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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지는 것들에 대한 변명(79)

나이 일흔에 풀어놓은 소소한 이야기(제79편)

* 굳어지는 것들에 대한 변명 *



오래전 지금도 아내에겐 욕 들어 먹는 일을, 남들에겐 칭찬받는 일을 한 적 있다.

1월 중순 어느 날, 둘이 운동 삼아 마을길 걷다 논으로 들어섰다. 하우스 안을 더 보온할 볏짚이 좀 필요해서. 어느 정도 볏짚을 마련해 논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내가 논둑길을 걸었고, 나는 논 가운데를 걸었다.
그때 갑자기 아내 비명이 들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 볏짚 내던지고 논둑으로 내달았더니, 세상에! 아내가 아랫논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놀라고 당황하여 비명을 내지르는 아내를 보자마자 1.5m 남짓한 높이 논둑 아래로 바로 뛰어내렸다.


(겨울논)



그 정도 높이라면 그때는 순발력도 운동신경도 살아 있을 때였고 게다가 논바닥이 적당히 말랑말랑해 보여 별 걱정 없이 뛰어내렸다. 그게 큰 착각이었다. 짚이 쌓인 조금 전 논은 햇볕이 잘 들어 한겨울이지만 낮에는 땅이 녹아 말랑말랑했는데, 아랫논은 전혀 아니었다.
그곳은 겨울 내내 음지라 햇빛 한 줌 들지 않아 땅이 꽁꽁 얼어붙어 논바닥은 돌판이나 마찬가지. 그리 높지 않다고 하나 오른발이 바닥에 딛는 순간 ‘ㅈ됐다!’ 하는 속외침과 동시에 크게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어진 결과는 이렇다. 아내는 떨어지면서 논둑 경사를 타고 굴러 다친 곳이 하나 없는데, 나는 발을 내디디지 못할 정도라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갔고. 엑스레이 찍은 결과 오른발이 산산조각 났다고 해야 하나. 발꿈치부터 발목까지 부러진 자국이 여섯 군데.
아내는 왜 자기 상황을 먼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무작정 뛰어내렸느냐 하면서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그냥 걸어 집에 왔을 텐데 하며 나무랐고. 나는 억울했지만 할 말이 없었는데, 다행히 병문안 온 이들이 모두 ‘멋진 사나이!’라 치켜세우는 바람에 아프면서도 은근히 기분 좋았고.


(착지 잘못으로 다리가 부러져 비명을 지르는 체조선수)



3월 초 개학 날까지도 낫지 않아 통깁스를 하다가 개학 날이 되자 의사에게 사정해 반깁스로 바꾸었다. 그것만도 어디인가. 아직 오른발을 디디지는 못하고 목발에 의지해야 하지만 전보다는 편하다. 이제 시간 지나면 반깁스도 풀 날이 올 터.
그런데 통깁스를 풀고 발을 펴려 하니 발목 부위를 두 달 가까이 묶어놓아서 그런지 잘 펴지지 않는다. 며칠간 물리치료를 하고 족욕까지 하니까 조금 풀리는 듯하나 원래대로 가려면 아직 많이 멀었다.
나와 같은 부상당한 선배들에게 물으니 자칫 발목이나 발가락 펴기를 소홀히 하면 그대로 굳어져서 나중에 진짜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병원에서도 제대로 걷는덴 무조건 3개월 더 지나야 한다며, 물리치료를 계속해줘야 원상대로 펴진다고 했다. 즉 한 번 굳어진 건 그대로 두면 잘 안 풀린다는 뜻으로.


(발목 반깁스)



올해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친다. 원래는 3학년을 하고 싶었다. 걔들을 재작년 1학년 때 가르치면서 관계가 아주 좋았기에 수업을 하면 호흡이 잘 맞으리라 여겨서. 단 3학년 맡으려면 담임을 해야 했다. 허나 담임 배정할 시기에 치료 기간이 얼마나 오래가게 될지 몰라 신청을 포기했고…
그 결과 1학년을 맡았다. 1학년도 가르친 경험이 두 번 있기에 교재 연구엔 특별히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그래도 교사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지난번 가르쳤다고 해서 다음에 그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은 게 있지만 많은 부분 보태기와 빼기를 해야 한다.

이미 개학 후 두 달이 지났건만 솔직히 올해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수업 연구에 등한히 한다. 재작년 했던 교재를 그대로 들고서. 그래도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하기야 걔들은 처음 배우는 교과서에다 처음 대하는 선생님이라 잘 모를 터.
문제는 나에게서 일어났다. 한 번 게을리하니까 다음에도 자꾸만 게을러지는 게 아닌가. 이상하게도 새로운 걸 연구할 엄두가 안 나고 그냥 옛것을 그대로 이용하려고만 든다. 도통 공부해야 할 교재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목발 한 신수지 선수)



새로 교재 연구를 하여 제대로 가르쳐야지 하는 건 마음뿐, 막상 책을 들면 또 놓게 된다. 어느새 굳어져 버린 것일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다가도 그냥 편하니까 재작년 교재 그대로 들고 들어간다.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굳어지고.


우리 삶에는 정말 굳어져야 할 게 말랑말랑한 채로, 말랑말랑해야 할 게 딱딱해지는 경우가 많다. 강단 있게 밀고 나가야 할 일을 우물쭈물 얼렁뚱땅 말랑말랑하게 넘어가는 경우는 참말로 꼴불견이다.
전과 같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답습하는 경우는 말랑말랑해야 잘 풀어지는 일을 굳어지게 만들어 실패하는 후자에 해당하리라. 나는 그동안 그런 사람을 속으로 욕하면서 절대로 그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맹세도 했다.
대학생 시절 가장 비판했던 교수는 몇 년, 아니 10년 20년 넘게 같은 노트를 들고 들어오는 구태의연한 교수가 아니었던가. 과 학생들끼리 얘기하는 좌석엔 언제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는 대상이 바로 그 교수였다. 하지만 그걸 내가 답습하고 있으니….


(명강의로 이름 높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아이들이 변하면 교사도 변해야 함이 진리일 텐데도 자꾸만 힘 안 들이고 보내려 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그래도 내 잘못을 의식하고 사는 삶과 그마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삶은 다르다고 변명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의지와 인내를 모아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굳어져야 할 것들을 폐차장에서 압착기를 빌려다 다지고 싶다. 그런 뒤 타성과 무의식과 게으름을 용광로에 넣어 다 녹여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해야 하는데...

*. 오늘 글은 '2010년 5월 7일 수업일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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