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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1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01)

제201편 : 이창수 시인의 '홍어'

@. 오늘은 이창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홍어

                   이창수


  친구 조현수가 호남 최대의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호남 최대의 예식장에서 결혼한 조현수는 딸과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십여 년 뒤 우리는 조현수의 부고를 듣고 호남 최대의 예식장으로 모여들었다. 호남 최대의 예식장의 간판이 호남 최대의 장례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달라진 건 한 글자밖에 없었으나 예식장과 장례식장의 간격은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었다. 아니 빚보증을 서주고 갈라선 조현수와 나와의 거리만큼 멀었...다. 친구 조현수가 고등학교동창들의 환호와 축가를 들으며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가의 곡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다. 젊은 그의 아내는 호남 최대의 장례식장에서 결혼식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쏟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그녀가 눈물 흘릴 때 하객들이 박수를 쳤으나 이번에는 조문객들이 가슴을 쳤다. 내 친구 조현수가 단 한 글자로 뒤바뀐 이 비운의 건물에서 수의를 입고 조문객들을 맞고 있을 때 나는 결혼식 때와 마찬가지로 홍어에 소주를 마셨다. 조의금을 세고 눈물 흘리는 그의 일가를 보면서 예식장인지 장례식장인지 아직도 헷갈리던 나는 박수나 가슴 대신 화투를 쳤다. 아직 조현수의 죽음이 실감 나지는 않았지만 호남 최대의 예식장이 호남 최대의 장례식장으로 바뀌듯 이해되지 않는 슬픔에 무작정 동참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건물 간판에 덧붙여진 한 글자에 대해 동의와 이해를 얻지 못하는 조현수와 고등학교동창들 어느 누구도 간판에 덧붙여진 한 글자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들은 예식장과 장례식장 어디에서나 빠짐없이 밥상 위에 올라와 있는 홍어에 대해 홍어의 불가해한 맛에 대하여 골몰할 뿐이었다.

  - [귓속에서 운다](2011년)


  #. 이창수 시인(1970년생) : 전남 보성 출신으로 2000년 [시안]을 통해 등단. 현재 광주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보성예총’과 ‘시가 흐르는 예술학교’ 회장을 맡아 열심히 일함.

  (동명이인으로 1942년생 이창수 시인도 계심)




  <함께 나누기>


  요즘 K문화 덕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올 때 먹거리로 세 가지 도전 과제를 정해놓고 온다는데, 그 셋이 ‘홍어’ ‘산낙지’ ‘번데기’랍니다. 이 세 먹거리는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서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꽤 되는지라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서도 홍어는 특이한(?) 냄새로 하여 아예 입에 대려 하지 않는 사람도 꽤 되는데, 거꾸로 그 냄새 때문에 먹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니...  아시다시피 전라도에선 경조사에 꼭 홍어를 상에 올리는데 당연히 홍어를 글감으로 한 시도 많이 나왔습니다.

  정일근, 이정록, 손택수, 김선태, 장옥관, 이재무, 문동만... 시인 모두 전라도 출신인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경상도 등 다른 지역 출신도 함께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요즘 흔히 보는 행과 연의 구분이 없는 ‘산문시’입니다. 읽어보면 다 느끼겠지만 시라기보다 한 편의 수필 같습니다. 또 이 「홍어」란 시엔 언어유희, 즉 말장난이 많이 쓰였습니다. ‘예식장' '장례식장’을 보아도 한 글자 때문에 뜻이 전혀 달라집니다.

 

  "친구 조현수가 호남 최대의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십여 년 뒤 우리는 조현수의 부고를 듣고 호남 최대의 예식장으로 모여들었다"

  "호남 최대의 예식장의 간판이 호남 최대의 장례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해하실 분은 안 계시겠죠. 다만 예식장이 망했다는 얘기는 뉴스를 통해 다 아실 듯. 결혼하려는 젊은이가 없으니 예식장 갈 일 드무니 문 닫고, 노인만 많으니 장례식장은 늘어나고. 그러니 예식장에서 장례식장으로 간판 바꿔 단 곳도 있을 터.


  "달라진 건 한 글자밖에 없었으나 예식장과 장례식장의 간격은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었다 "


  이런 내용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어와 닮았습니다. 점 하나 더하고 빼고, 한 글자 더하고 뺌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이 되고, 예식장이 장례식장이 됩니다.

  자 그럼 시인의 의도는? 삶(이승)과 죽음(저승)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그렇지요, 중씰한 나이에 이른 이라면 동기회 갈 때마다 한두 명씩 동기명부에서 사라짐 이미 목격했을 터.


  "아니 빚보증을 서주고 갈라선 조현수와 나와의 거리만큼 멀었...다"


  이 시행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시어가 보입니다. '멀었...다' 이렇게 따로 뽑아내니 다 눈치채셨겠죠. 단순히 ‘말 늘임’뿐 아니라 돈 때문에 사이가 멀어짐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았으니까요.


  "결혼식장에서 그녀가 눈물 흘릴 때 하객들이 박수를 쳤으나 이번에는 조문객들이 가슴을 쳤다"


  ‘치다’란 시어 반복이 주는 언어유희, 십여 년 전 친구의 아내가 눈물 흘릴 때 하객들은 박수를 쳤으나, 지금은 조문객들이 친구의 죽음에 가슴을 칩니다. 거기에 더해 화자는 박수나 가슴 대신 화투를 쳤다고 하고.

  이 ‘치다’라는 말의 반복을 통해 결혼이라는 행복을 기원하는 축하 행위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비통함을 대조시켜 삶과 죽음 사이 오갈 수 없는 넓은 간격을 더욱 뚜렷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결혼식 때와 마찬가지로 홍어에 소주를 마셨다”

  “밥상 위에 올라와 있는 홍어에 대해 홍어의 불가해한 맛에 대하여 골몰할 뿐이었다”


  결혼식 때도 홍어가 나오고 장례식 때도 홍어가 나옵니다. 가장 기쁜 날에도 가장 슬픈 날에도 홍어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예식장에서 장례식장에서 주인공에 대한 관심보다 홍어의 맛에 대해 더 얘기를 나눌 뿐입니다.

  그러니까 전라도에선 홍어가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 존재합니다. 불가해한(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 아니 어쩌면 삶과 죽음 그 자체가 불가해한 상황 아닙니까? 살려고 노력해도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음 죽음 하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 사진은 예식장이 장례식장으로 바뀐 실제 예입니다. 부산 범천동 '하모니웨딩타운'이 '시민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중앙일보](2024.01.16)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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