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20.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73)

제73화 : 내 편이 남의 편이 되면

    * 내 편이 남의 편이 되면 *



  <하나 : 동지가 적이 되면 더 무섭다 >


  나는 마흔다섯 되던 해 전향(?)했다, 보수에서 ‘진보’로.
  그리고 한 달 뒤 손아랫동서를 만났다. 동서는 동갑임에도 처제의 남편인지라 나는 '반말' 하고 그는 ‘온말’ 했다. 동서는 태생이 진보적 성향으로 어디서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연히 전향 전(前)의 나완 말다툼을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정치인을 두고 동서와 ‘3명의 손윗처남 + 손윗동서’ 사이에 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허니 '1 : 4'의 절대적인 불리한 대결. 만약 전처럼 나도 그랬으면 '1 : 5'가 되었으련만 그날부터 '2 : 4'가 되었다. 넷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사람들. 나도 이전엔 그랬다.

  그날 동서의 눈이 똥그래졌다. 다른 날 같으면 가장 먼저 자기에게 반발할 양반이 자기편을 들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의아해하며 나를 보고 아내를 보고. 다행히 아내가 처제에게 얘기한 덕에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하도 실망해 가능한 우리나라 정치판은 보지 않으려 하는데 하도 희한한 뉴스가 올라와 있어 들추게 되었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 유례없는 희극이 펼쳐지고 있다. 동지 사이가 적이 되면 더 무섭단 말의 현실판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적을 앞에 뒀을 때보다 강도가 훨씬 세다. 왜냐면 동지일 때 나눴던 할 말 못할 말, 특히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말이 경쟁자가 되니까 정제되지 않고 주루룩 쏟아져 나오니까.
  특히 모 후보의 거침없는 폭로(?)에 분당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라 한다. 왜냐면 검찰 요직과 법무부장관까지 거치면서 얻은 정보를 그대로 까발리니까. 봉인돼 있던 판도라 상자가 열리며 꼭꼭 감춰두었던, 감춰두고 싶었던 비밀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그래서 한 국민의힘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어떤 누구와도 절대로 비밀을 공유해선 안 된다. 나중에 경쟁자가 되면 반드시 터져 나올 테니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둘 : 비참한 나의 경우>



  앞의 정치판과 다르지만 비밀을 공유해주리라 여겼던 사람에게 비참하게 깨져버린 경험이 내게도 있다.
  첫 직장인 시골학교에 근무할 때다. 그때 내가 소속된 연구부엔 40대 중반의 주임선생님을 빼곤 대학 졸업한 지 3년이 채 안 된 교사 셋이 배치돼 있었다. 대학 2년 선배인 처녀선생님과 나와 함께 들어온 나보다 3년 선배인 총각선생님. 그는 부산에서 근무하다 엉뚱하게(?) 시골로 전근했다.
  처녀선생님은 참 이뻤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한 데다 예의도 발랐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돋보였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일등 신붓감. 나는 좋아했지만 이성으로서가 아닌 선배교사로서 존경했을 뿐. 당시로선 연상연하의 커플은 꿈도 꾼 적 없기에 진작에 포기했다.

  이성으로선 아니나 선후배로선 그렇게 가까울 수 없었다. 부산에서 시외버스로 출퇴근하던 사이여서 퇴근하면 함께 내려 식사할 때가 종종. 그 자리에 같은 과 총각선생님이 꼭 함께 했다. 헌데 이상한 점은 그 총각과 처녀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


(사진 속 학교는 글 내용과 관련 없음)



  아니 안 좋았던 정도가 아니라 그를 일방적으로 처녀는 몰아붙였고 총각은 늘 당하던 처지였다. 별것 아닌 일로 몰아붙이는 처녀를 보면서 평소의 그녀 같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총각이 불쌍해서 둘 사이를 풀어주려고 부산에 내려선 식사를 함께 했던 셈이다.
  문제는 식사 자리에 와서도 처녀는 총각을 공격했고 나는 또 중재자가 되어야 했다.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 해가 거의 끝날 무렵 처녀선생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신랑감의 이름도 나이도 몰랐으나 직업이 교사란 사실만은 알려졌다.

  연구주임이 슬며시 나를 불러 물었다. 평소 나와 사이가 좋았으니 혹 당사자가 아니냐면서. 물론 펄쩍 뛰었지만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학년말 청첩장이 돌았고 거기 적힌 이름을 보았다. 세상에! 바로 그 총각선생님 아닌가. 언제나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한.
  두 사람과 함께 부산에 내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제사 총각이 실토했다. 사실 둘은 캠퍼스커플이었다나. 하지만 당시엔 그걸 드러내기 힘든 시기여서 숨긴 채 사귀었다는데...


(사진 속 학교는 글 내용과 관련 없음)



  총각은 부산 모 학교에 발령받았고 처녀는 부산에 취업 못해 시골로 왔고. 한 해를 보낸 뒤 처녀랑 같은 학교에 근무하려 총각이 옮겼고. 그 학교에서도 둘이 사귀고 있음이 들통날까 봐 조심하던 차 방패막이로 어리숙한(?) 내가 걸려들었고. 즉 둘 사이가 나쁜 듯이 보이도록.

  둘이 결혼한다고 해서 내가 아쉬울 건 없었다. 비록 미모, 지성, 덕성 다 갖추었지만 연상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니. 다만 그 총각과 내가 둘이 술 마실 때 할 이야기 못할 얘기 다 했다는 점이 걸렸다. 특히 그 처녀에 대해 한 얘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총각은 단 한 번도 처녀의 결점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하체가 상체에 비해 짧아보인다는 게 가벼운 수준이라면, 겉으로는 얌전하지만 속으론 부뚜막에 올라갔는지 모른다는 등 할 말 못할 말 다했다.
  사실 그녀의 흠집과 하나도 맞진 않았지만 그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억지로 지어낸 얘기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진심으로 들렸을 터. 결과적으로 해선 안 될 험담을 남편 될 사람에게 고자질(?)한 셈 아닌가. 둘이 짝이 되지 않는다면 옮겨갈 리 없어 걱정할 필요 하등 없었건만.

  나는 둘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괘씸함보다 내가 본 흉이 부끄러워서. 그 뒤 학교 옮기고 난 뒤 연락도 끊어졌다.




  <셋 : 이혼은 절대 안 된다>



  다른 부부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부부는 참 많이 싸운다. 어떨 때는 심각할 정도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40년 넘게 부부생활을 이어온다. 가끔 이리 생각한다. 만약 ‘욱’ 하는 성격에 참지 못하고 진작에 갈라섰다면?
  만에 하나 그리되었다면 난감한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바로 ‘나’다. 왜냐면 둘이 갈라서는 순간 평생 갖고 가야 할 판도라 상자도 열렸을 테니. 사실 열려도 아내는 손해볼 게 없다. 평생 모범생처럼 살아 내가 그걸 갖고 협박할 건덕지가 거의 없으니까.

  허나 나는 다르다. 온갖 비리와 음흉한 생각과 무수한 불법적 행위와 수많은 여인과의 염문을 아내가 몽땅 까발린다면? 아,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혹 저처럼 비리와 불법과 음흉한 마음을 지닌 적 있고 그걸 아내가 알고 있다면 아예 갈라설 생각 마시길.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긁적긁적(7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