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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1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32)


@. 오늘은 강현덕 시조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 [안개는 그 상점 안에서 흘러나왔다](2010년)

  #. 강현덕 시조시인(1960년생) :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2019년 제38회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으며, <역류> 동인으로 열심히 시조를 씀
  (참, 이름만으로 오해할까 봐 여성 시인임을 미리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십여 년 전 어느 여름, 비가 많이 와 땅이 질퍽질퍽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볼일 보러 읍내 나갔다가 그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얼마나 아프던지요, 주변 사람들이 볼까 퍼뜩 일어나려 했는데 다행히 저만치 떨어져 오는 한 사람뿐이라 통증 사라지면 일어나야지 하는데...
  어, 그 사람도 제가 미끄러진 곳 조금 앞에서 똑같은 자세로 넘어지는가 했는데 웬걸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저는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는 앞으로 처박혔습니다. 그러니 더 큰 부상의 위험이 있다는 말이지요.

  얼른 일어나 곁에 다가가 상태를 보았습니다. 얼굴이 땅에 갈렸는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눈밭이라 큰 부상은 아닌 듯했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병원까지 부축해 데려가 간호사에게 부탁하고 돌아서 나오다 좀 의아했습니다. 그새 통증이 사라졌는지 전혀 아프지 않았으니까..

  오늘 작품은 시조입니다. 언뜻 보면 시조 아닌 것 같은데 시조 맞습니다.
  해마다 현대시조를 소개하면서 고시조 형태와 전혀 다른 '구별 배행 시조'도 띄웠기에 이만하면 아실 겁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3장 형태로 바꿔봅니다.

  “울려고 / 갔다가 / 울지 못한 / 날 있었다
  앞서 온 / 슬픔에 / 내 슬픔은 / 밀려나고
  그 여자 / 들썩이던 어깨에 / 내 눈물까지 / 주고 온 날”

  TV문학관 같은 드라마 속 장면이 바로 그려집니다. 크리스천인 화자는 ‘기도실’을 찾았습니다. 어떤 종류인지 모르겠으나 그곳을 찾아 절대자에게 간청하지 않으면 안 될 아픔과 괴로움과 힘듦이 있었겠지요.
  ‘기도실’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절대자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며 마음껏 울며 기도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화자보다 먼저 기도실에 들어온 여인이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나 어깨까지 들썩이며 펑펑 울며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떤 슬픔인지 모르겠으나 저 정도 운다면 내가 겪은 아픔보다 훨씬 큼을 직감합니다. 순간 절대자에게 울며 기도하려던 마음이 쑥 들어가고 맙니다. 대신 그녀의 아픔에 동참합니다.
  시인은 그 순간을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로 표현했습니다. 나보다 더한 애절함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여인. 이어지는 표현도 참 맛있습니다.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화자는 기도실 찾기 전까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 여겼을 겁니다. 자신보다 더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 없으며, 누구도 그 아픔을 대신해 줄 사람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슬픔은 당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아파 봐야 아픔이 뭔지를 알게 됩니다. 슬픈 뒤에야 아픈 뒤에야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보입니다.
  오늘 잠시 눈을 주변에 주는 시간을 갖습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더 울고픈 사람이, 더 외로운 사람이 보일 겁니다.







  *. 첫째 사진은 조지 헨리 버튼의 작품(1860년)이며, 둘째 사진은 '베를린 리포트(2008년 12월 17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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