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은 소소한 이야기(제82편)
살아가다 보면 빚을 질 경우가 가끔 있다. 돈의 빚이나 마음의 빚. 거기에 우정의 빚 같은 것도 있을 터. 이런 빚은 다 인간관계에서 온다. 헌데 만약 인간 아닌 동물에게 빚을 졌다면? 아래는 실제 그런 빚을 진 경험이다.
5년 전 한 달 간의 ‘중남미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집 안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아파트 산다면 별다른 변화 있겠냐만 주택에는 가끔 말썽의 소지가 생긴다. 그동안 센바람이 불지도 않았고 큰비도 내리지 않았다는 이웃 말에 안도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여 이곳저곳 살펴보다 황토방 아궁이 출입문을 열었다.
안은 잔뜩 어질러져 있고 어디선가 배어 나오는 고약한 내음. 그러자 뭔지 모르게 머리 뒤끝을 당기는 찝찝한 기분... 세상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마도 떠나기 전 낮에 몰래 창고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한 달 가까이 쫄쫄 굶어 죽은 듯.
평소에야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에 닫았으니 아궁이 열기(熱氣)로 하룻밤 따뜻이 보내고 다음날 아침 문 열면 나가면 됐으니 녀석도 그리 여겼으리라. 허나 집을 오랫동안 비우니 열어둘 수 없었다. 거기로 바람이 들어오는 거야 괜찮으나 비바람 몰아치면 창고 안이 엉망이 되니까.
나는 솔직히 그동안 길고양이를 미워했다. 막 깎아놓은 잔디밭에 똥을 싸놓고, 오디 떨어질 때 받으려고 깔아놓은 망사 위에도 싸놓고. 똥은 약과다. 발정기만 되면 밤마다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달걀 얻으려 병아리를 사 와 집을 만들어놓았는데 비집고 들어가 다 죽여 놓고.
한 번은 아침에 창고문을 열다 갑자기 뛰쳐나오는 바람에 놀라 피하려다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자칫했으면 구급차를 부를 뻔했다. 해서 녀석이 다른 동물에 물어뜯겨 죽든, 차에 치여 죽든, 쥐약 잘못 먹고 죽든, 잘 죽었다고 고소하게 여기진 않더라도 그냥 넘기면 되는데...
그냥 죽은 게 아니라 굶어 죽은 게 아닌가. 동물의 죽음 가운데 가장 비참한 죽음이다. 고통 없이 바로 죽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고통을 느껴야 하는. 먹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 그래서 스티로폼 상자까지 뜯었겠지만 그럴 때까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정말 간절했으리라. 그게 마음 아프다, 몹시도.
그 후 길고양이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지만 우리 집에 피해를 주진 않았다. 깎아놓은 잔디밭에도 오디 걷으려 쳐놓은 망사 위에도 똥을 싸지 않았다. 밤에 귀 거스르던 발정기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녀석들이 이 집 주인의 고약한 성품을 소문 들어 알게 되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작년 가을 어느 날, 녀석이 드나든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놓고, 밤에 베란다 위를 걸어 다니는 발자국 소리도 들렸고. 그러면서도 녀석을 보진 못했다. 아니 '정확히' 보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저 멀리 달아나는 뒷모습만 봤을 뿐. 다만 어린 고양이임은 분명.
고민했다. 쫓아내느냐 아니면 그냥 두느냐. 자꾸 마음 쓰이게 하는 짓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다. 거기엔 녀석 먹을 만한 게 없다. 그냥 썩혀 거름으로 쓸 양으로 쌓아둠으로 고약한 냄새만 날 뿐. 거기를 계속 탐함은 달리 먹을 게 없다는 뜻 아닌가.
다시 고민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창고에 들어왔다 굶어 죽은 제 동료(아니 어쩌면 아버지나 할아비였을지도 모를)를 생각했다.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짧았다. 다음날 바로 마트로 가 고양이 사료를 샀다. 그리고 그날부터 빠지지 않고 테라스 아래 빈 공간에 놓아둔다. 거기는 안전지대다.
겨울 된바람이 불어오면서 다른 걱정이 생겨 집도 마련했다. 보기엔 시원찮아 보일지 몰라도 안과 밖에 보온재로 감싸 보기보다 추위를 막아준다. 다만 물은 곤란하다. 놔두면 얼어버리고, 한 번 얼면 음지라 낮에도 잘 녹지 않으니 마실 수 없다.
그럼 그 사이에 나랑 녀석은 친해졌는가. 아니다. 아직 아니다. 가끔 테라스 위에 놀다가도 내가 문 열고 나오면 부리나케 달아나 버린다. 요즘은 나를 보고도 바로 달아나진 않는다. 슬슬 움직이다 내가 자리를 비키면 다시 저가 원래 놀던 자리로 돌아가고.
주변 신경 쓰지 않고 녀석이 먹기 편하도록 사료 그릇을 안에 깊숙이 넣어두다 보니 고개 숙이고 들어갈 수 없어 나름 장대 단 도구도 만들었다. 사료 넣을 때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리면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분명히 아까까진 없었는데 어느새 소나무 아래서 내 행동을 지켜본다.
아마도 문 여는 소리로 나를 아는 듯하다. 가끔 사료를 잊고 지나가면 무슨 소리를 낸다. 그런 걸 보면 좀은 영리한 듯. 황토색 바탕에 까만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어 언뜻 보면 호랑이 새끼를 연상하는 모상이라 나름 봐줄 만도 하고.
그래도 아직 우리 사이는 남과 남이다. 저도 나를 주인으로 생각지 않고, 나도 저를 반려묘로 여기지 않으니 말이다. 사료 준 지 반년이 돼 가는데 우리는 아직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낸다. 사룟값이 제법 드나 그만한 돈이야 아직 부담되지 않을 정도.
다만 이 글을 마을 사람들이 읽으면 안 된다. 길고양이에게 사료 주면 자꾸 늘어나 피해 준다고 여기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나도 사실 그전에는 그랬고. 녀석이 아직 새끼들을 데리고 온 적 없으니 암컷 아닌 수컷인가. 수컷이면 인기 없는 녀석인가. 다른 길고양이를 한 번도 데려온 적 없으니까.
아니면 왕따 당한 녀석일까? 왕따? 그렇다면 또 슬프다. 사람도 동물도 무리에서 따돌림받음은 언제나 가슴 아프니까. 다만 나로선 다행. 대가족이 생기면 사룟값이 많이 들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길 터.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길고양이를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고양이뿐 아니라 야생동물을 멀리한다. 그래도 빚을 졌으니까 갚으려 할 뿐. 앞으로 언제까지 될까 모르겠지만 녀석과의 동거 아닌 이상한 동거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될 것 같다.
*. 고양이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pixabay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