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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14.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73)

제173화 : '인불지이불온'이면...

     * '인불지이불온'이면... *



  <하나>


  해마다 마을 들어오는 길에 잡초를 네 번쯤 베어야 한다. 그래야 깨끗해 보이고 차 다니는 데도 불편 없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선 여름에 딱 한 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예초기 들고 나온다. 마을길 청소하려고.
  그럼 당연히 의문이 들리라. 나머지 세 번은? 세 번 더 하지 않으면 길이 엉망이 돼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입을 댄다, ‘쑥쑥하다’고. 우리 마을길은 다른 마을에 비해 쑥쑥하지 않다. 왜냐면 우렁각시 아니 우렁사나이가 두 분 계시기 때문이다.
  (쑥쑥하다 : 지저분하다’ ‘더럽다’는 뜻의 경남 방언)


(작년 마을길 합동청소 장면)



  십 년 전쯤 어느 날 울산 나가는데 마을길 청소한다는 방송 들은 적 없건만 길이 깨끗했다. 누군가 싹 잡초를 잘랐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무도 몰랐다. 그 일을 한 사람이 ‘내가 했노라!’ 얘기하지 않았기에. 나 같으면 떠벌렸으련만 그분은 생색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새벽 나가는 길에 보았다. 길에 외로이 예초기 돌리고 있는 사람을. 물론 내가 아는 분이었다. 바로 이웃에 펜션을 운영하시는 주인. 그분이 해마다 두어 번 잡초 베 주는 바람에 마을길이 깨끗해졌다.
  그 뒤 지나칠 때마다 그분을 만나면 인사를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그분이 했다고 말한 뒤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뒤 다음에 또 한 사람을 보았다. 먼저 청소한 펜션 사장님은 풀베기를 끝까지 다 하지 않고 (혼자 하기엔 길다) 자기 집 앞까지 한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머지는 내가 쉬엄쉬엄 해야지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뒷부분도 깨끗해졌다. 역시 마을 대청소하지 않았으니 누군가 했다는 뜻.
  알고 보니 마을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가음 어르신(몇 년 전 돌아가심)’의 아드님이셨다. 착한 DNA는 유전되는가.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나서니 정말 마을길이 깨끗해졌다. 이러면 합동 청소는 한 번만 해도 충분하다.




  <둘>


  인문계 고교 3학년 담임할 때 우리 학급에 인재(?)가 들어왔다. 2학년 때 담임이 ‘OO법대’ 감이라고 했다. 처음 봤을 때 믿기지 않았다. 외모는 똘똘함 대신 살짝 어벙해 보였으니. 설마 저 애가 그렇다는 말인가?
  달마다 모의고사가 거듭되면서 성적만은 정말 뛰어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인문계 전체 1위에 전국 성적도 최상위였으니. 성적이 아주 뛰어난 애가 있으면 담임은 기분이 좋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녀석의 나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벙한 외모와 달리 아주 반지빨랐다. 특히 청소 시간에 말이다. 녀석의 담당은 책걸상 옮기기였다. 책상이 여덟 줄이어서 한 사람당 두 줄 옮기라고 네 명 배치했는데 시작할 때 잠깐 보이다가 없어졌다. 녀석이 빠지니 셋이 대신해야 했고.
  어느 날 도서관 담당교사가 슬쩍 일러줬다. 도서관에도 한창 다른 애들이 와 청소하는데 녀석이 와서 자리 잡아 공부한다고. 불러서 야단쳤다. 그 시간은 공부 시간이 아니라 청소 시간이라고. 네가 맡은 구역이 있으면 책임지고 해야 한다고.




