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란 회로에 무정란 한 알씩 꼬박꼬박 떨어뜨려 주는 양계장 암탉은 천치인가 천사인가 AI 노예인가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물과 사료를 취하고 *산도(産道)로는 알을 밀어내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실수로도 병아리 한 마리 걸어 나오지 않는 무정한 무정란 컨베이어벨트
날개 달린 원금은 철망에 감금시켜 놓고 갓 낳은 이자만 집어 가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달걀은 암탉의 자식뻘인데 허기 채우기에만 급급한 닭대가리들
금욕주의자들의 지구에 메마른 산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물에 풀어놓은 *숫개구리들의 합창만 귀 따갑게 흰 구름 휘젓는다
- [야생](2022년)
*. 컨베이어벨트 : 물건을 연속적으로 이동ㆍ운반하는 띠 모양의 장치
*. 집란(集卵) : 양계장에서 달걀을 모으는 일
*. 산도 : 새끼를 나올 때 새끼가 지나는 통로
#. 이향지 시인(1942년생) :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47세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여든의 나이에도 시 쓰기를 계속하는데,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의 며느리
비슷한 나이에 이름도 비슷한 '이향아' 시인도 있으니 혼동 마시길.
<함께 나누기>
재작년 팔순 때 시인이 [야생]이란 제목의 시집을 펴내면서 '프롤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에게는 병이 없습니다.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쓴다, 이것이 나의 병입니다.”
저는 이향지 시인의 시를 읽기 전에 언제나 이 말을 생각하며 읽습니다. 제가 팔순까지 산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 나이까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사신 분들 가운데서 육체적으로 건강하신 분들이 꽤 됩니다. 이분은 다만 글 쓰는 병에 걸렸다 고백하니...
시집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야생’, 엄격하게 짜인 규격(규율)이 가득한 사회 속에 살기보다 ‘날 것’의 삶을 택하겠다는 의지. 야생의 시간은 현재에 머무릅니다. 미래와 계획은 담장 너머 던져두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 노시인은 그렇게 우리를 이끕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가로세로 포개진 칸칸마다 암탉들이 고고거린다”
한때 달걀은 농산물이 아니라 공산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환경론자의 말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양계장에서 만들어지는 달걀은 암탉과 수탉의 정상적인 교배에 의해 나오지 않고 오직 암탉만이 케이지에 갇혀 공장 제품처럼 달걀 생산하니까.
“철망 속의 미혼모들 / 태어났다는 말에는 태어나게 하겠다는 무언이 얽혀 있다”
양계장 철망 속의 암탉은 다 미혼모입니다. 아니 미혼모는 아이의 아빠라도 있지만 암탉이 만들어내는 달걀에는 아빠가 없습니다. 미혼모이되 미혼모가 아닌. 그래서 달걀은 태어났다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태어남을 당한 존재들.
“교미한 적 없는 암탉들이 낳은 달걀은 생명인가 식자재인가 오토 품품인가”
사람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수정되는 순간(태아)부터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건만 수탉 없이 만들어진 달걀은 생명체일까요? 생명체가 아니라면 식자재마트에 진열되는 단순한 물품일까요? 아니면 ‘오토 품품’일까요?
(‘품품’의 뜻이 사전에 나오지 않아 해석 어렵습니다만 品品으로 본다면 자동생산품 정도로 이해해야 할 듯)
“집란 회로에 무정란 한 알씩 꼬박꼬박 떨어뜨려 주는 양계장 암탉은 천치인가 천사인가 AI 노예인가”
참으로 신랄한 비틀기(풍자)입니다. 그럼 암탉은 천치일까요, 천사일까요, AI 노예일까요? 새끼가 되지 못하는 알만 생산하니 바보요, 인간을 위해 꼬박꼬박 한 알씩 낳아주니 천사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니 AI.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물과 사료를 취하고 산도로는 알을 밀어내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제목에도 나오는 ‘컨베이어벨트’, 이 말이 갖는 속뜻을 한 번 훑어봅시다. 컨베이어벨트라는 말은 많이 들었을 겁니다. 자동차 공장 같은 곳에서 부품 하나하나가 일정한 벨트를 타고 조립이 되면서 제품이 완성되는 그런 공정에 쓰이는 말입니다.
실제 양계장에선 컨베이어벨트가 놓여 있어 거기를 타고 달걀이 줄지어 나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자동차 생산과정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 보면 암탉은 사육된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양계장'이란 공장에서 생산된다고 해야 하겠지요.
“날개 달린 원금은 철망에 감금시켜 놓고 갓 낳은 이자만 집어 가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암탉은 '원금'에, 달걀은 '이자'에 비유하는 시행입니다. 그래서 주인인 인간은 마치 수금자인 양 빚쟁이인 암탉을 수탈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더욱 기막힌 건 실수로라도 병아리가 한 마리 걸어 나오지 않는 무정한 무정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옵니다.
“달걀은 암탉의 자식뻘인데 허기 채우기에만 급급한 닭대가리들 / 금욕주의자들의 지구에 메마른 산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암탉은 멍청한 닭대가리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존재는 누구일까요? 금욕주의자는 성욕을 금하는 존재니 수탉 없이 알만 생산하는 암탉이 팔자에 없는 금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참 잔인합니다.
인간이 육식을 멈추거나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컨베이어벨트로 굴러가는 이 거대한 자동시스템은 해체되지 않을 겁니다. 또 그것이 계속되는 한 암탉은 계속 허기 채우기에만 급급한 닭대가리로 살아가야 하고. 참으로 대단한 인간입니다.
“논물에 풀어놓은 숫개구리들의 합창만 귀 따갑게 흰 구름 휘젓는다”
마지막 행에 수캐구리가 등장함이 좀 의아롭지요. 수캐구리들은 수탉과 다릅니다. 논에 수캐구리가 울 때는 암컷을 불러들인다고 하지요. 암수 짝짓기 끝나면 암캐구리가 수많은 알을 낳을 테고. 그러니까 개구리가 짝짓기 못하는 닭을 비웃는 소리입니다.
(숫개구리의 정확한 표기는 '수캐구리’이나 '숫'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쓴 표기로 보임)
오늘 이 시를 이렇게 풀이해놓고, 당장 치킨 먹으러 오라는 요청 있으면 달려가는 저도 참 나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