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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1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31)

131편 : 윤제림 시인의 '걸레 스님'


@. 오늘은 윤제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걸레 스님
                          윤제림

  청소 당번이 도망갔다.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괜히 왔다 간다.”
  가래침을 뱉으며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담임선생도
  아무 말을 못 했다.
  - [그는 걸어서 온다](2008년)

  #. 윤제림 시인(1960년생) : 충북 제천 출신으로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시인이면서 한국방송광고대상에서 수상한 유명 카피라이터로 [카피는 거시기다]란 책도 펴냄. 무거운 주제를 아주 싱겁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란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이승에 살다 저승으로 가는 삶을 ‘소풍 왔다 간다’라 표현했는데, 오늘 시인은 ‘청소하러 왔다가 간다’로 풀었군요. 제목 '걸레 스님'에서 아시다시피 걸레 스님이란 별명을 지닌 ‘중광 스님’을 글감으로 잡았습니다.
  오늘 시는 수많은 해학을 던지며 무애행(無礙行 : 막히거나 거치적거림 없이 행함)을 살다 간 스님을 다룬 시답게 내용이 무겁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네 삶을 학교 다님에 비유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이승’이란 교실의 학생이며, 특히 규율을 준수하지 않는 중광은 불량 학생이면서 불량 승려로 찍혔습니다.

  그렇지요, 빈속에 소주 다섯 병을 들이붓고는 그림과 시를 짓는가 하면, 격정적으로 춤을 추기도 하고, 흥이 오르면 걸친 옷을 모두 벗어던지기도 했지요. 살아 있는 자신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성기에 붓을 매달아 선화를 그리고, 미국 한 대학에서 강연 도중 여학생에게 키스하는 일화도 남겼으니...

  시로 들어갑니다.

  “청소 당번이 도망갔다”

  청소 당번, 학생들이 드나드는 학교 학급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학급에는 늘 청소 당번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헌데 한 번 더 청소 당번을 봅니다. 학교가 세상을 비유한다면 청소는 세상을 청소한다는 말이 됩니다.
  세상엔 얼마나 청소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까. 더러운 사회도 더러운 인간들도 청소해야 할 부분입니다. 스님은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학교를 떠납니다. 아직도 청소해야 할 구석이 많이 남았는데도 말입니다.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학교에 미련이 남아서 청소하며 살고 있습니다. 청소하면 좀 더 나아질까 봐 빗자루를 밀대를 놓지 못합니다. 허나 스님은 이미 청소 더 한다고 해서 깨끗해질 사회가 아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미련 없이 떠났고, 우리도 그런 사정 알기에 붙잡지 못합니다.

  “괜히 왔다 간다.”

  이 시구는 윤제림 시인이 처음 만든 말이 아니라 걸레스님이 남긴 임종게(臨終偈)입니다. 임종게란 스님이 입적(열반)하시기 전에 마지막 남기는 유언과 비슷한 말입니다. 일반인은 묘비명에 남기고.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살다” ,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 모아들이고자 노력을 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를 남겼습니다.

  “가래침을 뱉으며 /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 담임선생도 / 아무 말을 못 했다”

  마치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촉법소년의 버릇없는 행위처럼 표현했는데 해학이 넘치는 스님의 모습 한 면을 보는 듯합니다. 하기야 무애행을 다 이루고 이승을 나와 저승으로 가는 스님을 누가 가로막을 수 있으리오.
  어떤 이는 이 부분을 유유자적하는 달관과 무욕의 메시지를 던져 준다고 했습니다. 저도 청소 당번 때려치우고 떠날 때 멋진 모습으로 나가야 할 텐데 멋진 말은 준비해 놨습니다만 멋진 삶이 못 돼 아쉬울 뿐.


(중광 스님의 퍼포먼스 : 경향신문. 2012년 3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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