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일의 고달팠던 발들이 널려 있다. 발들이 걸어왔던 눅눅한 길을 햇살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 월요일에는 저 가운데 하나가 뽀송뽀송한 몸으로 주인을 따라 길을 나설 것이다. - [그리움의 넓이](2012년)
#. 김주대 시인(1965년생) :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8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페이스북’에 문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올리는 바람에 ‘문인화가’ 또는 ‘SNS 시인’이란 별명을 얻음 이념의 지향이 뚜렷해 매스컴에 종종 오르내리곤 하는데 아마 그런 일로 아시는 분 꽤 되실 겁니다.
<함께 나누기>
요즘 비가 오지 않으면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빨랫줄에 넙니다. 건조기 있는 집에선 그걸로 말리면 되지만 우리는 그냥 빨랫줄에 널 뿐. 다른 옷은 모두 집게에 찝어 널면 되지만 양말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 번 널 때 열 켤레쯤 되니까 빨래집게 수가 감당 못하니까요. 그래서 꾀를 낸 게 울타리에 유자철선(有刺鐵線) 한 줄 짧게 달아 그 가시마다 양말을 꿰 답니다. (유자철선은 가시가 돋친 철사줄로 일정한 간격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있어 예전에 도둑 막으려 담장 위에 쳤던 그 철선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한 주일의 고달팠던 발들이 널려 있다”
누구나 다 양말을 신지만 오늘 시에서의 양말은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양말 주인공의 ‘고달팠던 발’, 한 주일을 그냥 편하게 일한 사람이 아닌 힘든 노동을 한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발들이 걸어왔던 눅눅한 길을 햇살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
‘눅눅한 길’을 걸어온 두 발의 주인공, 얼굴을 보지 않아도 수염 제대로 자르지 못하고 땀에 전 작업복 걸친 사람입니다. 다만 힘든 삶의 여정에 그래도 위안이 있습니다. 바로 눅눅함을 곱게 펴주는 햇살. 그 햇살로 양말은 뽀송뽀송 마르겠지요.
“월요일에는 저 가운데 하나가 / 뽀송뽀송한 몸으로 / 주인을 따라 길을 나설 것이다”
제목 여섯 켤레를 생각해 봅니다. 날마다 씻어 말리지 않고 엿새 동안 미뤄뒀다가 한꺼번에 처리합니다. 양말의 주인공이 게으르다고요? 아닙니다. 평일엔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니 빨 시간이 없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고달팠던 한 주일의 눅눅한 양말을 말리는 햇볕. 그 따뜻함에 왠지 모를 희망이 보인다면 그것도 덤이겠지요. 이왕이면 하루하루 각기 다른 빛깔의 양말로 갈아신듯이 우리네 삶도 이렇게 아기자기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인의 시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특수상대성 -
빛의 속도에 이르면 시간이 느려지는데 우리의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넘는다 우리가 늙지 않는 이유이다
*. 첫째와 둘째 모두 시인이 그린 그림입니다. 첫째는 오늘 시에 맞는 그림이고, 둘째는 시인의 그림 가운데 제 눈에 가장 깊이 들어온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