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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1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8)

제148편 : 문성해 시인의 '능소화'

@. 오늘은 문성해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능소화
                       문성해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 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렇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다

  머나먼 남쪽 어느 유곽에서도
  어젯밤 그 집의 반신불수 딸이 머리를 얹었다고 한다
  그 집의 주인 여자는 측백나무처럼 일없이 늙어 가던 사내 등에
  패물이며 논마지기며 울긋불긋한 딸의 옷가지들을 바리바리 짊어 보냈다고 한다

  어디 가서도 잘 살아야 한다

  우둘투둘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해마다 여름이면 발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
  -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2007년)

  #. 문성해 시인(1963년생) :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98년 [매일신문],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남편(유종인)도 시인인 부부 시인인데, 두 사람 모두 전업시인으로 오직 시작(詩作)에만 몰두한다고 함.


(우리 집 감나무에 매달린 능소화)



  <함께 나누기>

  오늘 시가 문성해 시인의 대표작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 집을 환하게 만드는 꽃이 바로 능소화라 띄웁니다. 능소화(凌霄花)에서 凌은 ‘업신여길 능’이며 霄는‘하늘 소’라, 풀이하면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고운 꽃’이라는 뜻입니다.
  능소화는 홀로 서지 못해 담장이든 죽은 나무든 가리지 않고 기대어 타고 오릅니다. 우리 집 자태 고운 능소화도 죽기 직전의 100년 된 감나무에 매달려 핍니다.

  감나무에 능소화 핀 모습을 멀리서 보면 늦가을 홍시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재작년 이맘때 「때 이른 홍시, 감나무에 달리다」란 제목으로 글을 써 배달한 적 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능소화의 생태적 습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능소화는 하늘로 하늘로 올라갑니다. 담장이 보이면 담장으로 나무가 곁에 있으면 나무로. 여기서 ‘머리를 올리다’란 표현은 위로 솟아오른다는 뜻 말고도 2연에 보다시피 ‘시집을 가다’란 뜻도 지닙니다.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 본 적 없는 꽃들이 /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렇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다”

  우리 집 능소화는 죽어가는 감나무에, 시에서는 죽은 측백나무에 매달려 웃고 있습니다. 능소화는 제 스스로 아랫도리를 굳건하게 디디고 피는 꽃이 아닙니다. 허공에 힘없이 매달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머나먼 남쪽 어느 유곽에서도 / 어젯밤 그 집의 반신불수 딸이 머리를 얹었다고 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반신불수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직접 본 일이 아닌 누군가에 들은,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 안 되는. 제법 시를 읽은 글벗님들은 눈치 챘을 겁니다. 반신불수 딸과 능소화 관계를. 그렇지요, 능소화와 반신불수 딸은 동일체입니다.
  반신불수이니 홀로 독립하기 힘들어 누군가의 도움 받아야 합니다. 능소화 역시 그렇습니다. 제 홀로 피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 붙어 피니까요. 그렇지만 능소화는 다른 꽃처럼 이쁘고 건강하게 핍니다. 장애를 가진 딸 엄마도 그랬을 겁니다. 능소화처럼 이쁘고 건강하게 피어나기를.
  유곽의 주인 여자는 죽은 측백나무 같은 백수 사내에게 자기 딸과 함께 잘 살아 달라고 패물이며 바리바리 실어 보냈습니다. 오직 딸의 행복을 빌며.

  “우둘투둘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 해마다 여름이면 발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

  능소화가 반신불수 딸을 비유한다면 고사목은 반신불수 엄마가 되겠지요. 딸을 위해 가진 걸 다 갖다 바친 모정. 참 비유가 찰집니다. 한여름이면 어김없이 볼우물을 패고 환히 웃음 짓는 능소화의 붉은빛은 여름 햇살만큼 뜨겁습니다.

  우둘투둘한 늑골은 능소화 가지를 비유한 표현인 듯. 꽃에 비하면 참 많은 고생을 한 듯한 가지의 모습을 끌어오는 시인의 관찰력에 감탄할 뿐. 늙고 지쳐도 사랑은 모정이든 연정이든 언제나 붉은빛입니다. 한여름에 매달린 사랑의 빛깔에 더위도 슬며시 뒷전으로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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