  나중에 들으니 태어나서 처음 야단맞았다고 했다. 원래 공부 잘하는 애들은 모든 일에 열외가 아니던가. 헌데 내가 야단쳤으니. 청소 시간에도 청소 대신 공부하여 좋은 대학 가면 학교의 명예도 높여주는데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 뒤 고약한 담임에게 걸린 걸 들켜 청소하는 척하더니, 다음 담당구역을 바꾼 뒤에도 이어졌다. (청소 구역을 한 달에 한 번 바꿨다. 흔히 하는 말로 꿀청소 구역도 있고 힘든 구역도 있었으니 형평을 기하자는 뜻에서)

  녀석은 바뀐 곳에 가서 또 슬쩍슬쩍 빠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도서관이 아니었고 창고 쪽이었다. 다행히(?) 내게 일러바치는 애가 있어 찾아냈다. 이번에는 더 야단쳤다. 하루는 높은 분이 불러 갔더니 좋은 말(?)로 부탁했다. 그 애가 하는 대로 놔두면 되지 않겠느냐고.
  교육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그깟 일이 무슨 교육의 형평성과 관계있느냐는 말을 들었고. 청소뿐 아니었다. ‘반지빠르다(말을 뺀질하게 하고 자기 것 챙김이 얄미울 만큼 약삭빠름)’는 말이 그리도 잘 들어맞는 애가 없을 듯.

  생활기록부 종합란에 아마 이렇게 기록했으리다. 앞에 좋은 말 늘어놓은 뒤에 한 마디 덧붙였다. ‘청소 열심히 하지 않는 아쉬움이 남음’ 녀석은 법대 대신 그에 버금가는 과로 진학했다. 그 뒤 학교에 가끔 들렀지만 담임인 나를 찾아오진 않았고.


(마음청소 이미지 컷 - 구글에서)



  <셋>


  한여름에 마을길을 풀베기하는 두 분의 남다름은 절대 생색내지 않는다는 점. 직접 내가 보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모른 채 지났으리라. 그에 비하면 나는 다르다. 잘못하면 꼭 꼬집어야 하고, 오른손만 한 일을 왼손까지 한 일인 양 떠벌린다.
  어딜 가나 열심히 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적어도 자기 집 앞이나 석축 밑에 풀이 무성하면 베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집 밭 가운데는 풀 한 포기 나지 않게 가꾸면서 내 집 안이 아니라 여겨선지 그냥 내버려 둔다.

  몇 년 전 어느 날, 그 사람이 밭일하고 있을 때 일부러 예초기를 들고나가 그 집 석축 아래 잡초를 베었다. 베면서 슬쩍슬쩍 눈을 주니 나를 봤음에도 오직 자기 밭 관리에만 몰두할 뿐. 마치 거긴 내 일 아니니 네가 알아서 하든 말든.
  물론 그가 변명할 말은 있다. 나는 여기 상주하는 게 아니고 (실제론 '5도 2촌' 대신 '5촌 2도' 함) 한 번씩 드나든다고. 혹 모르는가 싶어 어느 날 말했다.
  “내 집 앞 풀만 베도 마을이 훤해지겠지요.”
  못 들은 체한다. 혹 청각에 이상이 생겨서인가?


(구글 이미지에서)



  내가 청소를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글을 쓰니 혹 ‘저 사람은 자기 주변 청소를 열심히 하겠구나’ 하는 오해를 받을지 모르겠다. 미리 답한다. 청소도구를 아주 가끔 손에 쥘 뿐 열심히 청소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청소하기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편이니까.
  게다가 나는 깨끗하다기보다 ‘쑥쑥한’ 편이다. 그건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될 아내가 증명해 줄 것이기에. 외출할 때마다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다. 좀 깨끗하게 입고, 머리 손질 깨끗이 하고, 구두 좀 닦고, 집에 오면 옷 함부로 던져놓지 말라고.

  논어 앞부분에 ‘人不知而不慍(인불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란 구절이 나온다. 번역하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생색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남을 위해 일하고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오른손만 했는데 왼손까지 했는 양 생색내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후회한다. 그때 이웃집 사람이 스스로 석축 밑 잡초를 뽑도록 좋은 말 건넸더라면, 청소 시간 딴짓하는 애를 좀 더 교육적으로 좋게 타일렀더라면. 그러니 아직 마음의 청소가 아주 마이 덜 되었다. 실제 청소도 부족한데 마음 청소까지 안 되니 참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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