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1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34)

제134편 : 안주철 시인의 '너는 나인 것 같다'

@. 오늘은 안주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너는 나인 것 같다
                                안주철

  우리는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없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덜 사라졌다
  섭섭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너 또한
  네가 가진 것은 나 또한
  확인할 수 없지만 가지고 있다

  나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을 벗어나는
  나의 이상한 행동이 너의 이상한 행동을 닮아 있다

  너는 운다 나는 우는 너를 본다
  나는 운다 너는 우는 나를 본다

  우리가 끝까지 감추지 못하고
  서로에게 민망한 장면을 하나씩 상영할 때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도 웃고
  우리가 서로 만나기 싫으면서도 마주앉아
  늘어진 시간을 톡톡 부러뜨릴 때

  너는 운다 네가 모르는 곳에서
  나는 운다 내가 모르는 곳을 만들면서

  나는 너인 것 같다
  미안하지만

  너는 나인 것 같다
  불쾌하겠지만
  -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2020년)

  #. 안주철 시인(1975년생) :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2002년 [창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2015년에 첫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을 펴낸 뒤 그 속에 하도 아내에 대한 글이 많이 ‘아내바보 시인’으로 불림.




  <함께 나누기>

  지금은 그런 말 자주 듣는 편이 아니지만 40~50대엔 남들이 우리 부부에게 이런 말 자주 했습니다. 둘이 꼭 남매 같다고. 하도 사람들이 그러기에 그 당시 거울을 봤습니다. 둘 다 둥글둥글한 얼굴 보고 닮았다 하나 싶었습니다. 하기야 부부는 오래 살면 닮는다고 하잖아요.
  허나 성격적인 면에서 둘의 사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늘 부딪히며 살 수밖에 없다고. 아내는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하는데 저는 특별한 일 있으면 나가지만 집에 머물기를 더 좋아합니다.

  아내와 저 둘의 성격이 완전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아내는 누가 부탁하면 싫은 데도 거절 잘 못하는 편입니다. 그에 반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박에 자릅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 평을 들으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날 딸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진 적 있습니다. 그때 대화 중에 저희들과 다른 우리 둘만 일치된 견해를 보이자 딸이 말했습니다.
  “어휴, 엄마 아빠는 부부 아니랄까 둘 다 성격이 똑같애.”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둘 성격이 똑같다고 말하는지. 저는 완전 반대라 여기고 살았는데...

  시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아직 조금 남아 있다 / 없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덜 사라졌다 / 섭섭하지만”

  나와 너 둘 사이엔 접합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전혀 다른 남인데 가만 보니 아주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게 좀 섭섭합니다. 접합점이 하나도 없이 사라졌기를 바랐건만 조금 남았기에.

  “내가 가진 것은 너 또한 / 네가 가진 것은 나 또한 / 확인할 수 없지만 가지고 있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봅니다. 바라보면 우리 둘은 분명히 일치하는 점 없어야 함에도 내 가진 걸 너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가진 게 네게 있고 네가 가진 게 내게 있다니. 우리 둘은 똑같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건만.

  “나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을 벗어나는 / 나의 이상한 행동이 너의 이상한 행동을 닮아 있다”

  내가 싫어하는 너의 이상한 행동을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싫어하건만 나도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닮고 싶지 않은 행동인데, 분명 내가 경멸하던 행동인데 그 짓을 지금 내가 하고 있습니다.

  “너는 운다 나는 우는 너를 본다 / 나는 운다 너는 우는 나를 본다”

  내가 울 때 너는 그저 바라봅니다. 네가 울 때 나도 우는 너를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이게 우리 둘 사이 일어나야 할 정상 행동입니다. 왜냐면 우리 둘은 절대 같아선 안 되니까요. 그럼에도 내가 슬플 때 너도 슬프고, 네가 슬플 때 나도 슬픕니다. 참 이상합니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도 웃고 / 우리가 서로 만나기 싫으면서도 마주앉아 / 늘어진 시간을 톡톡 부러뜨릴 때”

  부부는 연인이기도 하지만 원수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한 이불 속에 들어갑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더욱 가까워져야 하건만 결코 가까워지진 않은 채 마주앉아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우린 반대라 그래선 안 되는데 말입니다. 부부의 시간이 아무리 오래 되어도 한 번 접합점 없으면 영원히 없어야 함에도 말입니다.

  “나는 너인 것 같다 / 미안하지만”
  “너는 나인 것 같다 / 불쾌하겠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이 부부 되어 살다 보면 점점 같아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왜냐면 살면서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어려울 때도, 행복할 때도 같은 지점을 공유했으니까요.
  저는 오늘 시에서 '나와 너'를 부부 관계로 풀었습니다만 다르게 봐도 됩니다. 예를 들면 부자 부녀 사이로, 형제자매 사이로.

  어릴 때 저는 아버지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자식의 뒷바라지 해줄 능력이 없는 무능력한 사람, 그러고도 큰소리만 탕탕 치는 사람으로. 대학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누나가 절더러 ‘넌 클수록 꼭 아버지 닮았네.’ 하는 말이 아주 듣기 싫었지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았기에.

  헌데 어느 날 생각하니 닮은 꼴이 하나둘 나타났습니다. 흰머리카락이 적다든지, 이(빨)가 튼튼하다든지, 눈이 나쁜 점 같은 외형 말고도. 실컷 잘해주다가 상대가 잘못했을 때 너무 매몰차게 몰아친다는 점, 우리 아버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뒤에 보답은커녕 원망을 듣는.



  *. 앞 사진은 권용석('행복공장' 이사장)과 노지향(연극공간 '해(解)' 대표) 부부이며, 뒤는 배우 주진모 부부인데, '닮은 꼴 부부' 찾으니 인터넷에 나옵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산골일기(17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