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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4.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78)

제78화 : 이쁜 사내아이

@. 오늘 글은 2006년 쓴 [수업일기] 속에서 뽑았습니다.



            * 이쁜 사내아이 *


  아이들과 생활한 지 30년 가까이 되다 보니 예쁜 아이들을 무척 많이 만났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그 가운데 특히 기억나는 예쁜 녀석은 남녀공학인 중학교 1학년 사내애다. 보통 소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사내 녀석이라니!


  <첫 번째 이야기> : 학부모 참관수업 중에


  지난 5월 19일, 학부모 초청 참관수업하는 날이었다.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일 년에 꼭 한 번 이런 기회를 갖는다. 선생님들은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나름의 좋은 점도 있기에 그대로 시행하고 있다. 이 행사를 반대하는 편은 아니나 신경 쓰이긴 마찬가지다.
  이 날 모의재판 형태의 토론 수업을 했다. 사실 이런 수업은 좀 위험하다. 평소 발표 잘하던 아이들도 제 엄마 앞에선 하지 않을 경우가 종종이므로. 토론의 주제는 '체벌'이었다. 먼저 모의재판을 한 뒤 애들에게 억울하게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체벌당한 경험이 있으면 얘기해 보라고 했다.




  솔직히 이런 말을 꺼내면서도 뒤에 열 명이 넘는 학부형들이 앉아 있는데 설마 부모님께 억울하게(?) 맞은 일을 발표할 애가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다. 그런데 맨 뒤,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큰, 평소에 싱거운 말을 잘하는 한 애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긴장했다. 엉뚱한 소릴 할까 봐.
  처음에는 어느 선생님에게 체벌당한 경험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중간고사 성적표 갖고 집에 갔을 때 엄마에게 크게 야단맞고 얻어맞기까지 했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게 왜 억울하냐니까, 자신이 공부 못하는 건 엄마 아빠가 머리 나쁘기 때문에 자신도 나쁜데 왜 자기를 때리느냐는 거였다.

  아이들도, 참관한 학부형도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점잖을 유지할 수 없어 함께 웃고 말았다. 헌데 그때 내 눈엔 녀석의 바로 뒤에 앉은 한 어머니가 들어왔다. 다들 웃고 있는데 유독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인.
  잠시 뒤 얼핏 고개를 든 모습을 보니까 녀석과 바로 판박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의 어머니셨다. 그러니 녀석은 자기 엄마를 뒤에 앉히고 그런 말을 한 셈이다. 그때부터 녀석은 수업 시간에 늘 내 시선 속에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 :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체벌받지 않게 해 달라


  나는 교직 생활 중에 공부 못한다고, 또 성적이 나쁘다고 하여 아이를 체벌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과제를 내주고 난 다음 해 오지 않았을 때는 절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 습관이 한 번 들면 나중에 고칠 수 없다고 여겨서.
  공부는 자기네 말처럼 엄마 아빠의 유전적 형질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과제를 해 오고 안 해 오고는 그것과 관계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수업 중에 과제 검사하다가 관심 아래 있던 녀석이 걸렸다. 과제를 해오지 않은 세 명 중에 걸린 셈이다.

  불러내 손바닥을 세 대 때리고 나서 훈계를 하고 들여보내려는데 다른 애 둘보다 녀석은 유독 표정이 이상했다. 영 떫은 모습의. 그래도 그렇거니 하고 수업은 계속됐고 그리고 끝났다. 그런데 수업 마치고 나오는데 녀석이 따라오면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무슨 일이냐 하니까, ‘다음에 혹 자기를 체벌할 일 있으면 교실에서 하지 말고 교무실이나 지도실에서 해 달라.’는 게 아닌가. 다른 애들은 그 반대였다. 교무실과 지도실 대신 차라리 교실을 택했다. 그러니 당연히 되물을 수밖에. 그러자 녀석이 쭈뼛거리는 게 아닌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어,
  "너 혹시 좋아하는 여자애가 네 반에 있니?"
  "…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녀석의 심정이 좀 이해됐다.

  "좋아, 교실에선 너를 창피 주거나 매를 들거나 하지 않겠지만, 만약 잘못하면 교실에서 내가 체벌할 양의 두 배를 체벌한다. 그래도 괜찮아?"
  "네."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예뻐 싱긋 미소 지었다.




  <세 번째 이야기> : 여자애에게 잘 보이려고 굶다


  어제(10월 19일) 점심시간이었다. 앞 시간에 잊어버리고 교실에 놔둔 지시봉을 가지러 갔다가 그 애를 보았다. 교실에 아이가 있음은 당연했으나 문제는 혼자였다. 다들 식사하러 갔는데 오직 그 애만 남아 있어 물었다. 왜 가지 않느냐고.
  대답은 밥이 먹기 싫어서라나. 밥이 먹기 싫다? 다른 애라면 몰라도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들 가운데 가장 튼튼한(?) 녀석이? 그 애와 밥 먹기 싫다는 말은 도무지 연결될 수 없었다. 되물으려다 순간적으로 전의 일로 짐작되는 바가 있어 넘겨짚어 보았다.





  "너 혹시… 네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뚱뚱하다고 싫다 하든?"
  얼굴 붉힐 뿐 대답 없다. 분명하다. 아마 그 튼튼한 체구 때문에 차였거나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었음에. '에이 미련한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밥 안 먹어?' 하고 꿀밤 한 대 먹이려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고백했다가 퇴짜 맞았구나?"
  "……"
  "으음… 좋아. 선생님이 기똥찬 방법 하나 가르쳐 줄 테니 그대로 해보련?"
  갑자기 기대에 찬 얼굴로 바뀌었다.
  "대신에 내 말대로 꼭 해야 한다. 알겠지?"
  고개가 힘차게 끄덕여졌다.
  "그 여자애를 만나거든 앞으로 한 달 안에 10kg 뺄 테니까 그때는 친구가 돼 달라고 해라. 만약 걔가 어떻게 빼겠냐고 물으면 아침 점심 저녁시간마다 운동장을 내다보라고 해. 단지 그 말만 해!"
  그런 뒤 식사를 하라고 보냈다.





  오늘 아침 만난 녀석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불러 물어보았더니 예상대로 그 말을 했고 그 여자애가 녀석의 말을 따르기로 약속을 했단다. 기뻐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이제 살 빼기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밥을 먹지 않고 빼려고 해선 안 된다. 대신에 아침에 학교 일찍 와 운동장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 후 30분쯤 지난 뒤 한 바퀴 돌고, 종례 후 집에 가기 전에 한 차례 철봉 매달리기로. 어때 약속할 수 있지?"
  "예."

  우렁차게 대답한 뒤 교실로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매우 예뻤다. 그래선지 오늘따라 별로 살쪄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 여자애는 녀석이 뛰는 모습을 매일 세 번씩 보게 될 거다. 녀석도 그걸 알 거고. 앞으로 한 달 뒤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 지금은 어떤 종류의 체벌도 안 되지만 그때는 회초리로 손바닥 두어 대 때림은 허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용된 모든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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