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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08. 2024

[장편소설] 삼백아흔 송이 장미꽃(2)

제2편 : 사내(1-2)

  [제2편]



             - 사내(1-2) -


  “이 서방, 어때 일은 잘 돼 가고 있어?”
  이 양반은 비서라도 있을라치면 ‘이 팀장’ 하다가, 둘만 있을 때면 부장이란 호칭 대신에 ‘이 서방’이라 불렀다. 자기 딴에는 친근함의 표시겠지만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근함 뒤에 도사린 은근한 압력을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았기에.
  “은지 에미는 잘 있지?”
  아내와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 맞춰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염려 덕분에 잘 있습니다.”
  “난 그 애가 웬만한 사내 빰 치는 여자가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말이 시작되면 다음에 이어질 레퍼토리는 뻔하다.

  어릴 때 얼마나 아내가 똑똑했는가를 끄집어낸 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전교 학생회장을 지낸 것을 필두로 하여 여중과 여고까지 전교회장을 빠짐없이 했다는 사실을,  그나마 대학 다닐 때 여학생으로선 최초로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얘긴 내가 같은 학교를 다닌 덕(?)에 빼놓았지만 거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히 시조 읊조리듯 거의 반쯤 눈을 감은 채 얘기하곤 했다.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촉망받던 조카가 지금처럼 평범한 아낙이 돼 버린 게 모두 내 탓인 양 여기는 덴 할 말이 없다. 그 점은 나 자신도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함을 느끼고 있으니까.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그런 상황에서도 더욱 가난한 손위 시누이와 시동생을 도와주어야 할 형편에다 중풍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면 그건 삶이 아니라 생존일 수밖에 없음을.
  난 우리 회사 전무란 처삼촌이 왜 조카인 아내를 그렇게나 칭찬하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 - 그러나 장인이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이 되는 사람이 동생 되는 지금의 전무를 부모 대신하여 키우고, 당시로선 드물게 미국유학까지 하도록 해주어 형으로서의 감정보다 부모로서 느끼는 감정이 더 컸기에 형님의 딸을 그만큼 아끼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삼촌이 아내를 칭찬하는 뒷면에 자리 잡은 은밀한 의도를 익히 알고 있기에 아내를 칭찬하면 할수록 내 속은 엉망이 되어갔다.

  “박 이사가 요즘 일을 잘한다더군.”
  한 번도 직속상관을 끌어 와 칭찬한 적이 없던지라 기쁨은커녕 괜히 긴장되었다. 부서장인 박 이사와의 사이는 처음부터 그리 탐탁잖은 상태에서 출발했다. 저번의 기획실에서 이곳 홍보부로 발령받았을 때 명목상으로는 부장 - 그것도 부장대우라는 딱지를 면하지 못한 -으로 승진한 상태에서 옮겨졌다. 언뜻 보면 잘 나가던 부서에서 튀어 오를 가능성이라곤 거의 없는 한직으로 옮겼다는 사실은 어느 모로 보나 명백한 좌천이었다. 물론 부장이란 프리미엄이 붙어 있긴 했으나 그것도 이미 두 해 전에 승진해야 하는 걸 이제야 승진시켜 주면서 마치 생색이나 내듯 해 준 건 그나마 앞에 앉은 처삼촌의 덕분임을 모를 리 없었다.


  오죽하면 고교와 대학 동기면서 사내에선 가장 절친한 총무부장 녀석이,
  “야 이 새꺄, 너는 배알도 없나! 이까짓 회사 때려치우면 어디 갈 데 없어?”
  하며 당사자인 나보다 더 흥분했지만 사실 난 이 전출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부장이란 직함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것은 한 이십 년 가까이 피 말리는 업무 - 기획실 자체의 일이 다 그렇듯이 승진의 기회도 많지만 대신 질책을 들을 때도 많았다 -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 이젠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생 시절의 학보사 기자 시절에 대한 향수를 사오 년 전부터 부쩍 느껴오던 터이었다. 그런 나를 동기는 벌써 노쇠돼 안방 아랫목이나 차지하려는 노인들에 비유하며 비꼬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일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지정된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부서장이 부른다 하여 갔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 부장, 여긴 전에 있던 곳관 달라. 천방지축 마음대로 설치고 다녀도 되는 곳이 아냐. 나는 독불장군은 용납 못해. 아무리 전무님의 빽이라 하더라도 제 멋대로 하는 건 진짜 용납 못해. 차라리 내가 사표 쓸지언정!”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나에 대한 더러운 소문(?)에 대해 예방 차원에서 한 말이었을지언정 아직 짐도 풀기 전에 이런 식으로 대우받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한 건 아니지만 입에선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시면 얼마 안 있어 우리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사표 내야 함은 당연한 일이겠군요, 그게 누군지 모르겠지만.”
  볼 양쪽이 시뻘게지면서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감정을 있는 대로 돋운 소리가 이어졌지만, 그런 것보단 앞으로 맡을 업무가 결코 꿈처럼 되지 않으리란 점에서 씁쓸할 뿐이었다.

