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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15.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76)

제76화 : 한 소녀 생각

           * 한 소녀 생각 *



  (1) 소녀가 학교에 오다 *



      -'2006.05.10' 일기에서-



  오늘 1학기 중간고사 시험 감독 갔다가 한 자리가 빈 걸 보았다. 답지 회수용 봉투에 이름 적으려 지나가는 듯이 누구 자리냐고 물으니 ○○의 자리라 했다. 깜짝 놀랐다. 시험 치는 날 빠질 정도의 병이라면…? 휴학을 했다고 한다. 몹쓸 병이 들어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올해 1학년 수업만 들어가다 보니 2학년 담임들과 접촉이 없어 몰랐다. 그래도 그애가 휴학계 낸 걸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사실 난 기억력이 별로다. 따라서 작년 가르쳤던 애를 모르는 건 부끄럽지만 항용(?) 있는 일이다. 그러나 ○○는 잊어선 안 될 애였다. 그애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하면 예쁘고, 공부 잘하고, 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자진해서 '국어학습 도우미'가 된 뒤 수업 전 필요교재를 교탁 위에 갖다 놓았고 수업 후 나온 결과물 정리할 때도 가장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딱 한 번 부탁한 뒤론 부르지 않았건만 수시로 와 "선생님, 도와드릴 거 없어요?" 했다. 그 예쁜 행동에 나는 별 보답을 하지 못했고… 

  올 학년 초 발이 다섯 군데나 부러져 휴직해야 함에도 무리하면서 억지로 목발 짚은 채 학교에 갔더니 그애가 교무실에 날 찾아왔다. 그때 안색이 파리하여 무슨 일이 있는 듯했으나 말을 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 알아보았더니 병에 걸렸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그때 농담 삼아 말했다.

  "올해 '정볼매 선생님 팬클럽' 회장을 맡아야 할 녀석이 아파서야 쓰겠니?" 했더니, 웃으며 곧 나아 회장직을 맡겠다고 했다. 그런 애가 가끔 한 번씩 교무실에 들르더니 뜸해졌고, 나는 나대로 바빠 잊고 지났는데… 지금 병원과 집에서 투병 중인데 상태가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눈에 띄게 호전되는 건 아닌가 보다.


  난 명색이 가톨릭 신자지만 제자를 위해서 한 기도는 고작 인문고 3학년 담임 때 입시 날 아이들이 최선 다해 좋은 성적 내달라고 수험장 교문에 기대 빈 적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제 진심으로 그 소녀를 위해서 빈다.

  "하느님, 정말 모든 면에서 다 이쁜 애입니다. 하지만 이쁜 짓 아직 다 못했거든요. ○○는 하느님 뜻에 맞게끔 이쁜 행동만 할 애입니다. 환히 웃는 그 얼굴과 또랑또랑한 그 목소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건강을 회복하여 꼭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현재 어떤 사정인지 몰라 찾아가지 못하고 제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서 내 소개를 하자 바꿔줬다. 나는 절로 소리가 가라앉았는데 ○○는 오히려 담담히 인사했다. 다른 말을 계속 잇기가 힘들어 고작 한 마디만 던졌다. 

  "야 인마, 네가 안 와서 팬클럽 결성 못하고 있잖아."하고.




  (2) 오늘 소녀가 학교에 오다



       -'2006.11.12' 일기에서-



  지난 5월 10일 전화로 안부 물은 뒤 반년이 지났을까. 오늘 ○○가 다시 학교에 왔다. (담임이 불편할까 봐 전화 줄이는 바람에 그 사이 두 번쯤 연락했을까...)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졌는지 벙거지 쓰고, 안색도 조금 파리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나은 모습에 기뻤다. 그동안 전화로야 두 번 얘기했지만 직접 얼굴 보긴 꽤 시간 지났으니…. 

  상태가 매우 호전됐단다. 몹쓸 균이 대부분 사라지고 혈액 속에 조금 남아 있는데, 그것도 두 달쯤 치료받으면 없어질 거라기에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네가 와서 참 고맙다."라고 했다. ○○는 교무실 내 자리 옆에 앉아 한참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는 얼굴이 매우 맑았다. 정말 회복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쉬었지만 내년엔 복학해 학교로 와 올해 못한 몫까지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다. 하는 말조차 이뻐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헤어질 때 우리 집에 꼭 놀러 오라고 했다. 그냥 단순한 인사로 그치지 말라는 뜻에서 함께 온 엄마에게도 그리 전했다.

  "우리 집은 산속에 있어 공기가 맑아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꼭 한 번 찾아오세요. 맛있는 것 많이 준비해 드릴게요." 하고.




  (3) 소녀가 하늘로 가다



      -'2007.03.04' 일기에서-



  다음 해 개학하자 문득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 ○○의 어머니가 받았다. 내가 이름을 대기도 전에 대뜸 울음부터 터뜨렸다. 그때만 해도 상태가 좀 나빠져 입원했나 보다 생각했다. 헌데 울음이 한참 이어지기에 이상하다 여길 즈음 말했다. 하늘로 갔다고. 

  "아니 그동안 호전되고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하고 말꼬리를 흐리자,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백혈병 증세 가운데 점점 악화돼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처럼 호전되는 듯하다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경우도 더러 있단다. 


  전화를 끊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개학 후 사흘밖에 안 됐는데 자습을 시켰다. 그 해 유일한 자습. 담당부서 사무실인 학생지도실로 가 혼자 펑펑 울었다. 가까운 친척이 하늘 갔을 때도 그리 울지 않았건만. 

  나는 사람들로부터 ‘다정’보다는 ‘냉정’ 쪽에 기운다는 평을 듣는다. 시골로 옮기자 당장 까촌남(까칠한 촌남자)이란 별명 얻었고. 잔정이 없는데... 아이들한테 따뜻한 말보다 엄격한 지시 내리기에 더 많은 시간 할애했는데... 당근보단 채찍을 더 많이 휘둘렀는데... 


  소녀가 하늘로 간 나이는 만 15세. 지금 살아 있으면 “선생님 저 다음달 결혼해요.” 하며 청첩장 내밀 나이인데... 어린 사람이 하늘로 감은 언제나 슬프다. 부디 일찍 데려간 하느님께서 이쁘게 써주시길... 잠시 두 손 무겁게 모은다. 


  *. 덧붙인 사진은 글 속 소녀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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