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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1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35)

제135편 : 김정원 시인의 '평화주의자'

@. 오늘은 김정원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평화주의자
                          김정원

  참새가 총 든 허수아비 머리에 앉아
  똥 싸고 날아간다
  그래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오히려 벌써 그리운 듯
  새가 날아간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흰옷 입은 ‘사람의 아들’ 앞에서
  마을의 원로인 벼들이 머리 숙인다
  - [아득한 집](2021년)

  #. 김정원 시인(1962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2006년 [애지]를 통해 등단. 대안학교인 ‘한빛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한 뒤 담양에 살며 시를 씀
  (이름만으로 헷갈릴까 봐 먼저 남성 시인임을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언젠가 우리 마을을 한 바퀴 돌다 콩밭 팥밭을 지키는 기기묘묘의 파수병을 보고 「콩밭 팥밭을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란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다양한 모습의 파수병들. 팔 벌린 십자가에 와이셔츠만 걸친 허수아비만 눈에 익었는데 요즘은 얼마나 진보했는지.
  장대에 오토바이 헬멧 쓴 울타리에 빨간 장갑만 올려놓거나, 비닐봉지와 부탄가스와 고무풍선 합쳐 만들거나, 고무장갑을 불어 물을 넣어두거나... 그렇지요. 아무리 새대가리라도 같은 모양이면 잘 속아 넘어가지 않을 터. 그렇게 다양하면 속기 쉬울 겁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참새가 총 든 허수아비 머리에 앉아 / 똥 싸고 날아간다”

  논밭을 지키는 파수병 가운데는 아직도 전통적인(?) 허수아비가 많습니다. 시에 나오는 허수아비는 형상은 같으나 역시 업그레이드된 버전입니다. 허수아비가 총을 들고 있다니. 무시무시합니다. 함에도 참새는 그런 허수아비를 비웃듯 머리에 똥을 싸고 날아갑니다. 허수아비보다 비치한 주인을 비웃듯이.
  주인의 실수는 허수아비에 총을 안긴 것까진 괜찮으나 쏠 수 없으니 참새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조금만 돈 더 썼으면 녹음된 총소리를 들려줄 장치를 달았을 텐데. 그랬으면 효과를 봤을 텐데...

  “그래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 오히려 벌써 그리운 듯 / 새가 날아간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 그렇습니다. 여기 이르러서야 시인의 마음이 평범한 사람의 폭보다 훨씬 넓음을 알게 됩니다. 애초에 쓸모없는 형식적 총이지만 아마 쏠 수 있는 총이라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리라는 걸 미리 읽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엔 참새가 나락을 까먹기에 총 쏘고 싶을 정도로 무척 밉지만 허수아비에게 참새는 벗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좀 더 오랜 시간 놀다 갔으면 했는데 하늘로 날아갔으니 하늘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흰옷 입은 ‘사람의 아들’ 앞에서 / 마을의 원로인 벼들이 머리 숙인다”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나옵니다. 시에서는 허수아비로 비유돼 있고. 그럼 허수아비가 왜 사람의 아들이 되었을까요? 바로 허수아비가 나무십자가 모양의 형상에 흰옷을 걸치고 서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한 길 더 깊이 들어가면 총을 든 허수아비가 자신의 적을 보고 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벗으로 여겼으니까요. 나에게 해 끼친 상대를 물리치려는 평범한 인간과 원수까지 사랑하려는 듯 성자가 된 허수아비. 그래서 시인은 제목을 ‘평화주의자’라 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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