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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75)

제275편 : 장석주 시인의 '일요일이 지나간다'

@. 오늘은 장석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일요일이 지나간다
장석주

당신이 누구든,
외롭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당신과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가을 곰들이 살을 찌우며 겨울잠을 준비한다는 것,

칠흑 같은 천 개의 밤을 혼자 견딘다 해도
당신, 울지 마!
천 개의 밤에 기댈 곳이 오직 차가운 벽일지라도
당신, 울지 마!

또 다른 일요일이 올 테니,
웃어!
춤추고 노래해!
- [일요일과 나쁜 날씨](2015년)

*. 이 시가 한 해 먼저 실린 잡지[미네르바]에는 ‘당신 울지 마’로 돼 있고, 내용도 조금 다릅니다.

#. 장석주 시인(1955년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75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스스로 ‘문장노동자’라 일컬으며, ‘나는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남기면서 1년에 1만 쪽을 읽고 2,000권의 책을 사 모은다고 함.
어제 배달한 장석남 시인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분 이름 비슷한 데다 꽤 알려진 시인들이기 때문.




<함께 나누기>

직장인에게 '가장 회사 가기 싫은 요일은?' 하면 99%가 '월요일!' 하고 답할 테고, 거꾸로 '회사 가기 가장 신나는 요일은?' 하면 '금요일' 하고 답할 겁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면 갑자기 몸이 찌뿌둥해지며 아픈 데가 생긴 듯하고 괜히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월요병이란 용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듯이.

시로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 단 하나 / 당신과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화자는 외칩니다. 당신이 누구든, 외롭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그럼 무엇이?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준 한 마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입니다. 이 시기만 지나면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아무리 비천하고, 괴로워도 사는 게 죽는 것보다야 낫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사느니 죽는 게 더 낫다'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죽기 싫은데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 '다시 네가 살아난다면 아주 비천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승을 택하겠니?'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가을 곰들이 살을 찌우며 겨울잠을 준비한다는 것"

가을이 깊어지면 곰들은 겨울잠에 대비해 먹잇감을 찾아 움직입니다. 당연하지요. 내년 봄을 맞이하려면, 즉 내년 봄까지 살아남으려면. 만약 그게 귀찮다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싫든 좋든 가을엔 최대한 많이 먹어줘야 합니다. 다음의 봄을 위해.

"칠흑 같은 천 개의 밤을 혼자 견딘다 해도 / 당신, 울지 마!
천 개의 밤에 기댈 곳이 오직 차가운 벽일지라도 / 당신, 울지 마!"

이 시행에서 '칠흑 같은 밤'과 '차가운 벽'은 서로 대구를 이룹니다. 둘 다 모진 시련과 역경을 비유함은 다 아실 터.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울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겐 다음이 있으니까요. 밑바닥에 이른 절망 속에서도 일깨우는 소리 '이제 맨 밑바닥에 이르렀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그 말에 힘을 얻듯이.

"또 다른 일요일이 올 테니, / 웃어! / 춤추고 노래해!"

서두에 직장인이 금요일을 가장 기다리는 까닭은 곧 일요일이 오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비록 지금은 힘들어도 '웃자!, 춤추자!, 노래하자!'며 용기를 내라고 북돋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일요일이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가까운 이를 생각하면, 짝을 먼저 떠나 보낸 이를 생각하면, 현재 내가 살아 있음이 중요하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광막한 우주 공간에서 지구라는 작은 별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흐뭇한지.

<뱀의 발(蛇足)>

장석주 시인은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습니다. 여러 방송에서 패널로 나오고 EBS에서는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나왔으니까요. 또 2016년에는 25살이나 어린 제자이면서 시인인 '박연준'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 대신 책(산문집)을 펴냄으로 혼인신고해 화제가 됐습니다.


제가 부러운 건 25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글방이 있는 안성에 3만 권, 파주 본가에 7천 권의 책이 있다는 점입니다. 또 자기 이름으로 펴낸 책도 100권 가까이 되고, 1년에 5,000매 이상 글을 해마다 써왔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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