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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2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57)

제157편 : 길상호 시인의 '희망에 부딪혀 죽다'

@. 오늘은 길상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희망에 부딪혀 죽다
                                     길상호

  월요일 식당 바닥을 청소하며
  불빛이 희망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
  믿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
  형광등에 몰려들던 날벌레들이
  오늘 탁자에, 바닥에 누워 있지 않은가
  제 날개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속이 까맣게 그을리는 줄도 모르고
  불빛으로 뛰어들던 왜소한 몸들,
  신문에는 복권의 벼락을 기다리던
  사내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어쩌면
  저 벌레들도 짜릿한 감전을 꿈꾸며
  짧은 삶 걸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얇은 날개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은 얼마나 큰 수렁이었던가
  쓰레받기에 그들의 잔재 담고 있자니
  아직 꿈틀대는 숨소리가 들린다
  저 단말마의 의식이 나를 이끌어
  마음에 다시 불지르면 어쩌나
  타고 없는 날개 흔적을 지우려고 나는
  빗자루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2004년)

  #. 길상호 시인(1973년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학교와 여러 강좌에서 시 창작 강사로 일하는 등 시와 관련된 일을 계속함.




  <함께 나누기>


  노동판에서 막일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랑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이가 있습니다. 그의 몸뚱이엔 자신뿐 아니라 마흔 넘어 얻은 아들과 아내의 생존까지 걸려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건강이 소중하지만 그에겐 삶 자체입니다.
  가끔 전화할 때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어딘가 몸이 아프다고 하여. 몇 년 전엔 어깨 '회전근개수술’ 받았다 하여 반년 가까이 제대로 된 벌이 못하고, 3년 전엔 맹장이 터진 줄 모르고 참고 일하다 결국 복막까지 터져 한동안 쉬어야 했고, 작년엔 이가 탈이 나 임플란트 할 수밖에 없어 돈 들어야 했고, 또 돈 들 일은 계속 생기고.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써야 할 돈이 많을 때 있다 하니.

  하루는 얘기 나누다가 그가 이리 말했습니다.
  “형, 세상에 가장 나쁜 인간이 누군 줄 아오?”
  갑작스러운 물음에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는데,
  “희망이 세상에 없는데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놈들이요.”

  시로 들어갑니다.

  “월요일 식당 바닥을 청소하며 / 불빛이 희망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 / 믿지 않기로 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작은 배가 무사히 뱃길 찾아감은 바로 멀리서 보이는 등대 불빛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불빛은 언제나 희망의 상징이지요. 헌데 화자는 불빛이 희망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면 지난밤에 형광등 불빛 보고 몰려들던 날벌레들이 아침이 되니 탁자에, 그리고 방바닥에 싹 다 누워 있으니까요. 불빛이 희망이라면 하루살이를 이틀 사흘 더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련만 날개가 타고 속이 다 타는 줄도 모르고 달려들어 죽게 만듭니다.

  “신문에는 복권의 벼락을 기다리던 / 사내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얼마 전 발표한 로또 1128회(7월 13일 추첨) 당첨자가 63명으로 역대 최다였다고 합니다. 저는 일확천금을 바라지만 로또를 사지 않습니다. 나랑 인연 없다고 여기니까요. 허나 서민에게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매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나 봅니다.
  의학용어로 터널 비전(tunnel vision)이란 말이 있는데, 컴컴한 터널에 들어가면 상하좌우는 볼 수 없고, 오직 빛이 있는 터널 끝만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하루살이가 저 죽을 줄 모르고 불빛만 찾아 달려들고, 마지막 인생역전을 꿈꾸며 로또에만 몰입하는 사람도 터널 비전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얇은 날개를 가진 사람들에게 / 희망은 얼마나 큰 수렁이었던가”

  쓸모없는 얇은 날개(배경)만 가진 사람에게 로또가 주는 엄청난 유혹, 그걸 희망이라 부르며 매달리는 사람들. 화자는 쓰레받기에 하루살이의 시체를 담으면서 희망 없는 사람들의 삶도 이와 같지 않느냐고 아파합니다.

  “타고 없는 날개 흔적을 지우려고 나는 / 빗자루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가끔 꿈을 이루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가끔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허나 희망이란 미사여구가 준 마약 앞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시인에게 그 결과가 너무나 확연히 보여 이런 시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빛이 오리라' 한 성현의 말을 믿을 것인가, '희망이 세상에 없는데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놈들이요.'라 말한 아우 같은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겠지요.



  *. 첫째 사진은 [동아일보] (2023. 05. 12)에서, 둘째는 [머니투데이] (2024. 05. 18)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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