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9)
제199편 : 송수권 시인의 '나팔꽃'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8. 2024
@. 오늘은 송수권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나가 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 날 아침에 나가 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나가 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 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 [지리산 뻐꾹새](1991년)
*. 바지랑대 : 빨랫줄을 받치는 긴 막대기
*. 두세 개의 종: 나팔꽃의 꽃봉오리를 보며 ‘종’에 비유함.
#. 송수권 시인(1940~2016) :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7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남도의 정서를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시인이란 평을 받았는데, 2005년까지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근무하다 퇴임한 뒤 2016년 별세.
<함께 나누기>
요즘 마을 한 바퀴 길에 자주 만나는 친구가 나팔꽃입니다. 사실은 두어 달 전부터 피었지만 함께 핀 다른 꽃들이 다 졌음에도 오연히 피어 있습니다. 누가 처음 이름 붙였는지 궁금하나 아마 저보고 꽃 이름 붙이라고 해도 나팔꽃이라 했을 겁니다. 그만큼 이름과 모양의 유사성이 큰 꽃이지요.
나팔꽃은 아무 곳에나 다 핍니다. 그래서 서민의 꽃이라 하는데, 그 모습이 서민답지 않게 화려해 오해를 받습니다. 허나 한 번 피면 다음 해도 그 자리에 반드시 피고, 번식력 좋아 뿌리내리면 주변을 바알갛게 그리고 파아랗게 물들이는 꽃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 다음 날 아침에 나가 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 꼬여 있는 것이다.”
바지랑대 끝이면 더 이상 나아갈 데 없습니다. 그러면 뻗기 불가능한데 나팔꽃은 재주를 부립니다. 뻗는 대신 몸을 꼬아서. 나팔꽃은 덩굴식물입니다. 가지나 줄이 있으면 어디든 뻗어나갑니다. 뻗어갈 때도 그냥 가지 않고 몸을 꼽니다. 그래야 바람 불어도 떨어지지 않지요.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화자는 분명 불가능하리라 여겼는데 나팔꽃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끝이 없다는 말이지요. 다음 날 아침이면 덩굴손까지 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가상의 바지랑대를 찾습니다. 그 바지랑대는 나팔꽃에게 손을 벌리고요.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 다음 날 아침에 나가 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 달고는 /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잎이 나고 줄기만 뻗어가는 줄 알았는데 다음 날이면 꽃봉오리가 열리고 나팔 모양의 종을 답니다. 그러니까 나팔꽃에겐 한계가 없습니다. ‘이제 그만 끝’이란 말은 나팔꽃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길을 찾아냅니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이 시행이 참 마음에 듭니다. 단순히 나팔꽃 줄기가 가지를 감는 모습을 표현하는 시인 줄 알았는데 아픔까지 등장시킵니다. 그러니까 나팔꽃을 통해 우리의 삶도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과 힘듦의 과정을 넘으면 반드시 종이 울리리라는 믿음을 주는 시입니다.
날마다 나팔꽃을 보면서도 그냥 지나쳤는데, 대충하다 안 된다 싶으면 그만두는 저를 보고 비웃을 것 같아 내일부터는 일부러 피해 다녀야 하겠습니다. 시 한 편이 주는 울림, 그래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이 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