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 즐기면서 일하다
* 즐기면서 일하다 *
<하나>
지난 토, 일요일에 통영과 고성을 둘러봤다. 이 두 곳은 자주 가는 곳으로 그곳에 대한 감흥을 적으려 함이 아니다. 하룻밤 머문 호텔(사실은 이름만 호텔일 뿐 등급 매기기 어려운)에서 만난 사장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아서다.
처음 안내를 받아 룸 내부를 보았을 때 그저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커피숍 팻말이 붙은 곳에 들어섰다. 커피숍이라기엔 식당에 가까운, 좀 애매한 곳을 소개받았다. 들어가보니 네스카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커피와 차가 진열돼 있었다. 압권은 라면. 가지가지 컵라면이 자로 잰 듯 각지게 진열된 상태.
당연히 파는 라면인 줄 알았다. '그냥 공짜로 마음껏' 이 세 마디가 사장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언제든 생각나면 와서 끓여 먹으라는 말. 단순히 인심 좋은 분이네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거기 들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밖에서 식사하고 와도 여행지의 밤은 출출한 법.
사장은 들어가지 않고 물 끓여 주고 얘기도 나누고... 장삿속인가 하다가 넌지시 물어봤다. 손님들이 다 알아서 할 텐데 물 끓여줄 필요 있느냐고. 그의 답, 낯선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시간이 그리도 즐겁다나. 그래서 또 물었다. 그리 하면 힘들지 않으냐고. 힘들지만 재미있다는 답.
그때 눈에 들어온 또 하나. 언제나 웃는 얼굴. 당연하잖은가, 서비스업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 웃는 얼굴로 친절히 맞이함 아닌가. 그러다 저녁때 택배기사랑 마주 서 얘기 나누는 걸 보았다. 역시 웃는 얼굴. 그러면 진짜다, 손님 아닌 다른 사람에게까지 친절하다면.
다음날 아침 인사하면서 어젯밤에 잘 잤느냐니까 하도 전화가 많이 와 잠을 설쳤다나. 새벽 두 시까지 빈방 찾는 고객 전화가 왔단다. 밤에 잠 못 잘 정도로 오는 전화는 아예 전화기를 꺼놓으면 되지 않느냐 하니까, 호텔 손님 가운데 혹 무슨 일로 찾는 이가 있을까 하여 꺼놓을 수 없단다.
호텔 이름을 적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다를 안은 통영시에 있지만 소위 바다뷰도 없고 룸 시설도 좀 오래되어 실망할 사람도 있을까 하여. 하지만 한 가지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사는 사장이 경영하는 곳이란 점만은 밝힌다. 손님과 얘기 나누길 무척 좋아하며 손님에게 퍼주길 좋아하는 이상한(?) 사장이 있는.
<둘>
아주 오래전 이집트 여행을 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사립학교 재단에서 동료교사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여행하며 얻는 큰 기쁨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거나, 오래된 유적을 대하거나,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서 찾으리라.
허나 나는 새로운 사람 만남에 더 기쁨을 찾는다. 이집트, 터키, 그리스 3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저 눈짓만 주고받거나 한두 마디 인사로만 지나친 외국인도 있었고, 배낭여행이나 가족여행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만났다.
수많은 만남 중에서 지금까지 오직 기억나는 이는 단 한 사람뿐. 그는 이집트 현지 한국인 가이드. 지금도 그의 이름과 직업만 알 뿐 결혼을 했는지, 자식은 몇인지, 또 왜 머나먼 이국땅에 와 가이드 생활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과거에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상만은 너무도 뚜렷이 남아 있다.
그의 외모는 평범했다. 보는 이에 따라 날카롭게 생겼다는 일행도 있었지만.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듬직한 체구도 아니었다. 미남이라 할 얼굴도 아니었고, 목청도 대체로 낮아 외모로만 평점을 매긴다면 가이드로선 그리 좋은 점수 받을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잊지 못함은 이집트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제법 많이 공부해 갔음에도 그의 지식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나아가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이집트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었다.
