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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0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66)

제166편 :  이준관 시인의 '빈 의자'

@. 오늘은 이준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빈 의자
                      이준관

  아이가 식탁 곁에
  빈 의자를 갖다 놓는다
  왜 그러냐고 묻자
  누구라도 배고프면
  와서 앉아
  밥 먹고 가라고 그런단다

  아하!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누군가 갖다 놓은
  빈 의자가 많구나

  ​나무 곁에는
  푸른 그늘로 엮은
  빈 의자

  ​난로 곁에는
  따뜻한 불빛으로 만든
  빈 의자

  ​그래야지
  나도 내 마음 곁에
  빈 의자 갖다 놓아야지
  누구라도 외로우면
  앉았다 가라고
  -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2023년)

  #. 이준관 시인(1949년생) :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통해선 동시로, 1974년 [심상]을 통해선 시로 등단.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아동문학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시며, 대표작은 「구부러진 길」



  <함께 나누기>

  혹시 장미리(48년) 장재남(49년) 장은아(56년), 이 세 분을 아시나요? 세 사람은 남매이며 모두 히트곡을 남긴 가수입니다.
  삼 남매가 가수인 경우는 드문데 거기에 다 노래를 잘 불렀고, 특히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장재남이 부른 「빈 의자」 노랫말이 오늘 시와 비슷해서 시 읽자마자 바로 세 남매가 떠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 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 당신을 편히 쉬게 하리라"

  오늘 시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바로 이준관 시인의 시적 특징이 잘 드러난 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의 시를 10년 전쯤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그땐 일반 시가 아닌 동시를 먼저 만났지요.

  깔끔한 동시 읽다가 이 시인이 일반 시도 씀을 알고 뒤져봤습니다. 예상대로 쉬우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시가 많았습니다.
  오늘 시 역시 읽으면 저절로 마음에 바람이 불어올 겁니다. 잔잔하면서도 의미 있는 평화의 바람이.

  “아이가 식탁 곁에 / 빈 의자를 갖다 놓는다”

  식구들이 다 모여 식탁에 앉았는데 아이가 빈 의자 하나를 더 가져다 놓습니다. 당연히 부모로선 의문이 일겠지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이가 이리 답합니다. 누구라도 배고프면 와서 앉아 밥 먹고 가라고.

  “아하! 그러고 보니 / 세상에는 / 누군가 갖다 놓은 / 빈 의자가 많구나”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무지개」란 시에서 이런 시구를 남겼지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아이의 행동이 어른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아이의 말에 부모인 화자는 깨닫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빈 의자가 꼭 필요하다고.

  우리는 ‘빈 의자’가 지닌 함축적 의미를 잘 압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배려의 자리'라고.
  가만 보면 마을 입구 아름드리 당산나무 아래에 지나는 길손이 쉬라고 빈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산을 오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쉬고 싶을 때 석간수 나오는 샘 바로 곁에 놓인 표주박도 의자가 아니지만 빈 의자가 될 터.
  준비 안 하고 나섰는데 비가 몹시 내릴 때 지자체에서 비치해 놓은 ‘양심우산’도 따지고 보면 다 빈 의자입니다.

  “​그래야지 / 나도 내 마음 곁에 / 빈 의자 갖다 놓아야지 / 누구라도 외로우면 / 앉았다 가라고”

  외로움에 괴로움에 고달픔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베푸는 조그만 배려도 빈 의자가 됩니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도, 버스나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도,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도 빈 의자입니다.

  허나 양심우산을 갖고 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댄다면 ‘빈 의자’는 없고 ‘든 의자’만 있게 되겠지요.
  빈 의자, 정말 곳곳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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