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09.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7)

제147편 : 이명윤 시인의 '독거노인이 사는 집'

@. 오늘은 이명윤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독거노인이 사는 집
                                       이명윤

  그날 복지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노인이 느닷없는 울음을 터뜨렸을 때 조용히 툇마루 구석에 엎드려 있던 고양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단출한 밥상 위에 내려놓은 놋숟가락의 눈빛이 일순 그렁해지는 것을 보았다. 당황한 복지사가 아유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하며 자세를 고쳐 앉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흐느낌은 오뉴월 빗소리처럼 그치지 않았고 휑하던 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과 벽시계와 웃옷 한 벌과 난간에 기대어있던 호미와 마당가 비스듬히 앉은 장독과 동백나무와 파란 양철 대문의 시선이 일제히 노인을 향해 모여들어 펑펑,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2024년)

  #. 이명윤 시인(1968년생) : 경남 통영 출신으로 2006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고 2007년 <시안>을 통해 등단함. 현재 통영시청 행정과 집필실에 근무




  <함께 나누기>

  한때 다니는 성당에서 독거노인 (사회복지) 관련 일을 맡았습니다. 특별히 그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맡을 사람이 없어서 맡았습니다. 뉴스를 보니까 독거노인에게 가장 힘든 건 생계보다 건강보다 누구 한 사람 찾지 않는 외로움이라는 말에 걱정이 되어 궁리했습니다.
  자주 찾아갈 수 있으면서 날마다 안부를 물을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요구르트 배달원에게 집에 배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 요구르트 배달하시는 분이 별도의 사례비 없이 아침마다 배달할 때 문을 두드려 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나라에서 '독거노인 안심 벨'이 시행되어 침대 머리맡에, 화장실에, 그리고 손에 들고 다니는 벨도 줍니다. 고독사를 예방하는 방안이긴 한데 위기 상황에서는 도움 될지 모르나 외로움을 이겨낼 방안은 못 됩니다. 누군가 때때로 방문해 말벗 돼드림이 최고의 방법인데...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마치 TV문학관 같은 데서 보듯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 듯 전개됩니다. 그래서 읽는 분들에게 장면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 그 노인이 남이 아니라 내 부모인 듯 먹먹해집니다.

  “그날 복지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노인이 느닷없는 울음을 터뜨렸을 때”

  독거노인 댁을 (가끔씩) 들르는 복지사가 뭔 말인지 알 수 없으나 한 마디 하자 노인이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짐작에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는 다른 노인 얘기 꺼냈나 본데,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자신의 처지가 슬퍼 울음 터뜨렸다?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을까요? 단순히 외로움을 전하는 표현이라면 이 시는 평범한 시가 되었을 테고 제가 배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노인의 외로움은 사람뿐 아니라 주변 정물(情物)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고양이도 놋숟가락도 흐느끼고 심지어 집도 서러워서 어깨를 들썩입니다. 뿐인가요, 밀려드는 서러움은 다른 사물에도 전염되어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 벽시계, 웃옷 한 벌, 호미, 장독, 동백나무, 파란 양철대문에 이릅니다.
  이들 모두가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할머니 주변에 모여듭니다. 무정의 사물들이 유정물이 되어 위로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끝으로 시인이 쓴 시작(詩作) 노트를 덧붙입니다.

  “어느 섬 면사무소에 근무할 때였다. 하루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집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찬이 너무 조촐해 자식들 이야기를 꺼내자 한동안 말이 없더니 갑자기 서럽게 우시는 것이었다. 그때 당황한 내 눈에 가득 들어온 것은 함께 울고 있는 집이었다. 할머니 냄새, 손길, 눈빛, 목소리, 기침, 혼잣말이 가득 배어 있는 집. 집은 할머니와 한 몸이었다.”

  *. 첫째 그림은 [경향신문](2024. 05. 12.)에 실린 김상민 화백의 작품이며, 아래는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