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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3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12)

제212편 : 최금진 시인의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 오늘은 최금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최금진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수 짝수를 조합하는 일은

  어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왔는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는다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왜 사느냐,를 묻지 않아도 되니까

  오십이 넘은 사내는 누가 볼까 봐 손을 가리고 찍는다

  술냄새에 절어 들어온 사내는 앉자마자 묵상을 한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은 줄을 서지 않는 자들을 무섭게 흘겨본다

  순서를 어기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앞서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일

  집착은 때 묻지 않은 종이와 같아서

  싸인펜을 쥐고 있으면 또 한번 막막해진다

  예수님을 부르고, 조상님께 기도하고,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이라도 달듯

  쩔쩔매며, 굽실거리며

  두툼한 돈뭉치를 한 번이라도

  멱살처럼 움켜잡아보고 싶은 자들에게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로또를 안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꼭 당첨되세요, 주인 남자의 빈말은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낫고

  코미디 프로는 복권 추첨 프로와 같은 시간에 나오며

  주말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로또방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을 배당받는다

  주위를 흘끗거리며, 헛기침을 하며, 창밖 사람들을 노려보며

  - [황금을 찾아서](2011년)


  #. 최금진 시인(1970년생) : 충북 제천 출신으로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동국대, 경희사이버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광주대와 한양대에 출강 중.




  <함께 나누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그래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어.”라고 말함은 엄청난 고문이랍니다. 이를 ‘희망고문’이라고 하지요. 그렇다고 희망 안 보이는 사람더러 “너 이제 전혀 희망 없어!”라 말해도 그 사람은 고문을 당합니다.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늘에서 희망의 동아줄이 내립니다. 단 로또는 누구에게나 행운을 가져다주진 않는 요물입니다. 로또는 우연과 필연을 동시에 품습니다. 당첨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워 우연에 맡기지만 당첨자는 반드시 나오는 필연.

  오늘도 많은 이들이 유통기한이 아주 짧은 희망에 매여 주기적으로 로또 사서 삶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시는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로또 안 사는 건 나쁘다.’라고. 그럼 거꾸로 읽으면 ‘로또 사야만 옳다.’가 됩니다. 우리 부부는 로또를 사지 않습니다. 시(詩)에서처럼 10%의 고소득층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둘 다 '문출네(문칠네) 복'을 지닌 사람들로 인정한 터라 그 행운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고 여겨서.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제목에선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하고선 첫 시행부터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로또를 사는 순간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고. 그렇지요, 애초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확률에 달라붙는 지는 게임이라 희망고문에 시달리다 또 절망 속으로 빠뜨리니까요.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삶의 목표를 로또 사는데 둔다고 합니다. 바로 로또가 삶 그 자체란 말이지요. 하기야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여기서 무관(無關)하다의 뜻이 참 요상합니다. '1. 아무 관련 없다'와 '2. 매우 가깝다.' 어떻게 같은 낱말이 정반대의 뜻을 지니는지...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그들은 '왜 사느냐'를 고민할 필요가 하등 없는 사람들입니다. 로또 없이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볼 때 오직 로또만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한심할까요?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에 대한 답입니다. 로또를 한 번이라도 사보지 않은 사람은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표현에 잠시 머뭅니다. 저도 사본 적 없어서. 결국 저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을 배당받는다"


  제가 가장 주목한 시구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베푼 마지막 은전인지. 절대 감당 못할 만큼 절망을 주진 않고 지푸라기라도 잡도록 해줍니다.

  문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아주아주 작은 희망이 절대적 절망보다 나은 지 알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시는 로또를 사라고 권유하는 내용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한 번쯤 뭔가를 간절히 빌어보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 첫째 사진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로또 명당이며, 둘째는 로또 최대 상금을 탄 미국인으로 2022년 당시 한화로 2조 8천 억원이랍니다. 둘 다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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