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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0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14)

제214편 : 임보 시인의 '돌의 나이'

@. 오늘은 임보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표 아래 시행은 원래 시에 포함된 부분입니다)


        돌의 나이

                           임보


  어느 고고학 박사가

  땅 속에서 석기를 하나 찾아냈다

  몇 만 년 전 것이라고 했다


  길을 가다 나도

  돌멩이 하나 집어들었다

  몇 백만 년 전 것이 아닌가?


  * 고고학자들이 구석기 유물이라고 해서 특정한 돌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돌을 즐기는 사람들이 수석이라 해서 특정한 돌멩이를 선택해서 애지중지하는데, 도대체 이 세상에 오래된 돌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신비롭지 않은 돌이 어디 있단 말인가?

  - [눈부신 귀향](2011년)


  #. 임보 시인(1940년생, 본명 ‘강홍기’) : 전남 승주군 출신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충북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 문정희 시인의 '치마'에 화답하는 '팬티'란 시를 지어 웃음 짓게 하는가 하면 쉬운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임보 시인의 시는 쉽고 머리에 쏙 들어오는 시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배달할 때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몇 년 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그 미투를 비꼬는 「미투[美鬪]」를 발표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뒤부터 훑어볼까 합니다. (*부분은 원래 한 행)


  "돌을 즐기는 사람들이 수석이라 해서 특정한 돌멩이를 선택해서 애지중지하는데"


  우리 집에 수석(壽石)이 꽤 됩니다. 천성이 게으른 제가 모았을 리 없고, 학교 근무할 때 수석 취미 가진 이가 모아놓은 걸 퇴직할 때 가져가지 않아 갖다놓은 겁니다. 자칭 수석전문가가 와 보더니, "돈 될 만한 게 없네" 하셨습니다. 묘한 건 그 전엔 갖다놓은 돌이 이쁘고 가치 있어 보였는데 그 말 들은 뒤 평범한 돌로 보였습니다.


  "어느 고고학 박사가 / 땅 속에서 석기를 하나 찾아냈다 / 몇 만 년 전 것이라고 했다"

  "길을 가다 나도 / 돌멩이 하나 집어들었다 / 몇 백만 년 전 것이 아닌가?"


  1연과 2연의 연결이 좀 비약적이지 않습니까. 고고학자가 찾아낸 석기와 길을 가다 그냥 무심코 집어든 돌을 같은 범주에 넣어 다룸을. 아마 고고학자가 이 시 보면 열받을 듯. 어쩌면 대뜸 '무식한'이란 용어가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간 면에선 '둘 다 오래된 돌이다'는 공통점은 갖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돌과 그렇지 않은 돌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 듯. 헌데 시인은 언제나 함축적 의미를 숨깁니다. 그 내용이 마지막 시구에 언급돼 나옵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오래된 돌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신비롭지 않은 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람'을 '돌' 자리에 대입하면 좀 더 명확해집니다. 돌 가운데 가치 있고 가치 없는 돌이 없듯이 사람 역시 가치 있고 가치 없는 사람 따로 있느냐고. 세상 사람 모두 신비롭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아야 함을 강조하려고 비약적 표현을 한 게 아닐까 하는 뜻으로 새깁니다.


  물의 일으켰던 시인의 「미투」를 덧붙입니다.



    - 미투(美鬪) -


  진달래가 벌에게

  당했다고 하니

  민들레도 나비에게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매화 산수유 복숭아 살구 자두들이

  떼를 지어 ‘나두! 나두! 나두!’

  아우성을 쳤다


  드디어

  벌과 나비들이

  얼굴을 싸쥐고

  은둔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해

  과일나무들은 열매를

  못 달고

  세상은 깊은 흉년에 빠졌다.  



  *. 오늘 시를 공부하며 우리나라 최고가(價) 수석을 찾았더니, 30억대 '몽유도원도경' ([뉴시스] 2019년 8월 30일)이 나왔습니다. 첫째 사진은 그냥 돌 두 개 겹쳤을 뿐인데 제 눈에는 그게 더 나아보이니 아마도 눈이 나빠서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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