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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11.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87)

제187화 : 딸나무라는 '오동나무'

     축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



        * 딸나무라는 오동나무 *



  요즘 ‘마을 한 바퀴’ 길에 만나는 가장 즐거운 눈요깃감은 잘 익어가는 나락이다. 벼가 노릇노릇 익어가니 말 그대로 황금물결 그대로다. 선조들은 잘 익은 그 황금빛을 가장 좋아했다. 그렇지 않은가. 벼는 바로 우리 생계를 이어가는 주요 양식이니 황금 못지않았으니.

  나락을 글감으로 잡으려다 어제 발걸음에 눈에 띈 또 다른 황금빛 열매를 보았다. 사실 그동안 몇 번 만났지만 관심 속에 멀던 나무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어제는... 아니었다. 잘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까. 그 나무 이름이 오동나무요, 오동나무 열매다.


(우리 마을 오동나무 열매)



  오동나무는 나무로만 있으면 눈길을 끌지 못한다. 확 띄는 나무가 아니니. 꽃이 이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즈음 피는 다른 꽃보다 특출하지도 않고. 그러다 열매를 달면 달라진다. 잎 사이사이 나뭇가지 빽빽이 노란 열매만 주렁주렁 달렸다면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리라.

  빽빽이 촘촘히 달린 열매를 멀리서 보면 깨감(표준어 ‘고욤’) 같다. 아니 사실 처음 봤을 땐 깨감인 줄 알았다. 빛깔도 크기도 모양도 흡사하니까. 다만 나뭇가지를 보면 깨감나무 - 고욤나무 -가 아니다. 깨감나무는 전에 우리 집에 있었으니까 분명히 구별한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번에 깨감이 아니라 개금(표준어 '개암')처럼 보인다.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개금나무 -개암나무 -도 아니다. 깨감도 개금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바로 오동나무 열매다. 멀리서 보면 깨감 같아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개금처럼 보이니 신기하다.

  (* 사실 고욤나무와 개암나무는 모양이 완전히 다르지만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움)


(오동나무, [용인신문] 2022년 10월 17일)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내나무’란 글이 나온다. 거기 보면 옛날 아들이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고 딸이 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까닭은 소나무는 나중에 죽을 때 관을 짜는데 쓰고, 오동나무는 시집갈 때 장롱 등 가구를 만드는데 쓰기 위함이라나.

  그러니까 이 두 나무는 자식 탄생과 함께 심었으니 이름을 ‘내나무’라 붙여 유독 다른 나무보다 키움에 더 신경 썼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는 한평생 삶의 굴곡을 거치고 하늘로 갈 때 쓰는 나무요, 다른 하나는 일생을 좌우할 혼사에 썼으니.

  자녀에게도 '내나무'를 주지시켜 더 유심히 살펴보라고 했다. 여기서 소나무를 ‘아들나무’, 오동나무를 ‘딸나무’란 말이 만들어졌다. 내가 알기론 나무 이름에 아들 또는 딸이란 말이 붙은 나무는 오직 이 둘뿐이다. (다른 나무에도 딸 아들 붙은 이름 있으면 내 견문의 얕음 탓)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다.

  “오동은 천 년이 지나도 가락을 잊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오동나무가 딸나무로 혼수품인 가구 만드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가야금과 거문고 같은 악기 만드는데 많이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 [woodplanet] 2022년 8월 26일)



  그래선가, 오동나무를 소재로 한 노래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가수 이미자 님이 부른 「오동나무집 삼대」란 노랫말을 한 번 볼까.

 

  “오동나무 심어놓고 나는 빌었네 / 큰 나무 되거든 사랑을 하기로

  나무 잎이 떨어져도 변치 않기를 / 오동나무 바라보며 나는 빌었네

  그 많은 세월이 흘러갔는데 / 오동나무 말없이 지켜 주었네”


  오동나무가 큰 나무 되면 사랑하길 빌었다 한다. 즉 오동나무가 큰 나무 되면 사랑할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동나무 잎이 떨어져도 변함없기를 빌었다 한다. 오동나무로 만든 물품이 잘 변하지 않은 점을 활용한 노랫말인 듯.


  그리고 오동나무는 나뭇결이 곱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며, 갈라지거나 뒤틀림이 적으며, 습기 벌레 부식 등에 강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사람으로 치면 깨달음을 얻은 도인의 자세 같지 않은가. 나뭇결이 곱다는 말은 반듯한 생활을 한다는 뜻으로 새긴다.

  또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다 함은 외유내강(外柔內剛) 형 인간으로 새기고, 습기 등에 강하다는 말은 유혹에 잘 빠지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단풍 든 오동나무)



  오동나무를 검색하면 연관어로 ‘봉황’이 따라 나온다. 새들의 왕인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아시겠지만 봉(鳳)은 수컷을, 황(凰)은 암컷을 상징한다. 이 '봉'과 '황'이 한 쌍으로 만나면 신방을 차린 그곳이 바로 오동나무 가지다.

  예전 민화나 화조도(花鳥圖)에선 오동나무와 봉황은 종종 함께 그려진다. 봉황이 앉은 나무가 바로 오동나무니까. 이를 단봉조양(丹鳳朝陽 : 붉은 봉황과 아침해를 조화롭게 그린 동양화의 한 형태)이라 하는데 해와 봉황과 오동나무가 들어간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앉아 오동잎에 맺힌 아침 이슬 마시고 대나무 열매 따 먹으며 평생 동안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이렇게 금슬 좋으니 짝 중에 하나가 세상을 먼저 떠나면 따라 죽는다고 한다. 그런 봉황이 사랑한 나무가 오동나무라는 말이다.


(오동나무꽃)



  내년 봄엔 우리 집 마당에 오동나무 심어볼까, 그러면 봉황이 날아올까, 우리 부부도 금슬이 좋아질까. 오동나무를 더 오래 자주 보면서 결심을 굳힐 셈이다. 다만 오래된 오동나무에만 봉황이 온다고 하는데 오동나무 자랄 때까지 살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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