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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1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68)

제168편 : 김기택 시인의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오늘은 김기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 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처럼 가로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까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2015년)

  #. 김기택 시인(1957년생) : 경기도 안양 출신으로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동시를 쓰며 동화를 번역하는 일도 함. 평소 “시는 어렵지 않아야 공감을 얻는다”란 말을 하고 다닐 정도로 시인의 시를 읽으면 쉽고도 생각하게 하는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시골길 걸으면서 많은 꽃과 나무를 보고 또 많은 소리도 듣습니다. 그럼에도 놓치는 꽃과 나무, 듣지 못한 소리가 더 많습니다. 큰 나무, 유난히 빛깔 고운 꽃, 다른 소리를 누를 만큼 크게 우는 소리에 작은 나무, 풀숲에 숨어 피는 꽃, 나지막이 우는 벌레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텔레비전을 끄자 / 풀벌레 소리 /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려온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동안엔 거기서 나오는 드라마(또는 노래) 소리에 빠져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헌데 끄자마자 수많은 풀벌레 소리가 들려옵니다. 특히 어둠 속에서 들으면 벌레 소리에 별빛이 묻어 더욱 낭랑하게 들립니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한여름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다른 소리를 덮어 나지막이 우는 작은 벌레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화자는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귀에 잘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를 떠올립니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아니 들으려 하지 않는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려 소리 내는 여린 마음들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너무 작아 내 귀에 들어오지 못하고 되돌아간 소리'를 너무 낮게 우는 작은 벌레 소리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문득 이 소리가 자연계의 소리뿐 아니라 우리 인간계를 비유한 소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우리네 역사도 수많은 민중들이 이끌어왔건만 그들보다 몇몇 위인이 다 차지합니다. 지금도 큰소리 내는 몇몇이 사회를 이끌어가듯이. 왜 우리는 작은 소리를, 진솔한 삶의 현장에서 뛰는 작은 사람들의 소리를 생각지 않을까요? 그들이 만들어가는 소리가 참 세상 소리이건만.

  “크게 밤공기 들이쉬니 /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밤공기 크게 들이쉬면 작은 벌레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을 향한 눈을 뜨면 작게 소리 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옥탑방도 반지하방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눈과 귀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와 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 헤치고 살며시 들려오는 작은 풀벌레 울음소리를 한번 들어봅시다. 텔레비전을 켜더라도 브라운관을 온통 장악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 말 말고, 진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의 말도 한 번 들어봤으면 합니다.
  큰 소리에 눌려 듣지 못한 작은 소리 듣는 귀를 가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 첫째 사진은 좀방울벌레인데 원래 방울벌레 소리가 작은데 좀방울벌레 소리는 더 작다 하며, 둘째는 벼메뚜기로 역시 가까이 가야 우는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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