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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1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33)

제133편 : 이대흠 시인의 하고댁

@. 오늘은 이대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수문 양반 왕자지
                                 이대흠

  예순 넘어 한글 배운 수문댁
  몇 날 지나자 도로 표지판쯤은 제법 읽었는데

  자응 자응 했던 것을
  장흥 장흥 읽게 되고
  과냥 과냥 했던 것을
  광양 광양 하게 되고
  광주 광주 서울 서울
  다 읽게 됐는데

  새로 읽게 된 말이랑 이제껏 썼던 말이랑
  통 달라서
  말 따로 생각 따로 머릿속이 짜글짜글했는데

  자식놈 전화받을 때도
  옴마 옴마 그래부렀냐? 하다가도
  부렀다와 버렸다 사이에서
  가새와 가위 사이에서
  혀와 쎄와 엉켜서 말이 굳곤 하였는데

  어느 날 변소 벽에 써진 말
  수문 양반 왕자지
  그 말 하나는 옳게 들어왔는데

  그 낙서를 본 수문댁
  입이 눈꼬리로 오르며
  그람 그람 우리 수문 양반
  왕자 거튼 사램이었제
  왕자 거튼 사램이었제
  - [귀가 서럽다](2010년)

  #. 이대흠 시인(1967년생) :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94년 [창비]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1999년에는 [작가세계]에 소설가로 등단. 모 시인이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라고 극찬한 적 있으며, 대학 다닐 때 잠시 서울 산 일 말고는 줄창 장흥에서 생활함.


(외국 화장실 낙서의 예)



  <함께 나누기>


  올해 여든에 들어선 막내누나는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형을 존경하는 경우는 더러 봤어도 누나를 존경한다는 표현은 낯설 겁니다. 십여 년 전 만난 자리에서 “동생아, 한글 공부할라카면 우찌 하몬 되노?” 그 말에 제가 답했지요. “아니 이제사 한글 배워 멋하려고?”
  “니는 무슨 말을 그리 하노? 내는 못 배운 기 서러바서 꼭 배우고 싶다 안 카나.” 그 말에 부리나케 대답했지요. 찾아봐 주겠다고. 그때 소개받은 나이 많은 이들을 위한 한글강학에 다니다가 중학교 과정까지 마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존경할 만하지만 최근 누나가 오래 ‘아미동’ 살다가 ‘초읍동’으로 이사했다는데 지금도 버스 타고 거길 다니고 있답니다. 만나거나 전화하면 “참말로 공부 애려바서 못 살끼다” 하지만 손 놓지 않음을 아는 순간 눈물이 핑 돕니다.
  (참 초읍동에서 아미동까지 거리는 상당합니다. 혹 궁금하신 분들은 부산 지도 펴놓고 한 번 찾아보시길)

  시로 들어갑니다.

  이대흠 시인의 시적 특징이 잘 드러난 시입니다. 남도 사투리와 남도 정서가 듬뿍 담긴 시를 많이 쓰는데 특히 어르신이 주인공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작으로 「아름다운 위반」과, 여기 싣고 싶어도 은근히 야해서 곤란한 「황영감의 말뚝론」 두 편은 꼭 챙겨 읽어보시길.

  시는 쉽게 읽힐 겁니다. 전라도 사투리 몇이 잠시 짜글짜글하게 할 뿐 술술 읽히는 내용입니다. 앞부분은 제쳐두고 뒤만 한 번 읽어봅니다.

  “부렀다와 버렸다 사이에서 / 가새와 가위 사이에서 / 혀와 쎄와 엉켜서 말이 굳곤 하였는데”

  수문댁은 한글을 배워 읽을 줄은 알지만 사투리 발음을 벗어나지 못해 혼동하곤 합니다. 특히 자식과 전화할 때도 ‘옴마 옴마 그래부렀냐?’가 맞는지 ‘옴마 옴마 그래버렸나’가 맞는지 몰라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표준어인 가위라 해야 함에도 ‘가새’라 하는데 그때 수문댁의 혀는 혀가 아니라 ‘쎄’가 됩니다. 울엄마도 그랬지요, 제가 어릴 때 어머니를 애먹일라치면 “이 쎄가 만 발이 빠져 디질 놈아!” 하며 무시무시한(?) 욕을 했으니까요.

  “어느 날 변소 벽에 써진 말 / 수문 양반 왕자지”

  시 속에 주인공 부부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시골 여자들은 '택호'를 쓰지요. 수문댁이 택호라면 그 남편은 ‘수문 양반’이 됩니다. 우리 달내마을에도 아직 택호를 사용합니다. 가음댁 할머니의 남편은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가음 양반’으로 불리셨지요.
  위의 낙서 내용은 참 거시기합니다. 자기 남편의 ‘거시기’가 크다는 뜻이건만 아직 한글에 서툰 수문댁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입니다. 허니 그 낙서를 본 수문댁의 입이 눈꼬리까지 찢어지게 올라갈 수밖에. 그만큼 기분 좋아 의기양양하다는 표정이지요.

  “그람 그람 우리 수문 양반 / 왕자 거튼 사램이었제”

  이런 어쩌나, ‘왕 + 자지’로 끊어 읽어야 하는데 ‘왕자 + (이)지’로 잘못 끊어 읽으니 말이지요. 그러니 사람들이 자기 남편 수문 양반을 왕자 같은 사람이라 부른다고 착각하게 되고.
  그런데 저 낙서가 (공중) 변소에 써 있다고 했는데, 남녀 화장실 중 어느 곳인지, 만약 여자 화장실이라면 정말 큰일인데...


(띄어쓰기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생김)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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