  “무슨 말을 들으셨습니까?”
  “아니, 헌데 말이야…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서방 성격은 내 익히 알지만 조금만 굽혀. 조직사회에서 살아남자면 ……”
  이렇게 이어지면 다음 내용도 공식에 의거해 전개되었다.

  조직사회에선 제 혼자 똑똑해선 살아남지 못해.
  바로 자네가 이미 그런 과정을 겪었잖아.
  왜 남보다 능력이 있으면서 남보다 늦게 진급하게 됐어?
  그게 바로 조직사회의 생리를 아직도 잘 파악 못하고 있기 때문이잖아.
  아아 물론 알아, 비위에 맞지 않은 소리나 행동 하기 싫다는 거.
  하지만 어찌 세상을 살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어?
  자네가 잃어버린 조국을 찾겠다는 큰 신념을 갖고 만주땅을 누비던 독립투사야 뭐야.
  고작해야 한 회사의 직원일 뿐이잖아.
  간혹 사원들 중엔 자네의 그 호기에 감탄하는 치들도 있겠지.
  그러나 돌아서면 전부 다 뒤에서 욕을 해, 왠지 알아?
  조직사회의 룰을 깨뜨리는 사람을 어떻게 긍정하겠어.
  우선 보기 좋다고 끝이 좋은 건 아냐.
  조직사회는 어디까지나 상명하복의 세계야.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명에 복종해야 조직이 제대로 움직여.
  이제 자네도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더 많은 위치가 됐잖아.
  조금만 굽혀.
  조금만 굽히면 자네 자리 찾는 건 일도 아냐.
  자네 동기인 선체설계부 이 부장, 해외영업부 최 부장, 그리고 총무부 박 부장을 봐.
  대우 딱지 뗀 지 옛날이잖아.
  벌써 이사 소리가 나오고 있어.
  창피하지도 않아?
  아예 능력이 없다면 이런 소릴 꺼내지도 않겠지만….


  거의 글자 몇 자 바꾸지 않은 일관된 구조 속의 말이 이어지더니,
  “이번 회장님 자서전은 잘해야 본전이야, 그걸 알아야 돼. 자칫 잘못하면 끝이야, 끝!”
  끝이란 말을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벼르고 있다면 제2차 구조조정이 곧 있느니 하는 판에 이번 일이 호재였다. 언제부터인가 사내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었다. 아생(我生) 연후에 살타(殺他)가 아니라, 살타(殺他) 연후에 아생(我生)이었다.
  처삼촌의 말마따나 이 일은 잘해야 본전이었다. 잘해본들 태가 나지 않는 이 일을 제대로 끝낸들 칭찬해 주는 이 거의 없겠지만 만에 하나 실수한다면 그것보다 더한 안줏감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全斗煥’ 대신에 ‘金斗煥’이라 교정 한 번 잘못 봄으로써 폐간된 잡지는 우리처럼 책자를 만들어 내는 직업인들에겐 살아 있는 교훈이었다. 더 길어질지도 모를 잔소리를 막은 건 순전히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 덕이었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우리 회사 젊은 회장을 포함한 유력인사들이 시장과 만나 ‘시 발전을 위한 대담’ 갖는 걸 기사화하기 위해 시청 회의실에 갔을 때였다. 원래 회장 관련 기사는 사내 의전실에서 주는 내용을 그대로 실으면 되었는데, 이 도시 최고 거물들의 만남은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 전체의 문제가 되어 지방신문 기자는 물론 중앙지의 주재기자와 TV에서도 관심을 가지던 터라, 다른 때 같으면 일개 회사의 부장으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사보 담당자라는 직함이 그냥 형식적으로나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거물들의 만남에는 거물 아닌 사람도 함께 자리한다는 사실이야 익히 짐작했지만 기자들을 제외하고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이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한 터였다. 소위 이 도시에서 방귀께나 뀐다는 사람들은 다 모인 듯했다. 취재고 뭐고 정신없어 나중에 의전실과 시청 홍보담당자에게 자료나 얻어 정리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회의 내용은 건성으로 들으면서 무심코 돌리던 눈에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도 소위 방귀께나 뀐다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

