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8)

제198편 : 신용목 시인의 '타인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 오늘은 신용목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타인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신용목


꿈에서 오랜 형의 집에 찾아갔는데, 형은 진즉 떠나 없다 말하는 노모 뒤에서 연신 고개를 흔들며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이 꼭 저녁 같아서,

노을은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모는 문을 닫지도 않고 수돗가에 내려서서 물을 떠 한 모금 들이켜고는

그대로 내게 건넸다. 바가지 붉은 속 같은 노을 속에 여름 해가 고향집처럼 담겨 있었다.


잠을 깬 나는 오랜 형의 번호를 찾아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화장실에 앉아 물을 세 번 내렸다. 화장실에는 창문 대신 거울이 열려 있었고 전등이 환하게 비쳤다.

—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3년 11월호)


#. 신용목 시인(1974년생) : 경남 거창 출신으로, 2000년 [작가세계] 통해 등단. 2000년대 주목할 시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좋은 시를 많이 쓰며, 현재 조선대 문창과 교수.




<함께 나누기>


시간은 객관적일까요, 주관적일까요? 시간에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객관적인 시간이 있고, 한 사람에게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에게 시간은 그냥 평범한 시간일 테지만 또 다른 이에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오늘 시는 좀 어렵고, 게다가 여러 갈래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편한 시 좋아하는 분들에겐 머리 좀 썩여야 하겠지만 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시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타인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란 제목만 보면 남의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데 나의 시간은 잘 흐르지 않는구나로 읽으면 됩니다. 허면 왜 남의 시간은 빨리빨리인데, 나의 시간은 느릿느릿일까요? 분명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남은 똑같건만.


"꿈에서 오랜 형의 집에 찾아갔는데, 형은 진즉 떠나 없다 말하는 노모 뒤에서 연신 고개를 흔들며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꿈 이야깁니다. 여기에 '오랜 형'이란 시어가 나옵니다. 오래전부터 알던 형이란 뜻과 만난 지 아주 오래된 형이란 뜻 둘이 있습니다. 한 번 더 읽어보면 오래전부터 알던 형이나 이젠 연락을 하지 못하는 형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시인의 시집 속엔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대구공전 재학 시절 학원자주화 투쟁 중에 분신한 박동학 형과, 갓 돌 지난 아이를 남기고 여행 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진 박붕규 형. 그러니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거나 아예 다른 사람이거나.


두 분 중 박붕규 씨로 보면 이해하기 좀 더 쉬울 듯. 퍼즐 맞추려면 그에겐 마침 아이가 있으니까요. 꿈이라 했는데 현실이라 해도 무방할 듯. 선배의 집을 찾아갔는데 노모는 형이 죽고 없다 하고 아이는 제 아빠 얘기에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의 눈빛이 꼭 저녁 같아서 / 노을은 /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여주는 거라고 / 생각했는데"


아이의 눈빛은 보통 아침에 비유할 뿐 저녁에 비유하지 않건만, 그렇게 표현한 까닭은 슬픔을 불러일으키기 더 낫기 때문이겠지요. 노을은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랍니다. 기억에 담아두기 너무 힘들어서?


"노모는 문을 닫지도 않고 수돗가에 내려서서 물을 떠 한 모금 들이켜고는 / 그대로 내게 건넸다. 바가지 붉은 속 같은 노을 속에 여름 해가 고향집처럼 담겨 있었다"


물 한 잔 건넴은 찾아온 손님에 대한 가장 소박한 대접입니다. 그렇겠지요, 다른 음료수보다 한 잔의 물. 이 한 잔의 물은 화자로 하여금 곧장 떠나지 못하게 하는 기능도 합니다. 그리고 1연과 2연에 모두 노을이 사용되었군요. 단순히 저녁 어스름뿐 아니라 어두운 삶도 보여주려고.


"잠을 깬 나는 오랜 형의 번호를 찾아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이윽고 화자가 꿈에서 깨어납니다. 현실인 듯 선명하게 그려진 꿈의 흔적 잊지 않으려 오랜 형의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허나 수신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부재(不在)의 순간에 느끼는 허무감. 절로 전화기를 내려놓을 수밖에요...


"화장실에 앉아 물을 세 번 내렸다. 화장실에는 창문 대신 거울이 열려 있었고 전등이 환하게 비쳤다"


'물을 세 번 내렸다'에서 화장실에 오래 머물었다로 읽습니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가족 포함)에게 눈물을 보여주지 않으려 함이 아닐까요. 허나 감추려 했건만 하필 전등이 환히 비춰 자기 얼굴에 나타났으니. 슬픔은 숨길 수 없나 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수학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분석해 들어가다 정답 맞혔을 때의 희열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만족스런 답을 얻지 못합니다. 오늘 글벗님들도 그런 느낌 가지리라 여깁니다.



*. 첫째 사진은 영화 [집으로]의 '스틸 컷'이고, 둘째 그림은 아는 이의 화첩에서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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