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 '몬도가네'식 먹방
* '몬도가네'식 먹방 *
<하나 : 꼬시래기회>
어릴 때 부산 남구 용당동 ‘동명목재’ 가까이 살 때의 일이다.
지금은 동명목재를 일흔쯤 된 사람들만 기억할지 몰라도 예전엔 우리나라 목재와 합판 생산에 있어 으뜸가는 회사였다. 이 회사에선 외국서 수입한 원목을 바다 위에 띄워놓았다. 목재를 오래 보존하기 위한 처리 과정의 일환으로.
목재가 적어도 3년 이상 바닷물을 먹어야 잘 썩지 않는다 하여 바다에 일부러 담가두는 시간을 갖는다. 동네 꼬마들은 그런 사실을 알 필요 없었고, 그저 바다 위에 띄워놓은 큰 나무가 놀이터로 좋았다. 그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 수 있었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빠지면 올라올 수 없어 목숨마저 위태롭지만 다행히 그 사이를 촘촘히 묶어두었기에 빠질 염려 없고 워낙 굵어 아이들 놀기에도 좋았다. 당시 여섯 살 무렵이었으리라. 동네 형들을 따라 거기까지 갔다. 원래 사는 곳은 용호동(붕깨)이었지만 거기서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그때 어른들도 거기를 찾아왔다. 고기 낚으려. 다른 도구는 필요 없고 오직 바늘과 밥풀만 있으면 그만. 낚싯대도 필요 없이 낚싯줄에 밥풀 하나 낀 바늘을 아래로 늘어뜨리면 꼬시래기('표준어 : 문절망둑', 전라도 ‘망둥이’)가 문다. 양동이 반쯤 채우긴 문제 아니다.
어른들은 그냥 집에 갖고 가지 않고 거기서 초장 만들어 꼬시래기를 찍어 먹었다. 이런 어른이 점잖다면 좀 별난 어른이 먹는 방식은 다르다. 바로 꼬리를 잡고 머리부터 씹어먹는다. 허면 녀석이 몸부림치며 꼬리 흔드는데 그럼 얼굴에 초장이 묻어 온통 피칠갑이 된다.
꼬마들은 그 모습이 재미나면서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낚싯바늘이 없고 있다고 해도 초장도 없었으니. 아주 운 좋게 어른들이 바늘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고 가면 우리 것이 된다. 게다가 먹다 남은 초장을 발견하면 금상첨화.
꼬맹이들은 어른들처럼 그렇게 먹었다. 나도 먹었다. 솔직히 무슨 맛인지 몰랐다. 형들은 맛있다고 하는데 내겐 비릿한 맛뿐. 그래도 ‘가시나’란 소릴 듣지 않으려면 먹어야 했다. 처음엔 비린 맛에 구역질 날 것 같았으나 몇 번 먹다 보니 제법 입에 맞았다.
<둘 : 산낙지회>
가끔 텔레비전을 보다 먹거리 프로에서 희한한 장면을 본다. 한 젊은 아가씨가 엄청나게 많이 먹는 걸 보여주는 방송. 나는 보지 않는다. 소위 ‘먹방’이라는 이름의 프로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방송국마다 몇 개씩 방영한다. 남 다 몰리는 종목을 싫어하는지라 그냥 채널을 돌린다.
그러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 젊은이들 가운데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산낙지 챌린지’가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처음엔 몬도가네식 음식으로 소개되었단다. 아 참, ‘몬도가네’란 용어도 좀 나이 든 이들이라야 알 터.
70년대 중반, 그러니까 이십 대 초반. 영화관에서 처음 만났다, 「몬도가네」(원래는 이탈리아어라 ‘몬도 카네’라 해야 맞다고 함)란 제목으로. 미개사회나 문명사회를 가리지 않고 세계 각국의 기괴하고 엽기적인 풍습 찾아내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영화다.
외국 젊은이들이 바닷가 횟집에 가 우리나라 사람이 산낙지 먹는 모습이 신기해(?) 유튜브에 올렸는가 보다. 처음엔 미개하다고 비웃다가 한두 명 직접 먹어보고 ‘맛이 괜찮다(?)’는 소문이 나자 하나둘 찾아오는, 그래서 사람마다 도전하는 먹방이 되었다나.
끝까지 징그럽다고 하며 치를 떠는 외국인도 있고, 처음부터 잘 먹는 이도 있고, 망설이다가 나중에 잘 먹는 이도 보았다. 이렇게 산낙지는 우리나라 대표(?)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헌데 나는 이것 말고 진짜 산낙지를 먹는 경험을 했다.
오래전 낚시 나가는 배를 전세 내 바다에 이르러 이런저런 고기를 잡아 올리는데 하필 제법 통통한 낙지 한 마리가 걸려 올라오는 게 아닌가. 낙지는 뻘밭에 나는 줄만 알았는데.. 선장의 말이 아주 드물게 한두 마리 올라온다나. 그것보다 아주 생경한 장면을 보았다.
선장은 우리에게 묘기(?) 하나를 보여주었다. 머리통을 잡고 다리 하나를 이빨로 끊은 뒤 우적우적 씹어먹는. 하나를 다 먹은 뒤 다리 하나를 더 떼(이번엔 칼로) 손에 들고 낚시하는 이들에게 누구든 먼저 먹어보라고 했다.
