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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12. 2024

[장편소설] 삼백아흔 송이 장미꽃(5)

제5편 : 여자(2-1)

  [제5편]



             * 여자(2-1) *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어 나온 것을 본 기쁨을 무엇에다 비길 수 있을까. 책상 위에 놓인 사보를, 만약 친구가 보았더라면, “얘, 닳아 없어지겠다.”는 핀잔을 들을 만치 들고 쓰다듬었다가 올렸다 내려놓았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처음 이 부장이란 사람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워낙 글 써본 일이 없는 데다 남들 앞에 글을 써 내보이는 게 마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것 같아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우리는 먹잇감을 잡으면 놓치지 않습니다.’는 집요함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모든 걸 그쪽의 책임으로 돌리는 격이니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언젠가 유아교육에 관한 소신을 남들에게 전하고픈 마음이 한쪽 깊이 숨어 있었다고 해야 바른 말일 것이다.

  그때, 일주일을 씨름하며 완성한 원고를 보내면서 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난도질해도 좋으니 그 사보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 달라,’라고. 설마 그 말대로 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히 내가 적어 보낸 글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건 기분 나쁜 다름이 아니라, 기분 좋은 바뀜이었다. 하고 싶은 주장을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세수하고 난 뒤에 엷게 파운데이션을 바른 정도로 아주 부드럽게 치장해 놓은 걸 보면서 역시 글 쓰는 사람은 다르긴 다르다고 감탄해야 했다.


  “유아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사랑입니다. 요즘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기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마는,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로 키우는 거야말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유아교육의 가장 좋은 공간은 유치원도 학원도 아닌 가정입니다. 유치원과 학원이 지능발달에는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아이를 바로잡아 줄 수 없습니다. 가정은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면서 완성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는 요지의 글이 아주 대패로 민 듯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중에 원고료를 가져온 여사원으로부터,

  “이런 얘긴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들려주는 이 부장이란 사람이 직접 다듬어 주었다는 말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사보를 받아본 우리 유치원의 허 선생님 같은 이는,

  “원장님 때문에 학부모님들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다 가르치겠다고 하면 우리는 실업자가 되잖아요.”

  하며 놀리는 소리를 하여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지마는 다른 곳의 반응도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특히 협회에 소속된 유일한 남자 원장인 김 원장은 ‘암유(暗喩)의 묘(妙)’라 하는 어려운 문자를 써 가면서,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보내라는 말은 한마디도 쓰지 않으면서도 유치원 교사들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보았다고 극찬하는 말에는 수화기를 더 들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부장에 고맙다는 전화와 더불어 단순히 인사치레로, ‘고마워서 다음에 식사라도 대접해야 할 텐데 …’란 말을 별생각 없이 했고, 그쪽에서도, ‘뭘 그런 걸 가지고 … 대접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제가 해야죠.’라고 했다.



  부르지 않으면 좀체 유치원에 오지 않던 아들이 원장실에 몰래 들어갔다 나오는 걸 봤다는 초록반 담당 이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을 때 뭔 일이 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식탁 위에 예쁘게 포장된 상자와 그 위에 붙은 메모지를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학교에서 짝이 내일 자기 생일이니 놀러 오라고 하는 바람에 생각났어요. 어저께만 알았어도 오늘 아침에 선물을 드렸을 텐데…. 내년에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어머니,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요.

                                                                                       바보 멍청이 석두 …… 아들 영휴 올림."


  잊고 지내던 날이었다. 아니 잊으려 했던 날이었다. 아이들 생일이라면 몰라도 어른의 생일에 이만한 선물을 받고 그렇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해도 한동안 일거리를 팽개친 채 소파에 앉아 있어야 했다.

  오늘이 정말 내가 태어난 그날인지 확언할 수 없다. 어릴 때 거기 맡겨지는 그날, 원장님이 임의로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맡기던 사람이 정확히 태어난 날을 일러주어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물어보려면 볼 수 있었으나 물어보기가 두려웠기에 확실치 않다.

  그때부터 생일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어릴 때는 그냥 잊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단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차지하는 숫자일 뿐. 그러기에 결혼 후 첫 생일에 대한 기대는 컸다, 비록 원하지 않은 맺음일지언정. 그러나 결혼 후 처음 맞이한 생일날, 단 한 마디로 끝났다.

  “네 생일이 그날 맞아? 웃기고 있네. 고아에게 무슨 생일이 있어?”

  이죽거리며 던진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잊고 지냈던 생일이 의미를 찾은 건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영후가,

  “어머니, 생일 언제예요?”

  하고 묻기에 왜냐고 되물었더니, 선생님께서 자기 엄마 아빠 생일 외워오기를 과제로 내주었단다. 그날 무심코 일러준 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해 그 날짜가 되자 조그마한 선물이 놓이기 시작하더니 몇 년째 빠지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던 날이 아들로 하여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한 구석에서는 이날만은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색은 하지 않은 채 무슨 핑계를 대어서든 꼭 가까운 이들과 시간을 마련했다.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부산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만 가능하다면 부산에 내려가 어울려 식사도 같이 하고 오래도록 수다도 떨고 싶었다. 그런데 신호음은 가는데 답이 없는 게 아닌가. 삼십 분 뒤에 다시 걸었다. 답이 없었다.

