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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0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5)

제145편 : 윤성학 시인의 '내외'

@. 오늘은 윤성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내외(內外)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가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 [당랑권 전성시대](2006년)

  *. 요의 : 오줌 마려움
  *. 간극 : 두 현상(사물) 사이의 틈

  #. 윤성학(1971년생) : 서울 출신으로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두 권의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 [쌍칼이라 불러다오]을 펴냈는데, 제목처럼 시가 쉽고 재미있으며 품은 깊이가 큼. 현재 [농심](주) 홍보실장으로 근무.




  <함께 나누기>

  국어 교사니까 글 읽다가 어원이 궁금한 낱말이 나오면 어디서 왔는가 찾아봅니다. 아주 오래전에 안팎을 뜻하는 내외(內外)가 왜 부부를 뜻하는지 알아보았는데 조선시대 습속과 관련 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설령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사대부 집안에선 남녀가 서로 만나지 못하게 높은 담벽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분리했습니다. 이를 ‘내외담’이라 했는데, 낮 동안엔 그렇게 떨어져 있다 밤이면 담 사이에 난 작은 샛길을 통해 자녀 출산 등을 위해 잠시 만났다(?) 헤어집니다. 허니 내외담에서 내외가 나왔습니다.

  오늘 시는 ‘부부 사이의 거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너무 멀지도 말며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라는 뜻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떠오르는 시입니다. 물론 실제로 불가근불가원 지키며 사는 부부는 없겠지요. 다닥다닥 붙어살거나, 아니면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살든지. ㅎㅎ

  시로 들어갑니다.

  화자가 결혼 전 현재 아내와 연애할 때 산에 올라간 적 있나 봅니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요의를 느낍니다. 남자라면 그냥 아무 나무나 엄폐물 삼아 싸면 되는데 여자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해서 숲속에 들어가 해결할 심사인 듯.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마침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기며 볼일을 보려 합니다. 화자는 불침번을 서야 하겠고. 이때 바위는 그냥 부끄러움 감추기 위한 소도구로 보이지만 꼭 소변 같은 일이 아니라도 뭔가 나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기도 합니다.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그녀의 요구입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즉 불가근불가원 거리에 서서 망을 봐 달라고. 묘한 건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화자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입니다. 당연히 파렴치함의 발로가 아닙니다. 그녀가 숨기고자 하는 첫사랑이든 성형 전의 사진이든 굳이 화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

  “바위를 사이에 두고 /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하기 적당한 거리”

  참 묘하지요, 부부는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은 간격을 유지할 때 시원하게 내통할 수 있다니. 물론 이 논리에 반박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리 부부는 너무 사랑하기에 한날한시도 어김없이 딱 붙어산다.’라고.
  시인의 표현에 동의하는 대신 중립을 택하는 분도 계시지 싶습니다. 때론 가까이하다 너무 가까워져서 불편해지면 좀 멀리하고,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지면, '너무 멀리 가지 마.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해!' 하고 사는 부부.

  그래서 부부는 ‘내연(內緣)의 관계라기보다 내통(內通)의 관계’라 하는가 봅니다. 1cm의 간극, 그건 아마도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지 않을 만한 거리가 아닐까요? 그 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존경의 간격이라 믿습니다.



  *.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는데, 부부가 등 돌려도 너무 떨어지지 않는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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