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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2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55)

제155편 : 박세현 시인의 '저녁' '독자 만세'

@. 오늘은 박세현 시인의 시 두 편을 배달합니다.



    <시 하나>


         저녁
                    박세현

  앙리 마티스가 그리다 만 듯한
  저녁
  비빔국수를 먹고
  큰숨 한번 내쉬고
  그리고
  당신이 버린 여백에다
  다정한 친필로 시를 써야겠다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좋을
  그런 시
  - [여기 어딥니까](2018년)




  <함께 나누기>


  앙리 마티스에게 두 개의 수식어가 붙는다지요. ‘색채의 마술사’, ‘생략의 귀재’. 특히 파랑 같은 원색을 사용한 색채감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고 하며, 너무 많이 생략해 설명 덧대지 않으면 무얼 그렸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 시에서 저녁의 빛깔을 ‘앙리 마티스가 그리다 만 듯한’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시인이 이런 표현을 했을 때는 앙리 마티스의 저녁이란 그림을 찾아보란 뜻은 아닐 겁니다. (그런 제목의 그림 없음)

  그렇다면 마티스의 그림에서 보여준 ‘저녁 무렵의 빛깔’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봄이 더 타당하겠지요. 혹 이런 말 들어봤을 겁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우리나라에선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였으니까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원래 프랑스식 표현으로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을 지녀,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경계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해가 진 직후 어둠이 몰려오기 직전의 하늘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분들이 꽤 됩니다. 해는 없지만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는 시간대.

  ‘개와 늑대의 시간’이 이미 누군가 만든 표현이라면 ‘앙리 마티스가 그리다 만 듯한 저녁’은 시인이 창조한 표현입니다. 익숙한 다른 표현으로는 블루아워 -blue hour -라 하는데 이때의 하늘은 완전히 어둡지도 밝지도 않으면서 푸르스름한 빛을 띠어 매우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이 버린 여백에다 / 다정한 친필로 시를 써야겠다 /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좋을 / 그런 시”

  그러한 저녁, 그대가 남겨 놓은 여백에 시를 쓰겠습니다. 다른 누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그대는 읽어주겠죠. 그러면 됩니다. 나의 시를 읽을 많은 독자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진정으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저도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정말 온 맘 온 힘 기울여 쓴 글인데 별로 읽어주지 않아 섭섭할 때 따뜻한 댓글 하나 보면 그냥 풍족해집니다. 시인도 그런 마음에서 시를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창과 교수로서 장차 시인이 되려는 제자들에게 비록 시 읽어주는 사람 드물지라도 포기 말라는 격려의 말로.




    <시 둘>



      독자 만세

                         박세현


  무슨 소린 줄 모르고 썼는데

  독자가 알아서 읽네

  - [나는 가끔 혼자서 웃는다](2020년)



  <함께 나누기>


  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시입니다.


  어려운 시를 쓰는 시인 한 사람을 알고 지냅니다. 그랑 만나 얘기할 때마다 “야, 시 좀 쉽게 써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면, 그의 답입니다. “나도 쓸 때는 거기 취해 붓 가는 대로 휘둘렀는데, 솔직히 써놓고 읽으면 모를 때가 많아.”


  그래도 아는 시인이라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어 시를 배달하고자 한 편 골라 머리를 싸매며 겨우 해설 붙여 올렸습니다. 그리고 시와 해설을 보냈더니 오늘 시와 같은 답을 보내줬습니다. ‘나는 뭔 말인지 모르고 썼는데, 니가 나보다 더 잘 아네.’


  비웃는 게 아니라 어쩌면 진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본인보다 제삼자의 눈에 잘 보일 때가 있잖아요. 시를 못 쓰는 사람도 읽을 줄은 아니까, 자꾸 읽다 보면 눈도 조금 트이고 그러면 한 마디 할 수 있을 터.


  #. 박세현 시인(본명 박남철, 1953년생) :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83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원주 상지영서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했으며, ‘빗소리듣기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시와 수필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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