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2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54)

제154편 : 신경림 시인의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 오늘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신경림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 [사진관집 이층](2014년)

  #. 신경림 시인(1936년생 ~ 2024년) :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시골의 흙냄새와 땀냄새, 거기에 한(恨)과 의지가 짙게 풍긴 민중시’를 쓴다는 말을 들으며, 사회가 불합리 부조리하게 흘러간다고 여기면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인이란 평을 받았는데 올 5월 22일 하늘로 가심.


(이철환 씨의 그림책 [아름다운 꼴찌] 표지)



  <함께 나누기>

  우리 대부분은 힘센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약한 이를 억누르기 위함은 아니겠지만 누가 나를 절대 건드리지 못하도록. 또 조연 가운데서도 처지는 조연은 싫고, 엑스트라는 더더욱 싫고, 주연배우가 되길 원합니다. 그러다 가끔 엑스트라나 조연에게 선심 베풀면 멋지잖아요.
  꽃을 찾아도 지자체에서 한껏 돈 들여 만든 꽃정원을 찾습니다. ‘튤립 꽃무릇 장미 국화’ 같은 꽃이 왕창 피는 축제장에 뻔질나게 드나듭니다. 혹 시골길 가다 만난 들꽃을 보곤 ‘아!’ 하고 한 번쯤 감탄 터뜨리지만 그뿐 꽃 축제장에서 본 꽃들만 화제로 삼습니다.
  초가삼간보다는 으리으리한 고층아파트에 살기를 원합니다. ‘너 어디 사니?’ 할 때 몇십억 아파트에 산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꼴찌에게 갈채를!’ 이 말을 멋지다 하면서도 내 아들이 일등 하기를 원합니다. 내 딸이 이등 하면 괜히 억울합니다.

  신경림 시인의 유명한 시가 참 많습니다. 제가 시인이 돌아가신 다음 날 배달한 「목계장터」를 비롯하여, 「가난한 사랑 노래」, 「농무」, 「갈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길」, 「나무 1」...
  위 말고도 수없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바로 오늘 배달하는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되더군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겁니다.

  언제나 양지보단 음지를, 중심보단 변두리를, 승자보다는 패자를, 다수보다는 소수에게 시선을 둔 시인의 감성을 잘 드러낸 시이기에.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운 존재를 보면 눈길 거두지 못한 삶, 그래서 시인과 작품이 참 잘 어우러지기에.
  시인은 양지에서 살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음지를 택하여 가진 자의 편에 서기보다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쥔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자, 뒤떨어진 자, 소외된 자, 아웃사이더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따듯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분이셨습니다.

  사실 위 시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다만 마지막 두 행이 조금 아슴푸레하지요.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뒤처진 자의 꿈은 온전치 못합니다. 이것저것 엮어야 제대로 된 꿈이 될 수 있으련만 그마저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허나 우린 압니다. ‘믿지 않는다’가 아니라 ‘믿는다’라고. 그래서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은 언젠가는 반드시 완전체로 갖춰지리라는 것을.

  내년에도 제가 시 배달을 계속하고 있다면 이 시인의 「별」이란 시를 올리렵니다. 미리 소개합니다.

     - 별 -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대학원신문](2009.09.23)에서 퍼옴)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긁적긁적(7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