  나는 전에 미스 리가 그녀를 보고 지레짐작한 것이 틀렸다고 일차적으로 판단했다. 말대로라면 이 자리는 일개 유치원 선생님이, 아니 더 위로 봐야 원장이 끼일 자리는 아니었으니. 특히나 그런 판단을 확실케 한 건 그녀의 앉은 위치가 거물들의 최측근에 접해 있었다. 두 달 전의 시선을 끌지 못한 기사 - 처음 의도한 바와는 달리 그때 더 이상의 화젯거리를 그녀로부터 얻어낼 수 없었기에 그 기사는 간략히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를 보충해 줄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는 희열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조심스러웠다. 일간지에서는 가능한 충격적이고, 거대하고, 희귀하고, 상상 못 할 뜻밖의 내용을 원하지만 사보는 그렇지 않았다. 보편적이고, 공감적이고, 부드럽고, 그리하여 잔잔히 다가올 수 있어야 하며, 특히 개인에 관한 기사는 어디까지나 신중해야 했다. 당사자의 동의가 필수적이어야 하며, 쇼킹하고 흥미만 불러일으키는 내용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사표를 내야 하는 불상사를 넘어 명예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더욱이 그녀가 거물의 주변인물이라면 보다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때부터 초점은 온통 그녀에게로 맞췄다. 앉아 있어서 확실히 보기는 힘들지만 몸의 굴곡이 훤히 드러나는 연미색의 원피스를 입었다. 실내는 따뜻했으나 밖에는 아직도 삭풍이 휘감아도는 계절감을 뛰어넘는 그 패션이 어색하기보단 오히려 분위기를 주도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론지 가끔씩 일어났다 앉았다 할 때 언뜻언뜻 비치는 원피스의 실루엣에서 비록 자그마한 몸매지만 꽤나 짜임새 있고 볼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은 가까이 접근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분명히 그녀는 평범한 여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로얄석에 앉은 인물들, 형식적으론 시장이 으뜸이지만 이 도시의 특성상 그의 서열은 결코 첫째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학총장도 의식에서는 첫째인지 몰라도 실질적으론 아니었다. 우선 시 국회의원 다섯 명 중 5선 이상의 의원만 둘이나 되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현 여당의 사무총장이었고, 우리 회사의 회장만 하더라도 비중 면에서 결코 그들 아래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들이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건네고 그녀는 가볍게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을 수차례 보이는 게 아닌가. 눈의 초점을 좀 더 잡아당겨 보았더니 특히 사무총장과 말 주고받는 빈도가 가장 높은 편이었다.

  가만히 추리해 보았다. 일단 그녀는 거물들과 연결돼 있다. 그리고 특히 정치인과 관련 있다. 그것은 대부분 의원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데서 유추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소위 ‘정치하는 여자? 즉 지자체 같은 후보에 관심 있는 젊은 여자?’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의 미모에 젊은 여자가 정치 일선에서 뛰고 있다면 아무리 이 도시가 넓다 하더라도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엔 단연코 그런 얘긴 한 줄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서진 않더라도 어떻게든 그것과 관련 있는 건 분명했다. 누군가 나의 이런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면 하등 소득 없는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런 소릴 내뱉었을지 모른다. ‘저 치에게 저런 면도 있었나’ 하고. 그래도 추리를 멈출 수 없었다.
  다음으로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았다. 즉, 의원들 중 어느 한 사람과 가까운 친척일 가능성을. 딸이나 동생, 아니면 며느리에서 부인으로까지 확대했는데 일단 며느리나 딸일 가능성은 조금 희박해 보여 제외시키기로 했다. 아무리 그녀가 젊어 보이더라도 딸 며느리로 거물들과 연결시키기엔 나이 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다음 부인으로 초점을 맞추면 재취 아니면 불가능한데 그런 소문은 선거철에 이미 다 알려졌어야 했다.

  ‘그렇다면 동생이란 말인데…’
  우선 그렇게 설정한 뒤 거기 있는 거물들 하나 하나와 생김 생김을 연결시키니 묘하게도 총장과 많이 닮았지 않은가. 내 추리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친동생인지 사촌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그러리라 확신했다. 그러고서 살펴보니 주로 대화는 그와 하는 편이었다. 그녀가 그런 위치라면 접근해 필요한 자료를 얻는다는 건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업무와는 상관없이. 단순한 호기심에선 결코 아니었다. 그녀에겐 묘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었다, 그 ‘무엇’이.
  그쪽에만 시선을 주다 보니 회담이 끝남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서야 깨달았다. 사진을 찍고 있던 김 대리를 불렀다. 그리고 다른 일로 사무실엔 좀 있다 갈 테니 나머지는 혼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에 묻혀 밖으로 나가는 그녀 뒤를 따랐다.


