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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12.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75)

제175화 : 아이구, ‘둥둥 세상’이...

     * 아이구, ‘둥둥 세상’이... *



  며칠 전부터 장마가 극성이다. 장마철이 되면 여러 면에서 불편하다. 습기가 차니 건강에 안 좋고 집 안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핀다. 게다가 외출할 때마다 우산 챙겨야 하고, 차 타고 내릴 땐 비에 젖은 옷과 우산이 신경 쓰이고.
  허나 시골에선 좀 다르다. 물론 시골에도 습하여 갈무리 중인 농산물이 썩기도 하고, 거미줄도 마구 치고, 지네 같은 벌레가 제 세상이니.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다. 우선 농작물에 물 주지 않아도 되고, 봄 아니지만 화초나 고구마순 같은 걸 옮겨 심어도 죽지 않고 잘 자란다.

  거기에 비 오다 그친 틈을 타 해가 얼굴 쓱 내밀고 비추다가 다시 비 오니 작물 자라는 모습이 실시간 영상 보는 듯 쑥쑥 큰다. 장마철이면 왜 동남아시아에 벼 3모작이 가능하고, 밀림이란 말이 생기고, 야자수가 하늘 찌를 듯이 치솟는지 알 만하다.
  까닭은 작물 자람에 ‘햇빛’과 ‘비’라는 필수 요소 둘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이러면 자라고 싶지 않아도 자라기 마련. 잡초도 훨훨 자라 베어야 할 일이 늘어나지만 그래도 이맘때 농작물이 한껏 자라주니 가을 결실을 기대한다.




  노래 잘 부르는 가왕이 있다면 시조 잘 짓는 시조왕도 있을 터. 나는 고산 윤선도를 꼽는다. 그의 시조 가운데,


  “비 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마히 매양이랴 잠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난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비 오는데 들에 가겠느냐 사립문 닫고 소에게 먹이나 줘라, *장마가 늘 계속되겠느냐 쟁기 같은 연장 잘 갈무리해라, 쉬다가 해가 뜨는 날 보아 사래<이랑> 긴 밭을 갈아라)

  이 시조는 장마 때 작물이 잘 자란다는 내용보단 ‘장마 땐 논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 날 맑을 때를 대비해 농기구나 갈무리해라.’라는 주제를 갖는다. 당시엔 이 말이 딱 맞았으리라.




  헌데 요즘 장마는 예전 장마와 완전 다르다. 일단 비가 내리면 엄청나게 퍼붓는다. 며칠 전 밤에 내리는데, 아니 ‘내리는데’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이다. 한 삼십 분가량 퍼부었는데 하필 뇌성벽력 대제(大帝)의 지원도 받아 빗소리가 빗소리 아니었다. 지붕이 부서지지 않나 여길 정도였으니.
  삼십 분쯤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그대로 한 시간 더 이어졌더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호우 피해로 홍수가 나고, 농경지가 잠기고, 덜 익은 과일이 떨어지고, 급기야 인명사고까지 났으니...

  물론 우리 집은 수해로 잠길 염려는 없다. 해발 500m쯤 되니 우리 집이 잠긴다면 우리나라 대부분 잠긴다는 뜻이니까. 다만 뒤에 산이 있는데 전문가가 와서 보고 산사태의 위험은 걱정 안 해도 된다지만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요즘 장마는 예전 장마 아니다. 그땐 다소 낭만이라도 있었다. ‘마히 매양이라’ 표현처럼 장마가 늘 있는 게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가니. 허나 지금은 다르다. 어떤 학자는 우리나라 장마를 그 용어 대신 ‘우기(雨期)’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금씩 끈질지게 추적추적 내리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쏟아지니까. 집중호우라는 말이 만들어짐도 다 그렇다. 기간이 예전처럼 짧게 끝나지도 않는다. 쬐끔쬐끔 내리는 날까지 포함하면 한 달 이상 훅 간다. 그러니 우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다.

  옛날에는 비 안 올 때 집 안에서 농기구 손질이라도 하면 되었으나 지금은 전혀 아니올씨다. 논둑 밭둑 무너질까 걱정, 집 안에 물이 밀고 들어올까 걱정, 과수원의 과일 다 떨어질까 걱정, 다리가 끊겨 오도가도 못할까 걱정. 걱정이 줄을 잇는다.




  요즘 기상대 직원들이 욕 많이 들어 먹는다고 한다. 비가 오고 안 오고도 틀릴 때 있지만 강수량은 맞을 때가 오히려 드물다. 억수같이 내린 전날 '네이버'에 뜬 기상예보를 보니 저녁에 비 오는 양이 새벽 1~2시 사이에 0.5mm, 2~3시 사이에 1mm였다. 그런데 10초도 안 돼 1mm는 넘어섰으니.

  솔직히 우리 부부처럼 귀농민 아닌 귀촌민(그냥 시골이 좋아 살고자 찾아옴)은 비가 와도 농작물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 집이 어떻게 되느냐만 챙기면 되니까. 허나 농사가 전부인 집에서는 여러 번 아니라 딱 한 번이라도 집중호우 쏟아졌다 하면 한 해 농사는 다 망친다. 논에 물이 들이치면 벼가 쓰러지고 낙과가 속출하니까.

  텔레비전을 틀자 중국 전체를 뒤흔드는 홍수 피해 상황이 보도되고 있다. 댐 붕괴로 한 마을, 아니 한 시(市)가 다 잠겼다고 하니까. 돼지도 둥둥, 차도 둥둥, 집도 둥둥, 다 둥둥 떠내려간다. 급기야 한 가족을 실은 구명보트조차 물길을 헤쳐 나가지 못해 둥둥 떠내려간다.




  이제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 안다. 미국에선 허리케인이 도시를 휩쓸고, 또 다른 나라에서도 태풍과 홍수 피해 소식은 끝없이 들려온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점점 더 강력한 태풍이 불어오고, 점점 더 집중호우가 쏟아진다니까.

  모두 너희 인간이 벌인 환경 파괴가 준 쓰디쓴 맛을 보라고 하늘이 준엄한 경고를 하는 셈인가. 동물도 둥둥, 차도 둥둥, 집도 둥둥, 사람도 둥둥, 나라도 둥둥... 바야흐로 ‘둥둥 세상’이 왔다. 절대로 와선 안 되는 둥둥 세상이...

  *. 사진은 모두 뉴스에 뜬 기사를 캡쳐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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