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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나(77)

나이 일흔에 풀어놓은 소소한 이야기(제77편)

* 크리스마스와 나 *



어릴 때 ‘팔칸집’에 살았습니다. 팔칸집은 요즘으로 말하면 여덟 가구가 한 건물에 사는 연립주택이라 할까요. 당시 집주인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떵떵. 주인아저씨가 교회 (당시엔 ‘예배당’) 장로님이라 일곱 가구에선 한 명씩 교회 나가도록 묵시적 압력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죽어도 안 간다 했고,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 빠졌고, 누나들은 일요일도 공장 가야 한다란 핑계를 댔고, 동생은 고작 세 살이라 패스. 그래서 우리 집에선 가장 만만한 사람인 제가 우리 가족 대표로 예배당 나가기로 낙점받았습니다.




일곱 살 무렵 처음 나가던 그때가 크리스마스 가까운 날이었던가 봅니다. 가자마자 가장 먼저 배운 찬송가가 바로 ‘탄일종이 땡땡땡’이었으니까요. 노래 부르기보다 또래 만나기보다 신나는 건 선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얼마나 많은 과자를 주든지. 태어나 과자 가장 많이 먹은 날이었습니다.

캐럴을 열심히 부르면 부를수록, 성경 퀴즈에 제대로 답하면 답할수록 앞에 과자는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교회를 좋아할 수밖에요. 주인집 딸 혜숙이랑 함께 손잡고 가는 걸 보고 어른과 또래들이 놀려도 오직 과자만 머릿속에 아른거려 다 넘겨버렸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교회 이름이 '성광교회'였는데 그곳을 초등 6학년까지 다니다 끝났습니다. 마당에서 새끼줄로 만든 공을 차다 제가 찬 공이 날아가 주인집 요강을 깨버렸고, 요강 깨지면 그해 재수 나쁘다는 미신을 믿던 주인아줌마가 제 뺨을 때렸고.

그렇게 끝나려나 했는데 그 사실을 안 우리 아버지가 주인집 부부를 박살 내 결국 쫓겨나 산꼭대기에 무허가 집을 지었고. 워낙 오래전 기억이라 당시 주인아줌마가 혜숙이 엄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미신을 믿었던 걸로 보아 주인이 바뀌었는지도.


고등학교 2학년 때던가 같은 동네 살던 가장 절친인 초등동기 OO의 꾐(?)에 빠져나간 곳이 '연지교회'. 거기서 우리 동기인 OO를 비롯해 여럿 만났지만 가장 반가운 애는 이쁜 반주자. 저보다 두 살 어린 걸로 기억하는데 '오빠!' '오빠!' 하며 부르던 그 호칭이 얼마나 귀에 착착 감기든지. 앞으로 이 교회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했으나 대학 다니면서 날마다 술에 쩌린 생활. 부끄러움에 결국 끝냈고.




교사 첫 해 이웃 사는 동기 OO 집에 놀러 갔다가 걔 누나의 권유로 절에 다니기 시작. OO랑 둘이 매주 한 번씩 수정동에 있는 '연등사'란 절에 들러 불교 공부 및 수양에 몰두. 아마 이 시절이 가장 종교 열심히 공부했던 때로 여깁니다. 그러나 울산으로 직장을 옮기고서 처음 일 년 동안 먼 길 다녔건만 결국 거리 관계로 불교랑 헤어졌고...


그렇게 종교는 나랑 끝났는가 싶은 1985년 봄 어느 날, 어린 딸아들을 데리고 당시 울산에서 가장 인기 있던 성남동 '주리원 백화점' 가던 날이었습니다. 방어진에서 버스 타고 가던 중 염포(현재 현대자동차 공장 소재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눈에 띈 '염포성당' 십자가 때문.

그 성당 십자가는 단순한 십자 형상이 아닌 예수님이 양팔을 벌린 형태였는데 멀리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었습니다. 그때 무엇에 이끌리듯 아내더러 버스에서 내리자고 한 뒤 무작정 내렸습니다. 그리고 염포성당을 찾아가 가톨릭에 귀의하고 싶다 했고.


(염포성당 사진을 못 찾아 십자가 형상이 비슷한 울산 호계성당으로 대체함)



그때부터 성당 다녔으니 근 40년이 됩니다. 개신교(교회) 10년, 불교(절) 3년이니 가장 오래 다닌 곳이 가톨릭입니다. 그럼 제게 가톨릭만 소중하고 개신교나 불교는 그 아래인가? 아닙니다. 그때 그 순간 제게 다가온 종교가 가톨릭이었을 뿐.

오늘 또 맞이한 크리스마스, 앞으로 얼마나 더 마주할까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글벗님들 가정마다 무진장무진장 내리기를 잠시 기도합니다.


*. 덧붙인 캐럴은 '팰리스 나비다'입니다.

https://youtu.be/vXXARIBGtIc?si=euKYcZR_p3FfRV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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