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운기 시인(1961년생) : 전남 보성 출신으로 1983년 한양대 재학 중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삼국유사] 연구 권위자로 이름 알려졌으며,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 학과 교수
<함께 나누기>
어떤 여인에게 직접 들은 얘깁니다. 그녀의 남편이 잘 때 코를 심하게 골았나 봅니다. 신혼 초엔 지금보다 약하지만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고 하는데... 십 년 이십 년 지나면서 그 소리에 익숙해졌는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답니다.
나이 오십 되어 처음 여고 동기들과 해외여행을 갔는데 친구랑 둘이 함께 자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래도록 얘기 나누다 막상 자려니 잠이 안 오더랍니다. 그래 가만 생각해 보니 술을 좀 마셔서 그랬나, 아니면 커피를 많이 마셔서...
잠을 설쳐 다음날엔 아예 술을 입에 안 대고 커피도 부러 안 마셨답니다. 그럼 푹 잤을까요? 아뇨, 역시 설쳤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생각해 보니 평소와 바뀐 리듬 탓. 늘 적당한 짬마다 들린 코골이가 없어짐으로써 일어난 정반대의 현상이라나요.
익숙해진다는 것, 즉 익숙해짐은 편안함으로 연결됩니다. 그 편안함이 좋기에 우린 익숙해지길 원합니다. 그런데 이 익숙해짐도 주관적일 경우가 종종입니다. 한 예로 작은 평수 아파트에 살다 큰 평수로 이사 간 사람은 이내 곧 적응합니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큰 평수에서 살다 작은 평수로 옮기면 무척 불편해하고 그 불편함은 상당히 오래간다고 합니다.
오늘 시는 따로 해설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스윽 한 번 읽으면 다 들어오니까요.
1연은 '오래된 ~~는 ~~를 잘 알고' 하는 통사구조로 돼 있습니다. 마치 이상 시인의 시구 한 구절을 보는 등.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오래 함께 산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압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우린 그렇게 삽니다. 오래 익숙해져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에 나를 맡기고 삽니다. 오랫동안 이용한 이발소 주인은 내 머리를 잘 알아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고, 단골 음식점은 조금 덜 맵게 해 달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줍니다.
바지 칫솔 구두 빗 같은 사물은 오래될수록 손때가 묻으면서, 아는 이의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도 익숙해지면서 정감이 쌓입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지면 두뇌의 확장을 막아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정신과 분별력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런 익숙함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변화를 받아들여 발전을 이룰 수 있건만.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우리는 익숙함을 즐기면서 다른 한편으론 변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 시행을 읽습니다. 익숙함의 반대는 '낯섦'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낯섦을 못 견뎌 해 친한 사람만 만나고, 익숙한 곳에만 가고, 자신있는 부문만 손댑니다.
그동안 너무 익숙함에 빠져 나타와 안일의 삶에 길들여져 있지 않나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 첫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한 켤레 낡은 구두]인데 익숙함의 의미를 잘 보여주며, 둘째 툰은 여행 중 익숙한 한식만 찾는 사람과 현지식 먹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대한항공 뉴스룸(2022년 06.20)'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