  한 번씩 전화 걸 때마다 언제나 바로 연결되던 친구라 어느 잡지에서 읽은 농담 - 요즘 오전에 전화 걸어 대뜸 받는 여자는 병이 났거나, 친구들에게 왕따 당해 갈 곳 없거나, 세컨드밖에 없다는 농담 -을 던져도 될 사이였는데, 받지 않는 게 이상해 다시 삼십 분쯤 지나 걸었다.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 뒤에도 두어 번 연락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늘은 누구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그리 친하진 않아도 가끔씩 얘기를 주고받는 근처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에 있었지만 시간을 내기 곤란하다는 게 아닌가. 시집 어른들이 내려와 있다나.

  꿩 대신 닭이라고 다시 선생님들에게 의사를 타진해 보았다. 웬만한 일이면 거절 안 하던 선생님들이 그날따라 갖가지 사유를 대며 어렵다 하고. 유치원에서 일할 때를 제외하곤 혼자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는데도 오늘처럼 ‘외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도, 그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막상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슬펐다. 사람이 그리울 때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아들이 선물로 준 머리핀을 손안에 꼭 쥔 채 하염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수업 중에 전화를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으나 그 원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받아야 할 전화였다.

  “갈비 두 짝과, 금 한 냥짜리 복돼지 두 마리 만들어 빨리 갖다 줘.”

  서두 없이 꺼낸 말에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묻는 걸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어디 사는 누구에게 무슨 일로’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참, 지금 총장하고 점심식사 하고 있는데 오늘이 자기 장모 생일이라잖아.”

  총장의 장모 일흔여덟 번째 생일이니 생일선물로 갈비를 사서 갖다 주라는 명. 어이가 없었지만 감히 토를 달았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입을 못 열고, 대신 욕 들어먹을 각오로 왜 하나씩이 아니고 두 개씩이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슬며시 물었다.


  “이 여편네야, 내가 총장 장모에게 잘 보이려고 선물하는 줄 알아? 그렇게 늙은 할마시한테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 다 총장 때문이잖아.  총장 마누라가 자기 친정어머니 생일에 내가 선물을 했다는 걸 알아봐. 거기다가 자기 집에도 그만큼 했으면 가만있겠어? 남자를 움직이려면 여자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몰라. 혼자 똑똑한 척하더니 머리 돌아가는 건 영…”

  수화기를 놓고 ‘총알 같이’ 갖다 주라는 언질에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제는 그래도 명색이 아내의 생일이었잖은가. 그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 한 통화도 없었다. 그런데 자기가 줄을 대고 있는 사람의 장모 생일, 그것도 회갑이니 칠순 잔치니 하는 특별한 날도 아닌 일흔여덟 번째 생일날에 모조반지 하나 사준 적이 없는 아내더러 갈비짝과 금돼지를 갖다 주라니. 그 어느 때보다 생일날의 외로움을 아프게 겪은 사람더러 그런 일을 하라니.


  하기야 그 사람은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고, 설령 알았다고 해도 신경 쓸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속이 썩어도 아무리 하고 싶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말이 떨어진 이상, 가장 빠른 시간에 이행해야 했다. 군소리 하나 없이.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려는데,

  “그리고 옷 몇 벌 사. 최고급으로 하되 촌스러운 것 말고. 노출이 좀 되는 옷 있잖아. 그 뭐라더라 시드루라든가… 그런 거 있잖아. 돈은 걱정하지 말고 유명 디자이너의 것도 괜찮으니 몇 벌 사.”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옷을 몇 벌 사라니’

  이 남자가 그래도 내 심정을 조금은 아는구나 하다가 뒷말을 듣는 순간 내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절실히 깨닫게 됐다. 남들 앞에 조금만 튀는 옷을 입어도 어색하여 못 견뎌하는 걸 아는 그 남자가 주문하는 옷은 나를 위한 옷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옷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에게 보여주는 옷이었다.


  얼마 전 시(市) 회의에 입고 간 옷도 내가 고른 옷이 아니라 총장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두 달이나 앞서 열린 봄 패션 매장에 데려가 직접 지적해 주는 바람에 한 마디 들이밀지 못하고 한겨울에 늦은 봄에나 어울림직한 옷을 입고 나갔지 않았던가.

  그날 계절감은 차치하고 그 사람의 강요로 슈미즈와 거들 없이 브래지어와 팬티 하나만 걸친 채 앉고 서고 하니 마치 알몸을 드러내는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왔고, 무슨 말을 누구와 주고받았는지 기억 잘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선물은 할 작정이었지만 그 사람이 지시한 옷만은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지 않기로 했다.


  (다음 호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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