횟집에 나오는 산낙지는 먹어도 선장이 이빨로 끊어 먹는 모습에 좀 질렸는지 다들 시선을 회피하던 차 선장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덥석 내 입에 넣어주는 게 아닌가. 나는 모르는 척 그냥 씹었고. 지금도 선장이 열 명쯤 되는 낚시꾼 가운데 하필 나를 지목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뒤 텔레비전에서 갯벌에 잡은 낙지를 바닷물에 슬쩍 헹군 뒤 바로 입에 넣어 씹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보았다. 알고 보니 바닷가 어부들은 예전부터 그리 먹었다나. 그러니까 남들 보기에 엽기적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그들에겐 자연스런 일이었다.
<셋> 빙어회
오늘 글감은 사실 화요일(2/18) 김환식 시인의 시 [초장이 싱겁다]를 배달할 때 댓글 읽으면서 떠올렸다. 그 시에서 살아있는 빙어를 그대로 씹어먹는 내용이 나와 내 경험을 언급했는데 여러 갈래의 댓글이 붙었다.
빙어는 수량이 많이 나오는 개울 웬만한 곳에 다 산다. 물론 겨울에 유난히 추운 지역이면 더 많이 살겠지만. 그리고 빙어는 크기와 모양과 빛깔이 다 같지 않다. 또한 아주 깨끗한 1급수에만 사는 줄 아는데 급수에 관계없이 분포돼 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빙어를 볼 때마다 내가 젊은 시절 먹은 빙어랑 다름을 느낀다. 일단 저렇게 빛깔이 진하지 않았고, 그러니까 시에서처럼 투명했고, 특히 크기가 아주 작았다. 튀겨먹기조차 힘들 만큼 작은.
교사 2년 차 겨울방학 때다. 동료와 지리산 산행을 위해 법계사 오르기 전 산청군 중산리에 민박하던 날 저녁. 주인집 아저씨가 저녁상 차림에 내놓은 반찬(?) 하나. 바로 빙어였다. 옥정댐에서처럼 사발에 아주 작은 빙어와 초장.
빙어를 그날 처음 먹었다, 부산 ㅎ여중 동료교사 세 명과 함께. 일단 주인아저씨가 시범을 보여줬다. 빙어 담긴 사발에 물을 따라내고 거기에 초장을 붓더니 쓱쓱 비빈 뒤 바로 입에 들이붓는. 다시 말해 씹는 게 아니라 들이마시는.
그 장면에 다들 놀랐는데 술 한 잔 들어가서였을까. 한 사람 또 한 사람 먹다 보니 이내 한 그릇이 깨끗이 비워지고. 마침내 우리는 돈을 더 준다고 사정하여 몇 그릇 더 마셨고. 그렇게 먹었던 빙어는 이제 뿔뿔이 흩어져 사는 그분들 만나면 추억 잣는 화제가 될 텐데.
<넷> 몬도가네식 음식
영화 [몬도가네]. 아주 엽기적인 장면에 보다가 구역질이 나 토했다는 사람이 꽤 나왔다는 전설의 영화. 헌데 그 영화는 단순히 엽기적인 내용으로 호기심만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아니었다. 특히 미개인과 문명인을 차별하려는 의도가 아닌.
뱀이나 개고기를 먹는 동양인이 나와 그들의 미개성을 보여주는가 했더니, 이내 벌레 음식을 맛있게 먹는 미국인에 이어, 푸아그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어느 쪽이 야만이라 할 수 없다는 암시에 이어,
물소 목을 도검(刀劍)으로 단숨에 베어버리는 네팔인을 보여주다가 스페인 투우에서 창이 가득 꽂혀 죽어가는 소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원시 야만’의 모습과 동시에 ‘문명 속에 도사린 야만의 얼굴’도 보여주는 영화였다. (아카데미상 후보까지 오르기도 함)
그 뒤 ‘몬도가네식’ ‘몬도가네적’이란 관용어가 생겼는데, 평소 잘 볼 수 없는 엽기적인 모습에 쓰는 말이 되었다.
나는 지금 빙어 먹으라면 튀김 말고 회는 안 먹는다. 엽기적이라서? 아니. 현재 우리나라 빙어는 다 오염된 물에 살고 있기에. 대장균 등에 오염된 빙어를 날것으로 먹으면 당연히 질병에 노출된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비교적 오염도가 떨어진 뻘밭에서 잡은 낙지라며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 다만 비싸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 꼬시래기는? 추억으로 가는 열차 타러 먹고 싶지만 현재 그곳(동명목재 있던 주변 바다)은 분명히 오염됐을 것이므로 먹지 않을 것이다.
아는 이들과 이런 얘기 나누다 보면 날더러 이상하고 한다. 내겐 한 사람이 몇 인 분이나 먹는 장면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한데. 살아있는 생선을 씹어먹는다고 해서 몬도가네가 되어야 하는지. 그런 평을 듣더라도 지금 산낙지 사주신다는 분 계시면 당장 뛰어나가리라.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