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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의 변(辯)(81)

나이 일흔에 풀어놓은 소소한 이야기(제81편)

* 얼간이의 변(辯) *


어릴 때 막내누나는 내가 엉뚱한 짓을 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아이구, 저 반피 같은 놈이!” 하고 혀를 찼다. 동네 형들이 시킨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면, “그것도 못하는 걸 보니 니는 완전 쪼다네, 쪼다!”라 했고.
아버지도 일 시킨 뒤 만족스럽지 않으면 “아이구, 저런 벅수 같은 놈이 내 자식이라니! 그것도 못해, 응!” 하며 화를 내셨다. 마을 어른들은 나를 포함하여 말을 안 듣고 '재작만 지기는'(말썽거리를 만드는) 꼬맹이들을 보면, “저런 바보 축구 같은 놈들을 봤나!”라고 혀를 차셨고.


(예전 '봉숭아학당'에서 바보 연기의 귀재 '맹구' 이창훈 씨 - 구글 이미지에서)



우선 ‘반피’는 주로 서부경남에서 쓰는 말인데 ‘반편이(半偏이 :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사람)’에서 온 말이고, ‘쪼다(또는 쪼다리, 또다리)’는 경남 전 지역에 두루 쓰이는데 반피와 마찬가지로 바보란 뜻을 지닌다.

‘축구(또는 축갱이)’는 운동 종목과 전혀 관계없이 한자어 '축구(畜狗 : 사람이 기르는 개)'에서 온 말이니 뜻이 짐작되리라. ‘벅수’는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주로 돌로 만든 수호신(이정표를 뜻하는 '장승'과 다름)인데, 전문 석공 아닌 사람이 대충 돌을 다듬어 만들었으니 그 모습이 꼭 바보 같아 쓰인 말이다.

이밖에 바보란 뜻을 지닌 사투리로 ‘달쪼’ ‘히수’ ‘얼빵이’ 같은 말도 있다. 경상도에만 쓰는 사투리만 해도 이리 많은데 전국으로 확대하면 얼마나 될지. 이 모두를 통칭하여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덜된 사람을 뜻하는 표준어가 ‘얼간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2% 부족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의 대표어라 해도 무방하다.


(남해 상주 남장사 앞에 세워진 벅수 - 구글 이미지에서)



개인톡으로 글을 배달받는 사람 가운데 아주 오래된 제자가 꽤 된다. 1970년대 말부터 인연을 맺었으니 45년쯤 될까. 그저께 그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내가 잊고 있던 시(?) 한 편을 보냈다. 사실 시라기보다 대충 얼렁뚱땅 지어낸 글일 뿐이지만.

십 년 전쯤 부산 서면 가까운 모 여중 근무할 때의 제자들이 동기회를 갖는다고 연락이 와 가서 만났다. 그 애들과 헤어진 지 35년이 넘었는데. 고마웠다.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내려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 희한하게도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옛 얼굴이 조금씩 남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한 소녀가 우리 집 방문했을 때 내 방에 걸려있던 시화를 보고 베낀 글을 보관하고 있다면서 내밀었다. 나는 이미 잊고 있었는데, 아니 그런 글 썼다는 기억조차 까마득한데, 우리 집에 걸려있음은 더욱 모르는 일인데...
아래 글이 그때 그 소녀(지금은 환갑 지남)가 보내준 작품의 일부다. 다만 메모해놓은 원본 대신 친구들에게 SNS 통해 보내려 만든 것이라 하니 참고만 하시길.



- 얼간이의 변(辯) -

“남들은 바로 몸짓을 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몸짓을 한다
그래서 나는 얼간인가부다

남들은 할 줄 아는 말은 할 줄 알고
할 줄 모르는 말은 할 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할 줄 아는 말은 할 줄 모르는데
남들이 할 줄 모르는 말은 할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얼간인가부다

이러는 나를 남들은 얼간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정작 얼간이라 불리어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정말 얼간인가부다”


아마도 시 창작 수업 중에 시 쓰기 어려우면 이렇게 쓰면 된다는 식의 자료로 만든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 기념비적(시를 쓰고자 한 번도 마음먹은 적 없었기에)인 시도 그저께 글 배달받던 제자가 보내줬기에 얻게 되었다.


(영화 '세 얼간이' 스틸 컷 - 구글 이미지에서)



그 제자를 생각하면 참 고맙다. 내가 저에게 특별히 해준 게 없음에도 명절마다 ‘스승의 날’마다 선물을 꼭 보낸다. 한 해 잠깐 담임 했을 뿐임에도 챙겨주니, 더 이상 선물하지 말라고 해도 보내니 뭐라 덧붙일 말도 없다. 그저 고맙게 받을 뿐.
이쁜 제자가 보내준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시에 쓴 대로 살아왔는가?’ 하고. 깨어있는 얼간이가 아니라 진짜 얼간이처럼 살지는 않았는지... 특히 “나는 할 줄 아는 말은 할 줄 모르고 / 남들이 할 줄 모르는 말은 할 줄 안다”처럼 할 말 하고 살았는지.

그래, 내가 그때 제자들의 정성에 보답하는 길은 변변찮은 글이나마 배달하는 일 끊이지 않으면 될 게 아닌가. 내용이 좋든 나쁘든, 표현이 괜찮든 미숙하든, 글로서 서로의 인연 계속 이어가는 방법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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