이었는지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말
- [붉은빛이 여전합니까](2020년)

#. 손택수 시인(1970년생) : 전남 담양 출신이나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으며,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한때 [실천문학사] 대표로 있다가 사직한 뒤 ‘노작 홍사용 문학관’ 관장을 맡고 있음




<함께 나누기>

시가 다른 장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운율과 함축성과 상징성입니다. 특히 함축성과 상징성을 위해 비유나 묘사 같은 표현법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는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요. 거기에 담긴 속뜻이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분석하고...
제가 시 해설을 함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헌데 오늘 제목은 그런 면과 전혀 다릅니다. 아니 다르기보다 반대의 의미를 가집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 참 쉽습니다. 비유와 묘사와 상징 없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그런데 시인은 어렵다고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있는 그대로더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왜 힘들까요? 제가 비슷한 예를 들겠습니다. 아는 이에게 식사 대접하려 할 때 뭘 먹고 싶느냐고 묻습니다. '짜장면, 불고기, 돼지국밥, 치킨...' 이러면 참 쉬운데 대부분 어떻게 답하느냐 하면 ‘아무거나’
‘아무거나’라 누군가 답하는 순간 음식 시키려는 사람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집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다 먹을 수 있다’란 뜻이 담겼지만 달리는 ‘내 입맛에 맞는 음식 시켜 다오’란 뜻도 담겼으니까요.

“그도 결국은 /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나이테를 두고 글 쓰는 사람은 연못에 이는 물무늬로, 사람 손가락 무늬로, 전축의 턴테이블로, 자전거 바퀴로 높은음자리표로 비유합니다. 그러고서 멋지게 표현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합니다. 결국 나이테를 나이테 그대로 보는 것만 못하다고.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 그보다 슬픈 일은 없지”
비둘기는 평화를,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빨강은 정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허나 평화를 느끼는데 꼭 비둘기가 필요합니까? 아니 도심의 비둘기는 똥을 아무데나 싸고 시끄럽게 굴건만.
희생정신을 배우려고 십자가를 봅니까? 아니 거대 교회의 십자가를 보면 낮은 데로 임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이 무색해질 뿐이건만.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할 텐데, 순수한 그대로 봐야 할 텐데,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오히려 속이는 뭔가 있지 않느냐고 색안경을 끼게 된 우리. 그래서 우리는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모르고 지냅니다.

“있는 그대로, 참으로 / 아득하기만 한 말”
가장 쉬워야 할 말이 가장 아득히 먼 말이 돼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하다(좋아하다)가 그를 비난하는 말이 들리는 순간, 여태까지 그에게 가졌던 좋은 점은 다 없어지고, 과거 좋게 봤던 점까지 나쁘게 보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오늘 시를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읽는 이들까지 반성하게 만듭니다. 무엇을? 내가 사람이나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며 살지 않느냐고 반성해 보랍니다.
즉 시인은 사람이나 대상을 볼 때 자신의 주관이나 선입관을 내려놓고 그 자체 순수함을 보라고 합니다. 우린 손주 손녀를 볼 땐 있는 그대로 봅니다. 그처럼 있는 그대로 보면 다 이쁩니다. 오래 보면 더욱 이쁩니다. 그렇게 사람을 사물을 보라고.



*. 첫째 사진은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보단 도심의 난폭자로 군림하고, 둘째에선 거대하고 높은 십자가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
둘 다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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