뜨거운 태양과 열사(熱沙)의 땅에서 유적지 찾아가는 일은 관광이 아니라 거의 극기 훈련 수준이었지만 그 힘든 여정을 통해 수확이 많았음은 순전히 그의 덕이었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하여 중간에 포기할 뻔했지만 끝까지 할 수 있음도 다 그의 덕이었다. (내가 유독 허약해 보였는지 남다른 관심을 보여줌)
연일 섭씨 45도(실제 체감온도는 50도가 넘음)가 넘는 상황 속에서 지쳐갈 때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그의 유머는 마치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았다. 예를 들면 그늘에 잠시 쉬다 유적 보려 가려면 뜨거운 볕살을 만난다는 두려움(?)에 선뜻 발걸음 옮기기 난감해할 때,
“자 이집트에선 그늘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곰팡이가 핍니다” 하며 이끌었다. 그 말에 다들 엉덩이를 들었고.
이집트의 땅에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태양빛이 저주의 빛이 아니라 창조의 빛임을 그가 가르쳐주었다. 또한 고대 왕조시대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운 기념비 오벨리스크가 서양 각국에 약탈당하여 그 나라에 전시돼 있음을 이야기할 때 마치 자신의 나라(대한민국) 유물을 다른 나라에 강탈당한 듯 흥분해했다.
닷새 동안의 여정에서 들른 기념품 가게는 고작 한 군데. 그곳도 이집트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집트의 '향'을 알아야 한다면서. 워낙 많은 기념품 가게만 찾는 다른 가이드에 싫증난 터라 신기하여(?) 물어보았다. ‘왜 당신은 기념품 가게로 자주 가지 않느냐고?’
대답은 아주 단순했다. “이집트에 대해 얘기할 시간만 해도 부족합니다. 단 1분이라도 더 이집트에 대해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나로 하여금 이집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줬고, 다시 이집트 여행을 할 꿈을 지니게끔 만든 이가 바로 이집트 현지 한국인 가이드 장ㅇㅇ.
장ㅇㅇ, 그는 바로 이집트 자신이다. 그 열정과 그 사랑으로 봐서. 자기 일에 열중하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잘 보여준 사나이.
<셋>
딸애가 내가 소속한 재단 내 여고에 진학했다. 덕분에 거기 근무하는 선생님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한 선생님에 관한 얘기다.
나랑 앞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갑내기 국어교사라 친하게 지내던 사이. 그가 딸애의 국어교사였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들어오더니 '은유법'을 설명하려다 갑자기 노래 한 곡 부르겠다고 하더니 진짜 노래를 불렀다나.
평소 중저음이라 분위기 자아내는 목소린데,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로 시작하는 김동명 시인의 시를 작곡한 가곡 [내 마음은]을 불렀으니 얼마나 여고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을까. 그 뒤 딸은 은유법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나랑 같은 학교 근무할 때 일이다.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의고사 뒤 매를 들었다. (30년 전쯤 되는 때라 지금과 다름) 3학년 담임 같이 할 때 그가 몽둥이 드는 걸 한 번도 못 보았다. 다만 한 차례 매를 들었다. 한 애가 찾아와 성적이 너무 떨어져 정신 차리게끔 때려 달라고 하여.
무척 궁금했다. 어떻게 하는가 하여. 아주 연약한(?) 막대기로 두어 번 톡 톡 대더니 끝, 그리고 덧붙이는 말, "매를 맞아 정신 차리기보다 머리에 찬물 끼얹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어느 날 물어보았다. 그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의도된 것인지 궁금하여.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는 수업시간이 즐겁고, 아이들과 얘기 나누는 게 참 좋습니다."
<넷>
우리는 어떤 업무를 누군가에게 맡길 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우선 친다. 그렇지 않은가, 책임감 있게 일 처리한다면 최고!.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가장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책임감 강한 사람은 드물지 않다. 허나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하라.’
이 말은 아주 유명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흔히 듣는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주는 교훈으로.
나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공부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하라. 그러면 성적이 쑥쑥 오를 거다." 그럼 나는?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던가.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 얼굴 보는 순간 짜증이 사그라들고 기쁨으로 차올랐던가.
내가 그러지 못했으면서 그렇게 하라 가르쳤으니,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風)' 해라"는 꼴이 아니었나.
*. 통영 앞바다 사진 둘과, 남고 여고 교실 모습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