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은 소소한 이야기(제80편)
* 아, 통도환타지아! *
방학이 되면 서울에서 손녀 둘이 내려온다. 어린 손자도 귀엽지만 그보다 다섯, 여덟 살 많은 손녀들도 귀엽기는 마찬가지다. 봐도 봐도 싫증 나지 않는 귀여움의 화수분이랄까. 그러니 와 있는 동안 기분이 좋다. 아무리 페이스톡을 해도 직접 보는 것에 비할 수 없으니까.
손녀들이 내려오면 나는 운전기사가 된다. 딸이 미리 갈 곳을 정해오는데 거기로 데려다주면 되니까 힘들지도 않다. 그런데 한 번씩 펑크 날 때가 있다. 어디 갈 곳을 정해놓았는데 특정 요일 놀거나 무슨 공사한다고 하여 문을 닫아놓는 경우.
이번에도 그랬다. 그저께 ‘ㅇㅇ 과학관’ 가기로 했는데 도착하니 공사로 인해 '사흘간 휴관' 공지문이 문 앞에 달랑달랑. 이미 뉴스로 지역사회엔 오래전에 알렸다 하나 이 지역 사람 아니면 모를 일. 해서 대략 난감.
그때 내 입에서 무심코 나온 말,
“그럼 통도환타지아 가자.”
마침 휴관 중인 ‘ㅇㅇ과학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퍼뜩 생각난 곳이다. 손녀들도 좋아하리라 확신하면서. 헌데 말이 끝나자마자 딸이,
“참 아빠도, 통도환타지아 문 닫은 지 언젠데?”
“통도환타지아가 문 닫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에서 가장 어린이들이 즐기기 좋은 놀이공원 아닌가.
말이 안 되는 소리가 말이 될 때가 있다. 알아보니 통도환타지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관람객이 현저히 줄더니 그 뒤 사람들 소통이 원활하게 되었는데도 증가하지 않아 결국 문 닫게 되었다는 소식. 다시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등 확장하여 개장하려는 노력이 있다 하는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냥 놀이공원일지 몰라도 내게 통도환타지아는 남다른 추억이 얽힌 곳이다. 교사로 생활하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곳이기에.
20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에선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여러 변화 가운데 하나가 ‘학급별 소풍 가기’. 여태까지 학년에서 소풍 장소를 정하면 같은 학년 학생들 모두 한 장소에 갔는데 그때 학급별 자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같은 학년이 함께 가길 좋아하지 유별나게 우리 반만 어디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한 학급만 움직이면 사고 위험이 늘고 통솔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만 자율이지 자발적 타율로 끝나곤 했다.
그날도 학년실에서 담임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자는 소수의 말은 어차피 걔들에게 물어봐야 뻔한 대답(놀이동산 류)이 나올 테니 선생님들끼리 의논해 결정한 뒤 그대로 진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종례 시간에 학년 회의에서 결정한 장소(가까우면서도 통제가 쉬운 곳)를 아이들에게 전했다. ‘우우’ 하는 소리가 일었지만 눈 한 번 부릅뜸으로써 이내 가라앉았다. 그런 뒤 종례를 끝내고 나가려 할 즈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소풍 장소를 왜 선생님들께서는 우리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정하시는 겁니까?”
“무슨 말이니?”
“저 내일 소풍 장소에 대하여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뭔데?”
“왜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장소만 정하시고, 정작 가고 싶은 놀이동산은 빼버리시는 겁니까?”
건방짐을 넘어 당돌했다. 게다가 짜증까지 났다. ‘감히 어디서….’ 허나 이럴 경우 목청을 돋우면 무식한 교사가 되니까. 그래서 목소리를 가다듬어 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말이야….”
나로서는 최대한 설득하느라 말을 고르고 골랐다.
“놀이동산은 말이야 원래 학습의 연장이라는 소풍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비용 부담도 많고, 또 너희들이 평소에 부모님과 자주 가 볼 수 있는 곳이잖아.”
이 정도면 녀석도 군소리하지 않겠지 하고 자신하면서. 그러나,
“학교와 집에서 늘 듣는 말이 ‘공부’ ‘공부’였습니다. 명절에 친척을 만나도 가장 먼저 묻는 말이 ‘공부 잘하냐?’였고, 조금 쉬려고 하면 ‘공부 안 하냐!’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 공부에서 풀려나고 싶습니다. 또 중학생이 된 뒤 놀이동산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친구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요즘은 토요일, 일요일도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툭하면 학원에서 특강을 한다 뭐 한다 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선생님들께서 내주신 엄청난 과제로 꼼짝 못하고, 또 우리가 시간 나면 부모님께서 나지 않고…. 공부에 지친 우리들이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가 있다면 그 정도 비용이 또한 부담된다고 여기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도 조리 있고, 진심 어린 말에 설득하려다 되려 설득당하고 말았다. 해서 아이들에게 놀이동산에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그걸로 빠져나오려 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다 들었다. 무슨 조사에서 그렇게 빨리 일치를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설득했지만 남은 일은 내가 윗사람과 동료들을 설득할 일. 우리 학급만 가게 되었으니. 반발이 만만찮았다. 차량 이동과 비용은 학교운영위를 통과해야 할 사안이었고, 특히 자기 학급 학생들에게 각 반 담임이 받을 반발이 신경쓰였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평소에 ‘참교육’ 운운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느냐는 말. 뿐만 아니라 비용과 교통사고의 위험과 학부모의 항의를 어떻게 할 것이냐 등도 따랐다. 그러나 내게는 이미 우리 반 아이가 가르쳐준 비장의 설득화법이 있지 않은가. 들은 그대로 선생님들께 전해주었다.
놀이동산에 도착한 그날, 손님은 우리 반 아이들과 몇몇 젊은 남녀뿐. 그날 아이들은 실컷 놀았고 원 없이 놀이기구를 탔다. 휴일 같은 날 한 번 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탈까 말까 하는 걸 세 번씩 네 번씩 탔다.
그리고 각 종목마다 다 타보았다. 마침내 원래 마치려던 시간보다 한 시간 더 연장해야 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났다. 한 번도 교실에서 볼 수 없던 때 묻지 않은 행복한 웃음.
지금도 그때 아이들을 가끔 만나면 꼭 소풍 얘기를 들려준다. 중학교 때 가장 기억 남는 추억이 그때 그날의 소풍이었다고. 얼마나 내가, 아니 우리 교사가 추억거리를 주지 않았으면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할까.
아 통도환타지아,
정말 ‘환타지아’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 그때 아이들과의 추억도 잊혀지지 않을 테니까.
*. 첫째 사진을 제외하곤 통도환타지아에 있는 놀이기구가 아닙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