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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2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56)

제156편 : 최광임 시인의 '두꺼운 옷 입고 있었다'

@. 오늘은 최광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두꺼운 옷 입고 있었다
                                       최광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밥때를 비켜 혼자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식은 밥에 고추장 얹고 통깨 몇 알 뿌려 비빌 때의 느낌과
  타월로 제 몸의 때를 밀 때의 퍽퍽함이나 같은 일이다
  싱크대 위, 흐린 햇살을 쳐놓고 선 채로 쓸쓸함을 뜬다
  식도를 타고 오르는 간밤의 취기
  나 말고 또 누구를 만났었던가
  붉은 밥 수저 안에서 역류성 식도염이 따끔 거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겹겹의 웃음이 번지고 있지만, 장기 공연하는 배우들 같았다
  말이 건배를 하고 술잔이 건배할 때도
  형광등보다 도수 높은 쓸쓸한 눈빛들, 외투 속
  어깨를 심하게 들먹이며 골목 어디로 흩어지던 사람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보다
  사랑 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더 쓸쓸한 일이다
  사랑이 없다는 것과
  사랑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일,
  유치환의 행복이, 한도 초과 카드 명세표처럼 거치적거린 날
  살얼음 얼던 간밤의 거리는 무표정하다
  누군가 혼자서 밥을 뜨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는 하루.
  -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2004년)

  #. 최광임 시인(1967년생) : 전북 부안 출신으로 2002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중앙일보에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를 연재했는데, ‘디카시’란 SNS상에서 디지털 사진과 시를 결합한 새로운 시 놀이임
  현재 두원공대 겸임교수로 있으며, 이름만으로 혹 오해할까 봐 여류시인임을 미리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글벗님들께서 혹 이 시를 읽고 난 다음에 어떤 느낌이신지. 곳곳에 보이는 참신한 표현이 좋아서라고 할지... 저는 화자가 정말 외롭구나. 김현승 시인의 표현대로 하자면 ‘절대고독’ ‘견고한 고독’에 빠져 사는 삶이라 할까?

  시로 들어갑니다.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 밥때를 비켜 혼자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함은 대충 아무렇게 끼니를 때우는 일과 같다고 합니다. 즉 겨우겨우 목숨 연장을 위해 살아가는 거라고. 사랑하지 못함이라 표현했지만 사랑받지 못함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늘 혼자일 수밖에 없겠지요.

  “식도를 타고 오르는 간밤의 취기 / 나 말고 또 누구를 만났었던가”

  임의로 가른 2연에서도 쓸쓸함과 고독은 혼자 마신 취기와 함께 절로 번져 나옵니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구를 만났던가’, 이 표현은 나 말고 다른 누구를 만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래서 ‘혼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면 그가 마른 사람인지 뚱뚱한 사람인지 알 수 없어 자신을 위장하기 좋습니다. 장기 공연하는 배우들이 겹겹의 웃음을 내뿜고 있지만 그건 진짜 웃음이 아닙니다. 장기 공연 속 맡은 역이기에 보이는 거짓 웃음일 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보다 / 사랑 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더 쓸쓸한 일이다”

  이 시행은 다음 연에 나오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에 나오는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와 비교됩니다. 당연히 유치환 시인과는 표현이 달라야 하겠지요. 살짝 변형된 표현이 주는 묘한 쓸쓸함.

  “사랑이 없다는 것과 / 사랑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일”

  ‘사랑이 없다는 것’과 ‘사랑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어떻게 다를까요? 앞이 애시당초 사랑이 완전히 말라버려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뒤는 사랑해야 할 어떤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읽어봅니다.
  아예 사랑이 없는 사람은 쓸쓸할 일이 없을 터. 무관심, 무신경으로 일관하니 마음 다칠 일도 없겠고. 그러나 사랑하고픈데 사랑할 사람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미치도록 쓸쓸함과 공허함과 불편한 마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겁니다.

  “누군가 혼자서 밥을 뜨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는 하루”

  저는 혼자 먹기 싫어해 아내더러 식사 때는 꼭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집 남편들은 혼자서 잘 먹던데...’ 하는 말을 곧잘 합니다. 자기 감정을 들킬까 봐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걸친 사람을 보면 참 안쓰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 저를 두고 하는 표현 같아 뜨끔합니다.

  혼자 밥 먹는 사람, 두꺼운 외투를 걸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보내는 하루, 참 쓸쓸해 보입니다.



  *. 첫 사진은 [아주경제] (2013년 2월 7일)에서, 둘째는 [매일경제] (2020년 9월 14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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