  회담 후 거물들과 식사라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지 하는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것 같아 은근히 기뻤다. 재빨리 나와 택시부터 찾았다. 직접 차를 몰고 왔든, 택시를 타고 왔든 미행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신의 연고지로 바로 갔으면 하는 바람도 곁들어 있었다. 전에 들은 ‘저는 이 지역 주민인데요’ 한 말을 상기하면서. 행운은 계속 이어질 모양인지 차는 우리 회사 쪽으로 향했다.
  “손님 부인이세요?”
  아무래도 택시기사가 입이 근질근질한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은 건 차가 출발한 지 오 분쯤 됐을까.
  “왜 궁금합니까? 그렇지만 마누라 바람피우는 현장을 확보하러 가는 건 아닙니다.”
  “아 그럼 부인께서 손님 몰래 다른 사업, 이를테면 부동산 투기니 주식 투자니 하는가 싶…”
  “아닙니다, 저 여자는 집사람이.”
  “아… 이제 알았다. 심부름센터에서 나왔지요. 나도 다 알아요. 요새 거기에 부탁하는 사람 많다죠. 그만큼 사회가, 아니 여편네들이 간이 부었다는 말 아닙니까? 옛날 같으면 그런 여자들을 멍석말인가 조리돌림인가 했다던데. 하여튼 조선 냄비와 여잔 내돌리면 사고난다니까.”

  이래도 저래도 못내 궁금한지 계속해서 물어대는 그에게 더 이상 털어놓을 수도 털어놓을 얘기도 없었다.  잠자코 있으면 더 이상은 별말 없겠지 했는데 웬걸 기사는 꼭 알아야 직성이 풀리겠는지 꼬치꼬치 캐고 들었다.
  “살짝 얘기해 주세요, 소문 안 낼 테니. 부인 맞죠?”
  “허 참 이 기사님은 속고만 살았나. 아니요, 저 여잔 정말 내 마누라가 아니오.”
  “에이 뻑 하면 그 짓이요, 그 짓 하면 588인데… 그렇게 시치미 떼도 다 알아요. 진짜로 말해주면 도와줄 수도 있죠. 전에도 손님 같은 사람 한 사람 태웠어요.”
  그러고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게 아닌가. 한 달 전쯤인가 오십 안팎인 남자가 허급지급 탔는데, 타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더니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바로 앞에 젊은 여자가 타고 가는 차를 따라가자 했다나. 순간적으로 느낌이 와 신나는(?) 기분으로 미행을 했는데 여관 앞에 이르자, 그 남자가 자기를 도와주면 충분히 사례하겠다 하여 돈과 관계없이 그런 나쁜 여자는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여관방까지 쳐들어가서 직접 사진까지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생비디오를 감상하니까 다음에는 진짜 비디오가 너무 시시해서 보지 않는다는 둥, 다음에도 그런 일 있으면 자기를 부르라고 휴대폰 번호까지 가르쳐 줬다는 둥 별별 시답잖은 소릴 하면서도 룸미러를 통해 내 표정을 살피는 모양이더니,


  “가만 보니 저 여잔 진짜로 손님 부인이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엔 내가 되물었다.
  “왜요? 아까까진 부인이라고 우기더니.”
  “나도 눈치가 있는데, 진짜 부인이라면 손님처럼 담담하진 않죠. 당장 흥분한 표정이 온 얼굴에 나타나거든요. 눈동자엔 핏발이 서고,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죠. 그런데 손님은 전혀 변함이 없거든요. 그러니 아무래도 손님은 심부름센터 사람…”
  하는데 앞차의 오른쪽 깜빡이등이 켜지면서 이내 차도에 서는 것이었다.  그곳은 회사를 200m쯤 지난 위치였다. 뭐라고 주절대는 기사를 무시하고 내려 그녀가 들어가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꽃지 유치원’
  순간 머릿속에는 전에 사무실에서 그녀를 처음 본 미스 리가 TV에서 유치원 경영 운운하던 말이 떠올랐다. 들어가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 있는 곳이 저 유치원이라면 직원들의 자녀 중 거기 다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음 호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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