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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26.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76)

제176화 : 두더지 한 마리의 죽음

    * 두더지 한 마리의 죽음 *


아침에 텃밭을 둘러보러 일어나 축담을 내려서는데, 어! 시멘트 길바닥에 두더지 한 마리가 뒤집어져 누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두더지가 시멘트 길바닥에 뒤집어진 채 하늘 보며 누웠다는 말은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녀석은 햇빛을 오래 쬘 수도 없거니와 달아오른 바닥에 누워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슬쩍 건드렸더니 역시 죽었습니다. 두더지 한 마리가 세상에 왔다 간들 누구 하나 관심 기울이는 사람 없습니다. 허나 저는 관심이 갑니다. 아니 신경써야 할 부분입니다. 왜냐면 두더지 죽음의 원인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어제 본 두더지)



  환경의 오염 상태를 측정 도구를 사용해 나온 수치로 정합니다만 시골에선 흔히 예부터 전해지는 상식으로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면 공기 자체가 더없이 맑고, 개울에 가재가 보이면 청정 1급수라는 말은 다들 들어봤을 터.
  덧붙이면 좀 징그러울지 모르나 땅 위로 뱀이 돌아다니고 땅속을 두더지가 파헤치고 다닌다면 적어도 거기 흙은 살아있다고 봐도 됩니다. 골프 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산속임에도 골프장 필드엔 뱀이 아주 드뭅니다. (전문 땅군을 투입해 뱀 잡는 골프장이 뉴스에 떴습니다만)

  두더지는 아예 골프장 필드에 절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만약 두더지가 거기를 마음대로 헤집고 다닌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걸어가다 발이 푹 빠진다면, 홀컵을 향해 굴러가는 공이 도르르 구르다 구멍에 쏙 빠진다면...
  산속임에도 뱀과 두더지를 볼 수 없음은 골프장에 제초제를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거기뿐 아니라 텃밭도 마찬가집니다. 잔디는 살고 잡초만 죽이는 제초제 뿌리면 당장 효과가 나타납니다. 일단 두더지부터 사라지고, 뒤이어 뱀도 사라집니다.




  우리 텃밭에 두더지 드나듦이 자유롭다는 말은 그만큼 작물 수확에 손해 많이 본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감자, 고구마, 땅콩 같은 뿌리작물 수확기만 되면 열받습니다. 감자 한쪽 끝이나 고구마 한가운데 푹 패인 흔적을 보면 그냥 던져버립니다.
  우리 텃밭에 살던 두더지가 죽은 까닭은 제초제 때문이 아닙니다. 제초제뿐 아니라 일반 농약도 거의 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뭣 때문에? 바로 길고양이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애초에 고양일 미워했습니다. 녀석은 깨끗한 곳에 볼일 본다더군요.

  그 말을 증명이나 하듯 오디 수확하려 깔아놓은 그물 위나, 잔디 새로 깨끗이 깎아놓으면 꼭 거기 와서 똥을 쌉니다. 또 밤마다 울어대는 이상한 소리, 게다가 밖에 뭘 말린다고 널어놓으면 꼭 건드려 넘어뜨리거나 떨어뜨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큰 통에 담아둬도 뒤적이고, 땅에 묻어도 파헤쳐 엉망으로 만들고. 특히 창고에 들어갔다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는 바람에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그러다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바로 땅콩과 고구마 수확을 앞두고 생겨난 일 때문입니다. 땅콩을 하나도 먹을 수 없게 알맹이 다 빼먹고, 고구마 역시 1/3 이상 흠집 냈을 때 두더지 짓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틀밭 만들며 그 아래 질긴 망을 깔아놓았는데도 다음 해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걸 이웃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두더지가 아니고 들쥐라 했습니다. 과연 관찰해 보니 틀밭 위에서 들어간 구멍이 보였습니다. 땅속이 아닌 땅 위라면 들쥐입니다.

  들쥐 가운데 단순히 작물만 빼먹는 녀석이 있지만 병을 옮기는 녀석도 있으니 들쥐를 없애거나 나다니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들쥐의 짓임을 확인한 뒤 길고양이 사료와 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예상대로 와서 다 먹었고.
  덕분(?)에 들쥐는 거의 사라졌고 두더지도 아주 감소함을 느꼈습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작전이 완전 성공했습니다. 비록 고양이 사룟값이야 들었지만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니 그 정도 돈이야 아깝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꼭 보답한다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그 보답인지 두더지를 잡아다 놓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뱀 때문에 고생하던 한 귀촌인이 이웃의 말을 듣고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었더니 뱀을 잡아 현관 앞에 두고 가는 바람에 기절초풍했다는 얘기도 그 예.
  고양이는 그게 은혜에 보답하는 거라 여겼는지 몰라도 그 부부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두더지를 제가 먼저 봤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내가 봤더라면...
  

(우리 집 틀밭)



  사실 길고양이나 들고양이, 참 ‘길고양이’와 ‘들고양이’는 다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둘은 서식지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데 사람이 거주하는 도심지나 주택가 고양이는 길고양이, 산속 등에 야생하는 고양이는 들고양입니다.

  요즘 ‘캣맘(길고양이에게 먹이 제공하는 여자)’ ‘캣대디’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좋지 않은 내용의 뉴스가 떠 기분이 묘합니다. 길고양이 사료를 챙겨주는 것까진 좋은데 자기 차 아래 두지 않고 남의 차 아래 둬 차 사고를 일으켰다든지, 자기 동네 길고양이는 놔두고 남의 동네로 원정 가 사료나 물을 둔다는 등 좋지 않은 소식이 떠 졸지에 캣대디 된 제가 뜨끔합니다.

  이런 갈등은 길고양이를 배려해 먹이를 주면 더 늘어나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게 된다는 주장과, 먹이를 주지 않아도 길고양이는 살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질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중성화 수술로 개체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제가 우리 집 드나드는 고양이에게 사료 주고 있다는 얘길 마을 분들이 들으면 아마도 같은 반응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요즘 드나드는 녀석들을 보니 참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제 두더지 한 마리의 죽음을 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입니다. 두더지도 해만 끼치는 게 아니라 도움도 준다는데. 게다가 길고양이가 두더지를 아무리 잡는다 해도 전체 개체수의 1/10 아니 1/100도 못 잡을 텐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길고양이 목숨이 두더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아닐 텐데... 상사화 한 촉이 곱게 올라온 아침에 생각이 좀 많아집니다.



  *. 셋째 사진은 [전북일보] (2017.12.11)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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