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 새옹의 말이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 새옹의 말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
중학교 졸업할 때 공고를 선택했다. 인문계는 대학 진학할 형편이 안 돼 포기. 택한 공고에선 화학과가 가장 돋보였다. 해서 그 과를 선택했고. 입학해서도 나름 좋았다. 비슷한 가정 형편 - 공부는 좀 하나 가난한 집 -이라 친구 사귐에도 좋았고. 그래서 나의 길은 정해진 듯했다.
헌데 2학년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실험할 때마다 머리가 아팠으니. 화학 실험은 약품들을 배합하며 생기는 빛깔 보며 냄새 맡는 일이 중요하다. 냄새 맡자마자 토할 정도로 역겨움 느껴 뛰쳐나와야 했으니. 선생님도 다른 친구들도 이해 안 된다고 했다. 그 정도 냄새는 다 참을 수 있다고.
그제사 어릴 때 두 번 겪은 연탄가스 사건이 생각났다. 그때는 자다가 가스 마시면 죽거나 아니면 뇌에 이상 생겨 맛이 가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우리 가족들은 나 때문에 살아났다. 가스가 들어왔다고 하면 머리 아파 깨어났으니. 그때마다 칭찬 들었지만 나는 며칠간 아팠고.
화학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유일한 방법은 대학 진학. 살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물론 집에는 말 못했다. 3학년 말이 되어 비로소 누나에게 고백했다. - 당시 결혼한 누나가 조그만 사업 해 우리 집 경제까지 책임지던 상황 - 학비는 가정교사해 메꿀 테니 꼭 가고 싶다고, 아니 갈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대학 진학은 결정됐고 갈 과를 정해야 했다. 그때 나는 아주 원대한(?) 포부를 세웠다. 고등고시 패스하여 판검사 되기로. 그러면 법대로 가야 했고. 예나 제나 서울법대가 최고였으나 진작에 포기. 다음으로 노린 곳이 성ㅇㅇ 법대.
지금은 고려대 연세대도 뛰어나지만 당시엔 성ㅇㅇ 법대가 서울법대 다음. 다만 2차(후기)였다. 1차 떨어지면 선택하는 곳. 1차는 '지국대' 적당한 과 시험 삼아 치고 2차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을 담임선생님께 말하면서 1차 대학은 아무 과나 써 달라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꿀밤 먹이며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야 이 녀석아, 네 미래 결정지을지 모를 일을 나더러 하라고?"
그때 담임 옆자리 국어선생님께서 한 마디 덧붙였다.
"정ㅇㅇ, 너 국어 잘하잖아. 국문과 써라."
나는 아직도 두 분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한다. 왜냐면 두 분 말(예언)대로 되었으니...
1차 치고 나오자마자 길에서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가 격리돼서야 병명을 알게 되었다. '장티부스!' 입원해 있는 보름 사이에 2차는 물 건너갔고, 손에 쥐어졌던(?) 고시 패스는 끝나버렸다. 재수 꿈꿀 형편이 안 되었기에.
그리고 팔자에 없는 국문과 생활은 시작되었고. 정말 가기 싫었다. 문학 작품이라곤 교과서에 실린 시와 소설밖에 안 읽었으니... 지옥이었다. 국문학을 밑천으로 살아갈 수 없다 마음먹자 졸업반 때 다른 선택길이 열렸다. 당시 잘 나가던 태창기업 홍보부에 지원해 합격했으니.
그 길로 쭉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나 불행히도(?) 가족에게 다 알려지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도 의문이다. 교사보다 기업체 근무가 월급 더 많았는데...
새옹지마(塞翁之馬), 다 아는 고사성어이리라.
새옹(변방에 살던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쳐 버렸다. 헌데 몇 달 뒤 그 말이 오랑캐 땅 준마 한 마리를 더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축하하자 새옹은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어찌 알겠소?”라 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이후 새옹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참 안 됐다 하자 또 새옹이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어찌 알겠소?”라 했다.
1년 뒤 오랑캐들이 변방 그 마을로 쳐들어왔을 때 새옹의 아들은 절름발이인 까닭에 징집을 피해 가족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새옹지마'는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될 수 있고,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듯이 우리네 삶은 종잡을 수 없다는데 쓰인다.
자 재미 삼아 자신의 걸어온 길을 나처럼 나열해 보시길.
1. 형편이 되어 공고 아닌 인문계 갔더라면?
2. 공고 갔더라도 화학과 아닌 기계과나 전기과 갔더라면?
3. 대학입시 때 장티부스 앓지 않아 성ㅇㅇ 법대 합격했더라면?
4. 고시 패스했더라면?
5. 졸업할 때 교사 대신 태창기업을 택했다면?
6. 첫사랑과 엮였다면?
7. .... .... 8. .... .... 9. .... ....
어젯밤 불현듯 인 생각을 적어본다. 아내가 읽더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잡다한 마음이 많아지는 걸 보니 무슨 일 있어요?" 한다. 아마 이 글 쓴 연유를 감 빠른 이들은 눈치 챘으리라. 바로 시국 때문이다. 내가 고시 패스했더라면 내것만 지키기에만 매달리는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