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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1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9)

제149편 : 배한봉 시인의 '우포늪 왁새'

@. 오늘은 배한봉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우포늪 왁새
                              배한봉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항산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던 혈혈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들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잘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 [우포늪 왁새](2002년)

  *. 왁새 : ‘왜가리’의 딴이름.
  *. 우항산 : 우포늪 주변 64m 높이 소 닮은 형상의 야산
  *. 동편제 : 판소리의 한 유파.

  #. 배한봉(1962년생) : 경남 함안 출신으로 199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제26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 현재 여러 대학교에 출강하면서, 전업시인으로 과수원 농사를 지으며 시를 써 ‘생태주의 시인’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또한 창녕군 우포늪 지기 역할도 해 ‘우포늪 시인’으로 불리기도 함




  <함께 나누기>

  이 시는 하나의 연으로 돼 있지만 제가 나눈 대로 세 개의 연으로 구분하여 읽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이해할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할 점은 무명의 소리꾼과 왁새(왜가리) 둘의 연결 관계입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리꾼과 왁새는 둘 아닌 하나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우포늪의 왁새는 평생 득음을 못한 소리꾼에 비유돼 있습니다. 또는 거꾸로 떠돌이 소리꾼이 우포늪의 왁새에 비유돼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만큼 둘은 따로 떼서 설명할 게 아니란 말이겠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 소리꾼이 있었다”

  불도를 닦는 스님은 득도(得道)가 수련의 최고봉이라면 소리꾼은 당연히 득음(得音)이 되겠지요. 이들 소리꾼에게 일정한 소리가 쉼 없이 울리는 폭포가 수련의 장소요, 득음을 이룰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항산 솔밭을 다 적시고 /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폭포를 찾아다니던 소리꾼이 폭포 대신 우포늪을 찾아왔습니다. 왜 하필 우포늪일까요?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원시적인 생명력을 아주 많이 함유한 곳이라 이곳에 와서 바로 그 늪의 정기를 받으려 찾아왔습니다. 마침 봄날, 우포늪을 한층 운치 있게 만드는 자운영도 피어 소리꾼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활짝 웃고 있습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비록 떠돌이 소리꾼이지만 제대로 된 고수(鼓手 : 소리할 때 북 치며 도와주는 사람)를 만나면 신명나게 소리할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우포늪은 바로 그 고수가 있는 곳입니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솔바람과 꽃에다 왁새까지 있는 곳이니까요.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 저 왁새들”

  여기서 동편제는 판소리 창법의 하나로 보아 왁새들 울음소리가 그 창법 닮았다고 봐도 되고, 동편제를 마치 고개 이름인 양 느끼게 합니다. 왁새가 날아오르며 왁자지껄 내는 소리가 화자의 귀에는 판소리 완창 한 판 잘 끝낸 소리나 마찬가집니다.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왁새가 된 소리꾼은 우포늪에서 근원적인 생명의 힘을 얻음으로써 영혼의 심연에서 나오는 진정한 소리를 만납니다. 그 소리에 우포늪에 자라는 모든 풀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바로 이 힘은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우포늪이라 가능하단 뜻으로 읽습니다.
  스님이 득도하는 과정이 누군가 툭 던지는 말 한마디 듣고 얻거나, 지나가는 소울음소리(牛鳴聲)을 듣고 깨달음 얻었다는 말이 있듯이, 소리꾼의 득음 과정도 마찬가지로 다양할 겁니다. 오늘 시처럼 왁새 우는 소리에 담긴 강한 생명력에 힘입어 득음할 수도 있겠지요.

  문득 한여름 뙤약볕 아래 우포늪 걷고 싶습니다. 득도를 못해도, 득음을 못해도 거기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면 더없이 멋진 수확 아니겠습니까.



  *. 첫째 사진은 우포늪 왁새요, 둘째는 우포늪 자운영인데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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