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편 : 정현종 시인의 '덤벙덤벙 웃는다'
@. 오늘은 정현종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덤벙덤벙 웃는다
정현종
파도는 가슴에서 일어나
바다로 간다
바다는 허파의 바람기를 다해
덤벙덤벙 웃는다
여기선 몸과 마음이 멀지 않다
서로 의논이 잘 된다
흙의 절정인 물
물의 절정인 공기
물불 가리지 않는 육체의 가락에
자연의 귀도 법도 어우러진다
고통의 뺄셈
즐거움의 덧셈
슬픔 없는 낙천이 없어
덤벙덤벙 웃는다
- [나는 별 아저씨](2000년)
#. 정현종 시인(1939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봉직하다가 정년퇴직했으며, 앞서 배달한(1월 14일) 천양희 시인과는 부부였다가 헤어짐.
<함께 나누기>
오정희 작가의 [소음공해]란 소설을 보면 아래와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아파트에 사는 '나'는 위층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탱크 지나가는 듯한 층간소음에 시달리다 견디다 못해 따지러 위층에 올라가 벨을 누릅니다. '나'는 교양 있는 여자라 점잖게 타이르려고 위층 사람이 나오길 기다립니다. 실내화를 봉지에 싸서. 그러니까 이 소음방지 실내화 신고 조용히 하란 뜻에서.
안쪽에서 문 열리고 인사말과 함께 포장한 슬리퍼를 내밀려던 나는 첫 말 뗄 겨를도 없이 우두망찰 했다. 좁은 현관을 꽉 채우며 휠체어에 앉은 젊은 여자가 나를 올려다보았기에.
아직도 이 소설을 기억함은 수업에 나온 소설이기도 하지만 '우두망찰' 때문입니다. 만약 끝부분에 이 낱말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소설은 제 기억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오늘 시도 마찬가집니다. 시 전체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덤벙덤벙", 이 시어가 없었다면 평범한 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럼 ‘덤벙덤벙’의 뜻은? 마음이 들떠 아무 일에나 함부로 뛰어들어 낭패 볼 때 쓰는 말입니다. 다만 이 시에 ‘덤벙덤벙 웃는다’ 하면 어떤 일에 함부로 나서다 실수를 해도 그저 웃어넘긴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참고로 ‘엄벙덤벙’이란 말도 한 번 알아두십시오. ‘마음이 들떠서 함부로 행동하는 모양’입니다.)
어느 누군가에게 울어보라고 할 때와 웃어보라고 할 때, 어느 쪽이 더 행동으로 옮기기 쉬울까요? 평범한 사람들은 둘 다 어렵다고 하는데, 연기를 하는 전문인들은 웃는 게 더 어렵다고 합니다.
가만 생각하면 웃는 게 더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음은, 우는 연기는 아주 슬펐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물만 빼면 성공이나, 웃는 연기는 웬만큼 잘해도 가식적으로 보여서랍니다.
“파도는 가슴에서 일어나 / 바다로 간다”
웃음의 씨앗이 없이 바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연기자 아니면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라야 가능하겠지요. 물론 그 웃음은 가식일 테고. 밖으로 웃음을 표현하려면 먼저 가슴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즉 파도(웃음의 씨앗)가 가슴에서 자라 바다(입, 눈, 귀)에서 만들어 집니다.
“바다는 허파의 바람기를 다해 / 덤벙덤벙 웃는다”
바다에 이르렀다고 하여 바로 웃음이 터져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허파의 바람. 흔히 잘 웃는 사람더러, ‘저 사람, 허파에 바람 들었나!’ 할 때처럼. 허파에 바람이 들어야 소리 내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그저 눈가나 입가에 잔잔히 맺히는 눈웃음이나 미소는 덤벙덤벙한 웃음이 아닙니다.
“여기선 몸과 마음이 멀지 않다 / 서로 의논이 잘 된다”
큰 소리로 터놓고 마음껏 웃으려면 몸과 마음이 서로 확 통해야 합니다. 한쪽만 웃으면 참된 웃음이 아닙니다. 요즘 들어 덤벙덤벙 웃어본 적이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짜증 낸 적이 더 많았으니까요. 웃어도 고작 눈가나 입가에 살짝 맺힐 뿐, 귀에 걸린 적은 없습니다.
“흙의 절정인 물 / 물의 절정인 공기”
어떤 뜻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군요. 억지로 해석하면 흙에 가장 필요한 게 물이요, 공기 중의 아주 작은 알갱이가 비가 되어 내린다? 애매할 땐 그냥 대충 넘어갑니다. 시어 하나하나 다 꼼꼼히 풀기보단 가끔 시인도 순간적으로 떠오른 시상을 맛깔난 시어로 형상화했을 거라 여기면서.
“고통의 뺄셈 / 즐거움의 덧셈”
참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표현입니다. 이 시인의 시에는 잠언(箴言 : 교훈이 되는 짧은 말) 같은 표현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고통은 뺄셈으로 계산하고 즐거움은 덧셈으로 계산할 수만 있다면 늘 웃으며 지낼 수 있겠지요. '고통은 줄이고, 즐거움을 늘여라'.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물불 가리지 않는 육체의 가락에 / 자연의 귀도 법도 어우러진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은 절로 흥이 일어나 한바탕 춤을 추고 싶습니다. 그러면 자연도 함께 어울리겠지요. 자연스럽게 절로 몸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웃음, 그것이 꼭 필요한 시대입니다.
“슬픔 없는 낙천이 없어 / 덤벙덤벙 웃는다”
'저 사람 참 낙천적이다'라는 말을 듣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슬픔을 이겨내야만 했을까요. 덤벙덤벙 웃는 사람은 나름 도를 얻은 사람과 마찬가집니다. 어려운 삶을 이겨내 얻은 것이기에.
결국 시인은 이 시에서, "가식 없이 웃어라" "계산 없이 웃어라" "근심 없이 웃어라" "허파에 바람 든 듯이 웃어라" "늘 웃을 일을 만들어라" 이 점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