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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01.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75)

제75편 : 그림책 만들기

@. 오늘은 제가 그리고 쓴 그림책을 북콘서트 겸해 소개합니다.



  올초 그림책 강의를 받으며 책 만들기에 도전한 결과 제가 그림 그리고 글 덧붙인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물론 판매 목적이 아니라 개인 보관용입니다. 그러니 조잡합니다. 어쩌면 저에게만 의미 있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이번으로써 끝이며, '두줄시'도 당분간 쉬겠습니다. 잘 쓰지 못하는 시 잡고 억지로 버텨왔던 까닭이 이 책 만들기에 있었습니다. 책은 예쁘게 잘 나왔는데, 제가 스캔 잘못해 보기에 '별로'일 겁니다. 다만 그림 문외한이 나름 열심히 노력했단 점만 살펴봐 주시길.



  1. 표지 부분으로 오른쪽이 앞표지, 왼쪽이 뒤표지입니다.




  2. 안녕이라고 하지 마




  [시작노트]



  사랑하다가 헤어지면 슬프다. 더욱 ‘우리 이제 헤어지자’란 말 남기고 돌아서면 다시 뒤돌아보기 싫다. 눈물이 터질까 봐. 함에도 저쪽도 돌아보겠지, 그래도 나는 안 돌아봐야지, 내가 먼저 끝내자고 했지만 붙잡을 줄 알았는데 그놈의 자존심이 뭐길래.

  한참 가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돌아봤는데... 아 그녀도 뒤돌아보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헤어지는 걸까, 아님 다시 끈을 잇게 되는 걸까?



  3. 짐과 심




  [시작노트]


  옛 성현들은 '나이 들수록 욕심이 줄어든다'라고 했다. 그 말대로 되어야 할 텐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이 더 많아졌다. 나이 들면 어깨 위에 진 무거워진 삶의 짐이 덜어지고 그러면 마음도 가벼워져야 하는데, 웬걸 짐보따리에 다른 욕心이 들어와 꽉 채웠다.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 '낮은 곳에 눈길 줘라', 참 좋은 말이라 책갈피에 꽂아두었다 생각날 때 꺼내 되새겨야 할 말들이건만... 오늘도 그 글귀 적힌 종이는 바람에 날려 저쪽 한 구석에 처박혔다가 비 맞으며 사시나무처럼 떨다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4. 소녀와 홍시




  [시작노트]


  어릴 때 팔칸집에 살았는데 주인집 소녀는 나를 무척 따랐다. 어느 가을, 나는 홍시 따오고 소녀는 제 엄마 몰래 떡을 갖고 왔다. 떡을 홍시에 찍어먹던 중 내 실수로 홍시 담긴 그릇을 엎었고, 죽이 된 홍시는 그만 소녀의 하얀 치마를 더럽히고 말았으니.

  한 번 물들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 감물. 나는 도망쳤다, 소녀의 어머니께 야단맞을까 봐 비겁하게. 그래, 가을에는 감만 바알갛게 익어가는 게 아니라, 소녀를 그리는 내 마음도 빠알갛게 익어간다.



  5. 다섯 의자




  [시작노트]


  우연히 지나치는 걸음에 한 카페 앞에서 야외에 벌려놓은 탁자와 의자를 보았다. 사람들은 앉아 있지 않으나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의자들도 모여 반상회 하는가 싶어 잠시 그들의 소리를 엿듣기로 했다. 주로 간밤 손님들 얘기다. 정겹게 팔짱 끼고 가는 젊은 남녀 얘기부터...

  그래 의자들도 저리 모여 얘기 나누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헌데 나는? 누구를 찾아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없는 나는?



  6. 트랩이 닿으면




  [시작노트]


  그대 내리는 정류장에 와 기다린다. 그대는 온다는 기별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휴대폰 배터리가 끝나서 연락 못한 거라 여기련다. 트랩은 닿고 사람들은 내리고... 내 눈길은 더듬으나 그대 흔적은 없다. 그대 비슷한 사람도 없다. 다들 갈길 바쁜 사람들뿐.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을 아는가, 하마 오겠지, 하마 오겠지 하면 자기 최면 걸며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그러나 마지막 트랩이 끝나도 그대는 오지 않았다.



  7. 허공에 서다



  [시작노트]


  까마득한 공중에 밧줄 하나에 의지해 작업하던 노동자를 보았다. 가끔은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하던 노동자도 보았다. 삶은 늘 고비가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고 그리 들으며 산다.

  헌데 오르막뿐인 삶이라면? 늘 허공에 매달려 밧줄 하나에 매달려 살아야 한다면? 허공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예사롭지 않다.



  8. 자전거 주인은 어디에?




  [시작노트]


  어릴 때 아버지는 하도 내가 자전거 타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자, 어느 날 타작마당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냥 타보라 했다. 잡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몰다 보니 몇 번이고 넘어져도 그냥 보고만 있었다. 다만 한 마디 거들 뿐. ‘기울어지는 쪽으로 핸들 틀지 말고 반대쪽으로 해보라’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으면 쉬웠을 텐데. 어릴 땐 원망스러웠는데 나이가 드니 아버지의 교육 철학을 알게 되었다. 울 아버지는 머리로 배우지 말고 몸으로 익힘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려고. 머리로 익힌 기술은 시간이 가면 잊혀지지만 몸으로 익힌 기술은 쉬 잊혀지지 않는다고.



  9. 성문



  [시작노트]


  성문은 성 안의 사람을 지키려고 만들어놓은 문입니다. 그래서 성문은 함부로 열 수 없습니다. 적이 쳐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성문은 가끔 열립니다. 중요인물의 행차거나 군대가 출정하거나 큰 물건을 성내에 들여올 때나.

  헌데 그대 마음은 성문보다 가볍고 낮고 허약해 보임에도 절대로 나를 향한 문을 열지 않습니다.



  10. 소등도에서




  [시작노트]


  올봄 남도여행을 떠났습니다. 해남과 진도에서 두 밤을 지내고 새벽녘에 부랴부랴 장흥 ‘소등도’로 향했습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간밤 갈매기 울음소리에 숨어들었든 소등도가 여명이 열리자 고개를 내밀었고 얼마 뒤 해가 살포시 솟았으니.

  신새벽에 물질 나간 부지런한 어부가 잡은 물고기를 담고 배가 들어옵니다. 오늘 많이 못 잡았으면 어떻습니까, 내일 또 잡으면 되지요.



  11. 밝은 데서, 높은 데서




  [시작노트]


  밖에서 동굴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빛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거꾸로 동굴에서 밖을 내다보면 다 보입니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일 것 같습니다. 정말 땅에서보다 더 많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높으니까요.

  헌데 내려와야, 내려와서 고개를 숙여야 제대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민들레 같은 작은 꽃입니다. 고개 숙이고 눈높이를 맞춰야 작은 꽃들은 보는 이를 향해 활짝 웃습니다.



  12. 씨감자가 썩지 않으면




  [시작노트]


  올봄 감자를 캐다가 묘한 걸 보았습니다. 분명히 같은 모양으로 감자눈이 나온 부분을 잘라 심었는데 어떤 씨감자는 썩어서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왔고, 또 다른 씨감자는 그대로 쌩쌩하게 저 혼자만 살아남았습니다.

  감자 수확하는 날 썩지 않은 녀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참, 이기적인 놈!’ 하고. 만약 감자의 신이 있다면 그 神에게 말해 혼내주라고 할 정도로. 그래도 제가 씨감자라면 썩기보다는 썩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 그림책은 모두 12장 24쪽으로 돼 있습니다. 남의 그림 베껴 그리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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